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암호화폐’라는 신기루, 끝까지 파고들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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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몇 년 전에 암호화폐로 피자 한 판을 사먹었대. 놔뒀으면 1억 원이 넘는 건데."
블룸버그의 탐사전문 기자인 저자는 2021년부터 2년 동안 세계 암호화폐 시장을 밀착 취재했다.
하지만 저자의 눈에 그는 고객의 돈으로 도박을 한 범죄자였으며 인출이 보장되지 않는 암호화폐란 뜬구름이었다.
"가격이 오르니까 암호화폐를 사야 한다는 건 컬트 집단이 세계 종말과 자신들의 구원을 확신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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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통용 국가선 쓰레기 취급… “신규 투자자 유치해 수익 낼 뿐
인출 보장되지 않는 폰지 사기”… 현지 언론 ‘올해 최고의 책’ 꼽아
◇비이성적 암호화폐/제크 포크스 지음·장진영 옮김/508쪽·3만2000원·RHK
모임에서 심심치 않게 듣는 얘기다. 하지만 2022년 암호화폐 거래소 FTX의 파산과 가상화폐 루나의 대폭락으로 세계 암호화폐 시장에는 된서리가 몰아쳤다. 투자해도 좋은 걸까.
블룸버그의 탐사전문 기자인 저자는 2021년부터 2년 동안 세계 암호화폐 시장을 밀착 취재했다. 바하마의 FTX 사옥부터 투자자들이 파티를 여는 대형 요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매력적인 이성을 가장해 투자자를 유인하는 캄보디아의 사무실 현장까지 찾아다녔다. 그러다 2022년 FTX 파산 사태가 터졌고, 저자는 ‘암호화폐의 왕’이라고 불린 이 회사 설립자 샘 뱅크먼프리드를 체포되기 전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다.
저자는 비트코인을 공용화폐로 선언하고 자국 화폐를 없앤 엘살바도르도 찾아간다. 현지인들은 ‘비트코인은 쓰레기다’라며 달러만 받았다. 필리핀에서 암호화폐 ‘스무스러브포지션’이 불러온 현실도 기가 막혔다. 게임을 해서 점수가 오르면 이 암호화폐를 받을 수 있었고 가격이 급상승하자 사람들은 생업을 걷어치운 채 게임에 몰두했다. 2021년 스무스러브포지션이 폭락하자 이들은 주저앉았다.
암호화폐는 실제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데 가격이 오른다. 어떻게 가능할까. 저자가 만난 그 누구도 그 원리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저자는 이를 폰지 사기에 비유한다. 신규 투자자들의 투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배당을 지급하는 다단계 사기 수법을 뜻한다.
실제 자신을 취재하는 저자에게 뱅크먼프리드는 ‘폰지 사기나 다름없다는 식으로 쓰면 흥미롭겠네’라고 말한다. 그 말은 현실이 되었다. 체포 직전에 만난 그는 여전히 “FTX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내 실수였을 뿐”이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저자의 눈에 그는 고객의 돈으로 도박을 한 범죄자였으며 인출이 보장되지 않는 암호화폐란 뜬구름이었다.
지난해 ‘오르는 숫자(Number Going Up)’란 제목으로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은 이와 비슷하게 뱅크먼프리드를 직접 만나 취재한 마이클 루이스의 책 ‘무한히 계속하기(Going Infinite)’와 함께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Number Going Up’은 워싱턴포스트와 파이낸셜타임스 등이 선정한 ‘올해 최고의 책’에 포함됐다. 루이스의 책은 ‘뱅크먼프리드에게 지나치게 동정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FTX 파산과 루나 폭락 이후 암호화폐 시장은 어떻게 됐을까. 저자에게는 ‘놀랍게도’ 테더는 아직 건재하다. 암호화폐의 대명사인 비트코인은 2017년 개당 1000만 원을 넘어선 뒤 2207일 만인 올해 3월 11일 1억 원을 찍었고 5월 초 현재 8000만 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숫자를 보여도 저자는 같은 말을 할 것이다. “가격이 오르니까 암호화폐를 사야 한다는 건 컬트 집단이 세계 종말과 자신들의 구원을 확신하는 것과 같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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