[편집자 레터] 색채로 詩를 읊다

곽아람 기자 2024. 5. 1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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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어딘가를 달리는 기차 안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 이어, 세계에서 둘째로 많은 반 고흐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오테를로의 크뢸러-뮐러 미술관에서 조금 전 이런 문장과 맞닥뜨렸습니다. “색채를 배열하는 것만으로도 시(詩)를 읊을 수 있다는 걸 네가 이해할지 모르겠구나.” 빈센트 반 고흐가 1888년 11월 12일 여동생 빌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이랍니다.

색채와 시의 관계를 생각하다가 며칠 전 밀라노 트리엔날레 미술관에서 본 알레산드로 멘디니(1931~2019) 특별전을 떠올렸습니다.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멘디니는 팔 벌린 여성 형태를 한 와인 따개 ‘안나 G’로 대중에 알려졌고, 국내 기업과 협업해 냉장고 디자인을 하기도 했습니다. 정작 멘디니를 세계 디자인사에 한 획을 긋도록 한 작품은 ‘프루스트 의자’입니다. 그는 1978년 고전적인 바로크 스타일 의자에 신인상주의 화가 폴 시냐크의 점묘법을 차용, 다채로운 색점을 찍었습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며 리디자인(Re-Design)이라는 개념을 주창했죠. ‘프루스트’라 이름 붙인 건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과거를 회상하며 쉴 때 앉았을 것 같은 의자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라는군요.

멘디니 생전인 2015년,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모던한 단색조 디자인이 유행하던 시절에도 화려한 색채를 고집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작품에 시적 감성을 주고 싶어서.”

국적도 활동한 시대도 다르지만, 색채로 시를 읊고자 했다는 점에서 멘디니와 반 고흐는 닮아 있군요. 어쩌면 모든 예술은 궁극적으로 시의 아름다움에 도달하길 꿈꾸는 것인지도요.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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