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고도 도대체 뭐라고 쓴건지”...아이도 어른도 글씨 배우러 학원 다닌다
아이들 글솜씨 갈수록 퇴화
서술형 시험 땐 악영향도
교사 “채점 땐 해독 수준”
고시준비 성인도 학원에 몰려
교정 수강생 3년새 20% 급증
글씨교정 학원에 다닌지 일주일 됐다는 차 모군(9)은 “엄마와 선생님이 글씨를 너무 못 쓴다고 걱정하셔서 학원에 오게 됐다”며 “엄마가 글씨 학원에 다니면 코딩 학원을 보내준다고 해서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MZ세대 이하로는 손글씨에 익숙하지 않다. 핸드폰 자판을 두드리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직접 글을 써야 할 일 자체가 줄어들면서 글씨 잘쓰는 친구에 대한 선망도 거의 사라졌다. ‘굳이 글씨를 잘 쓸 필요 있나’ 하며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의외로 악필을 교정하기 위해 학원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꽤 된다.
최근에는 2010년 이후에 태어난 ‘알파 세대’가 학원을 많이 찾고 있다. 취재진이 찾은 강남구 소재 학원의 경우 전체 수강생이 50명 가량인데, 이중 70%가 초등학교 저학년이다. 유치원 수강생도 있다. 최근 3년 새 수강생이 20% 증가했다. 방학 때는 강의실의 모든 책상이 빼곡히 찬다고 한다.
글씨 학원을 운영 중인 유성영 대표(57)는 “학부모 사이에서 글씨 학원 경쟁이 치열하다”며 “글씨가 예뻐진 다른 집 아이가 다니는 학원을 찾기 위해 서울의 글씨 학원을 전부 돌아다니는 학부모도 만난 적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자기가 직접 쓴 노트필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학생도 꽤 있다. 학부모 정지우씨(41)는 “초등학교 6학년 아들 복습을 돕다가 노트필기를 못알아 본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너무 충격을 받았다”며 “자기가 못 알아보는 글씨를 글씨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대치동에서 글씨 학원을 운영 중인 강종석 대표(53)는 “20년 전과 비교했을때 아이들의 글씨 상태는 극적으로 퇴보했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나 핸드폰을 쓰면서 손글씨를 등한시했고, 이로 인해 글씨를 쓰기 위한 미세 근육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비대면 수업을 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글씨를 쓸 기회는 더욱 줄어들었다고 한다.
악필로 인한 고민은 20·30대가 된 MZ세대도 예외가 아니다. 10개월째 글씨교정 학원에 다니고 있다는 진사무엘 씨(32)는 “어릴 때부터 졸필이라 스트레스를 받다가 성인이 된 후에는 결혼식 및 장례식장 방명록을 쓸 때 창피했다”며 “또래 친구 중에 글씨 못 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다들 제 글씨가 바뀐 것을 보고 많이 놀라워한다”고 전했다.
올해 1월 치러진 변호사시험에서는 국가시험 최초로 논술 답안을 컴퓨터로 작성하는 컴퓨터 고사(CBT) 방식이 도입됐는데, 응시자의 99.2%가 필기가 아닌 CBT를 택했다. 컴퓨터 세대이면서도 시험은 수기로 작성했던 기성세대와는 큰 차이가 있다.
손글씨가 사고력과 학습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 주제다. 선진국일수록 손글씨의 순기능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스웨덴은 유치원에서 디지털 기기 사용을 의무화했던 기존 방침을 백지화하고 종이에 글을 쓰는 교육을 하기로 했고, 캐나다 등에서는 쓰기 수업을 필수 과정으로 복원하는 등 탈(脫)디지털화 교육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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