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늘 깨닫고 있지만 딴 데 쳐다봐…번뇌를 보물로 여기죠"
금강스님에게 듣는 부처님오신날 의미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은 9일 기자간담회에서 “불교가 앞으로 경건함, 진지함뿐 아니라 청년들에게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선(禪) 명상 프로그램’을 올해 본격 개발해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불교계에서 템플스테이와 선 명상을 가장 먼저 도입하고, 지금도 열정적으로 보급하고 있는 주역이 금강스님이다. 쇠락한 천년고찰 미황사를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로 살려낸 스님은 참선수행-참사람의 향기, 산사음악회, 괘불제(掛佛祭)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2021년 미황사 주지 소임을 끝내고 현재는 중앙승가대 교수, 조계종 교육위원장을 맡고 있다. 또한 참선마을(경기도 안성), 원명선원(제주)에서 일반인을 위한 참선수행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조계사 경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금강스님을 만나 이 시대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를 들었다.
Q : 7박8일 집중 참선 프로그램인 ‘참사람의 향기’를 지금도 하고 계신가요.
A : “안성 참선마을에서 월 1회 진행합니다. 인원은 20명으로 제한했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제가 한 사람당 30분씩 개인 면담을 하기 때문에 더 많은 분들을 모시지 못합니다. 요즘은 퇴직한 뒤 앞으로 어떻게 살까를 고민하는 분들이 많이 찾습니다.”
안성·제주서 일반인 대상 참선수행 진행
Q : 프로그램은 묵언 수행이 기본이라면서요.
A : “초보자가 수행을 하려면 게으름과 싫증이 올라와서 쉽지 않습니다. 함께하는 도반(道伴)이 있으면 큰 힘이 되지요. 그런데 함께 있으면 자기를 표현하려고 하고 나를 알아달라는 몸짓을 하게 됩니다. 내면으로 마음이 향해야 자기 공부를 할 수 있는데 또다시 밖으로 향한단 말이죠. 묵언을 하면 함께 있지만 혼자 있는 셈이니까 자신을 보는 내적인 힘이 만들어집니다. 3일째 정도 되면 자신의 문제가 또렷해지는 순간이 오는데, 그때 면담을 하면 제 방을 나오면서부터 얼굴 표정이 바뀐다고 합니다. 문제가 풀어지는 시점이죠. 그전에는 고민만 하다가 그 뒤부터는 수행하는 모드로 바뀌게 됩니다.”
Q :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한 시대지만 사람들은 빈곤을 느끼고,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습니다.
A : “다들 그래요. 일은 어렵지 않은데 관계가 어렵다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는데, 내 경험·지식·정보의 틀 안에서 상대를 보고 판단한단 말이죠. 아버지는 이래야 돼, 교사는 이래야 돼, 선임은 이래야 돼. 심지어 저를 만나도 기대치에 못 미친다며 실망하고 상처받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무한한 변화 가능성이 있는 존재란 말이죠. 내 틀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보면 한 존재가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됩니다.”
Q :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A : “나 한 사람이 있으려면 아버지, 어머니가 있어야 했죠. 이분들이 굴곡 심한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힘들게 살아남았습니까. 또 그분들이 있으려면 그 위에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있어야 했죠. 그분들은 더 엄혹한 시대를 살아냈어요. 그 중 한 명만 빠져도 ‘나’라는 존재는 없는 겁니다. 그러니 생물학적으로만 보더라도 한 존재는 얼마나 귀하고 신비로운 겁니까. 햇살 한 줌 비치는 것도, 빗방울 하나 떨어지는 것도 생각해 보면 신비한 일이 아닐 수 없죠. 그걸 깨닫게 되면 무한히 감사하게 되고, 순간순간 기쁘게 살 수 있어요.”
스님은 조선시대 서산대사의 직계 제자인 소요대사의 시를 소개했다.
箇箇面前明月白 (개개면전명월백)
人人脚下淸風吹 (인인각하청풍취)
打破鏡來無影跡 (타파경래무영적)
一聲啼鳥上花枝 (일성제조상화지)
개개의 얼굴이 밝은 달처럼 환하고
사람마다 발 아래 맑은 바람 불고 있네.
거울마저 깨뜨리니 흔적조차 없어라.
한소리 새 울음에 가지 위에 꽃이 피네.
스님은 이 시에 대해 “선(禪)을 통해 자신을 신뢰하고, 근본 마음 상태로 되돌아가면 어느 곳에서 어떠한 대상을 만나도 비교하는 마음, 추측과 상상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됩니다”라고 풀어줬다.
거울 속에 있는 모습은 내가 기대하는 상대방의 모습이다. 그걸 깨뜨리면 내가 만나는 사람의 발 아래 불고 있는 맑은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사람마다 정성스럽게 노력하는 걸 볼 줄 알고 기대하는 바를 다 깨버리면, 만나는 사람을 꽃피우게 할 수 있다는 거다.
Q : 중앙승가대 교수로서 학인 스님들한테 어떤 공부를 강조하시나요.
A : “다른 사람을 고통에서 해방시키려는 자비심을 갖도록 가르칩니다. 출가를 하면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은 빼고 김 행자, 이 행자라고 부릅니다. 사미계를 받으면 이름도 없어지고 법명만 부르죠. 개인이 없어지고 개인을 뛰어넘으면 세상 모든 것과 다 연결된 존재가 됩니다. 손톱 밑에 가시가 박히면 온 신경이 그리로 가는 것처럼 세상에 아픈 곳이 있으면 마음이 그리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가서 도울 수 있으려면 수행을 해야 합니다. ‘깨달음이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내가 깨달아야 되겠구나’ 하는 원력(願力)을 세우라고 합니다.”
Q : 깨달음이 있은 후에야 남을 돕는 보살행이 가능한가요.
A : “살아 있는 동안은 언제든지 도와야 하지요. 깨닫고 난 뒤에? 우린 늘 깨닫고 있어요. 그런데 딴 데 쳐다보고 있는 겁니다. 번뇌를 보물로 여기는 거죠. 자기의 고요한 마음, 평화로운 마음을 보배로 여기는 게 아니라 다른 데 어떤 평화가 있나 해서 무기 개발을 하죠. 직책·돈·학벌·가문 이런 걸로 무기를 삼잖아요. 코드만 바꾸면 됩니다. 욕심의 코드로 보면 다 욕망인 거고 지혜의 코드로 보면 서로서로 돕고 있는 거죠.”
Q : 최근 몇몇 명망 있는 스님들이 안 좋은 일에 연루되는 일이 있었는데요.
A : “지금은 완전히 열려 있는 사회잖아요. 현대사회에선 종교인들에게 매우 높은 도덕적 수준을 요구합니다. 종교가 그 역할을 하려면 도덕적인 부분에 철저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 종교는 도태되고 그동안 빛나던 것들도 다 허물어지게 돼 있습니다.”
집착함이 없는 것이 무소유라 생각
Q : 법정스님 입적 전날 말씀을 나눌 정도로 인연이 깊었다고 들었습니다.
A : “법정스님과 인연은 송광사 스님들이 더 깊겠죠. 미황사가 전남 해남에 있는데 스님 고향이 해남이에요. 송광사 계실 때는 남도가 늘 고향과 같은 곳이고 따뜻하고 꽃도 빨리 피고 해서 좋았지만 강원도 가신 뒤로는 꼭 봄 되면 남쪽으로 찾아오셨어요. 1년에 한 번은 미황사에 오셨죠. 스님은 글과 말과 삶이 일관성 있는 언행일치의 표본입니다.”
Q : 법정스님이 말씀하신 ‘무소유’의 의미는 뭐라고 보십니까.
A : “저는 집착함이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늘 떠나는 마음. 글도 쓰고 나면 내 것이 아니잖아요. SNS에 글 올려놓고 누가 얼마나 읽었는지, 좋아하는지 아닌지 관심을 가지면 떠나보낸 게 아니잖아요. 어제를 떠나야 오늘을 살 수 있어요. 어제를 소유하고 있으면 오늘 못 사는 거죠.”
Q : 오늘 부처님이 한반도에 오신다면 어떤 말씀을 하실 것 같습니까.
A : “이 시대에는 부처님이 한 모습으로 오지 않고 갖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실 것 같아요. 그러니까 2600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 같은 분이 다시 출현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좀 거두고, 각자가 다 부처님이 됐으면 좋겠어요. 부처님처럼 행동하고 말하고 마음을 쓰면 세상이 좀 더 밝아지겠죠. 부처님이 오신다면, 열반하시기 전 유언처럼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아라’고 하시겠죠.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정영재 문화스포츠에디터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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