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235] 지붕 없는 성당

박진배 뉴욕 FIT 교수, 마이애미대학교 명예석좌교수 2024. 5. 10.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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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갈가노 성당(Abbey of San Galgano). 총천연색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었을 장미창이 뻥 뚫린 채 서 있는 높은 벽면은 다양한 행사에 어울리는 성스러운 배경을 제공한다.

이탈리아 시에나의 남쪽에 ‘성 갈가노 성당(Abbey of San Galgano)’이 있다. 이 성당은 1181년 사망한 수도사 갈가노(Galgano Guidotti)의 수행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수도사들에 의해 건축되었다. 갈가노는 십자군 전쟁 당시 기사로 활동했으나 검을 바위에 꽂고 무력을 중단, 수도사로 일생을 마쳤다.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는 이 바위에 꽂힌 검은 아서왕의 전설 속 ‘엑스칼리버’ 이야기에 영감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성 갈가노 성당(Abbey of San Galgano) 전경. 수도사들은 비옥한 토지와 인근에 강이 흐르는 것을 보고 이 부지를 선택했다. 그리고 1218년 공사를 시작, 60년간의 공사를 거쳐 완공했다.

당시 자급자족했던 수도사들은 비옥한 토지와 인근에 강이 흐르는 것을 보고 이 부지를 선택했다. 그리고 1218년 공사를 시작, 60년간의 공사를 거쳐 건축을 완성했다. 번영하던 수도원은 15세기부터 쇠퇴하였고, 1789년 번개를 맞은 종탑이 쓰러지면서 지붕이 무너져 내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성당으로서의 기능은 멈추었고 그 터는 아직까지 폐허로 남아있다. 오랜 시간이 지난 1924년,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복원을 하며 ‘지붕 없는 성당’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용도 역시 다양해졌다. 관광은 물론 평소 피크닉이나 승마, 여름 계절엔 야외 음악회, 그리고 봄가을로는 결혼식을 유치한다. 과거 총천연색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었을 장미창이 뻥 뚫린 채 서 있는 높은 벽면은 어떤 행사에도 어울리는 성스러운 배경을 제공한다. 안드레이 타르콥스키(Andrei Tarkovsky) 감독의 1983년 영화 ‘노스탤지아(Nostalghia)’에서 주인공의 꿈속 배경으로 등장했던 공간이기도 하다.

성 갈가노 성당(Abbey of San Galgano). 1789년 번개를 맞은 종탑이 쓰러지면서 지붕이 무너져 내렸다. 이후 성당으로의 기능은 멈추었고 성당의 터는 폐허로 남아있다.

천장이 있고 인테리어도 훌륭한 수많은 교회들보다 지붕 없는 이 교회가 더 마음에 와 닿는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방문객들 모두는 마법이 만들어 놓은 것 같은 이 터를 떠날 줄 모른다. 시에나산 벽돌과 대리석을 섞어서 구축한 토스카나 지방 최초의 고딕 양식 건물이지만, 이런 공간에서 건축의 스타일을 이야기하는 게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하늘보다 멋진 천장이 있는가? 하늘을 직접 올려다보는 것보다 하늘을 더 가까이 하는 방법이 있는가? “교회는 예배당이 아닌 마음에 있다”는 표현은 과연 진리로 다가온다.

성 갈가노 성당(Abbey of San Galgano). 인근 시에나 산 벽돌과 대리석을 섞어서 구축한 토스카나 지방 최초의 고딕 양식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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