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혁명 130주년, 진혼곡 울려퍼지다

유승현 2024. 5. 10.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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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가 쌓여 산을 이루고, 거기서 흘러내린 피가 웅덩이에 고여 '찰박찰박' 거렸다." 강원지역 동학농민혁명 최대 격전지인 홍천 서석면 풍암리 '자작고개' 지명은 전투로 몰살된 동학혁명군들의 피가 웅덩이에 고여 '찰박찰박' 거린 상황에서 유래됐다.

홍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와 지역주민 등에 따르면 풍암리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차기석을 중심으로 강원도내 최대 격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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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지역 최대 격전지 홍천 풍암리서
동학혁명 130주년 기념 음악회 열려

“시체가 쌓여 산을 이루고, 거기서 흘러내린 피가 웅덩이에 고여 ‘찰박찰박’ 거렸다.”

강원지역 동학농민혁명 최대 격전지인 홍천 서석면 풍암리 ‘자작고개’ 지명은 전투로 몰살된 동학혁명군들의 피가 웅덩이에 고여 ‘찰박찰박’ 거린 상황에서 유래됐다.

홍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와 지역주민 등에 따르면 풍암리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차기석을 중심으로 강원도내 최대 격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을 맞아 기념음악회가 10일 홍천 서석면 풍암리 동학혁명군 전적지에서 열렸다.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을 맞아 ‘음악으로 만나는 동학농민혁명의 희생과 정신’ 기념음악회가 10일 홍천 서석면 풍암리 동학혁명군 전적지에서 신영재 홍천군수, 심형기 홍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회장, 이형주 대한노인회 홍천군지회장, 지역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홍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회장 심형기)와 서석면(면장 전상권)이 공동 주최하는 이번 음악회는 로즈 송 지휘자가 총감독과 지휘를 맡았으며 코리아아르츠관현악 오케스트라, 코아 앙상블 콰이어의 연주로 테너 하만택, 소프라노 신은혜, 바리톤 이동준, 바이올린 문소빈, 트럼펫 김현수, 엘렉톤 최유미가 공연에 참여했다.

이날 트럼펫 솔로로 연주한 진혼곡으로 시작해 코아 앙상블 콰이어가 반젤리스의 march with me를 웅장하게 연주하며 동학혁명의 의미를 되새겼다.

 

▲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을 맞아 기념음악회가 10일 홍천 서석면 풍암리 동학혁명군 전적지에서 열렸다.

홍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관계자는 풍암리는 홍천 내면·내촌면, 인제 기린면, 강릉, 춘천, 횡성, 경기도 지평 등과 인접해 있고, 홍천강을 따라 한양까지 물품을 실어 나르던 나루터가 있던 곳으로 교통요충지라 많은 동학혁명군이 모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10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강릉, 영월, 평창, 횡성, 홍천 각 지역의 접주(동학의 교구인 ‘접’의 우두머리)가 있었고, 5개 지역 전체를 관리하는 대접주가 바로 차기석이었다. 천도교 자료에 따르면 차기석은 홍천 서석사람이라고 기록돼 있다.

갑오군정실기 등에 의하면 풍암리 전투에서 800명의 동학혁명군이 사살됐다고 기록됐을 정도로 도내 최대 규모의 격전이 벌어진 곳이다. 마을 어르신 등의 구전에 따르면 실제로는 그 수가 100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강원도는 산간지역이라 적게는 30~50명, 많게는 100~200명 규모의 전투가 주를 이뤘다.

차기석은 1894년 1월 강릉 대도호부관아를 접수하고, 집강소를 차리는 등 동학혁명의 거점으로 삼으려고 했으나 ‘물러나면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겠다’는 향리의 농간에 물러났다. 향리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토벌에 나섰고, 이에 따라 차기석은 동학혁명군을 이끌고, 홍천 서석면으로 숨어 들어 군대를 재정비 했다.

1894년 9월 최시형 교주가 일본군의 침략과 조선 정부의 부패한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척양척왜, 보국안민’의 기치를 내걸며 전국의 동학혁명군에게 한양으로 집결하라는 기포령을 내리자 차기석도 이를 따르기 위해 서석면으로 인근 동학혁명군을 결집시켰다.

조정에서는 지평 현감 맹영재에게 차기석을 저지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에 맹영재가 민보군과 관군을 이끌고 풍암리로 진입해 10월 21~24일간 동학혁명군과 맹영재 군대 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차기석은 이후에도 많은 전투를 통해 항쟁하다가 11월 11일 내면 원당리에서 전투 중 체포돼 11월 22일 강릉 교장에서 효수 당했다.

홍천군민들이 이를 기리기 위해 성금을 모아 1977년 11월 자작고개 마루에 위령탑을 세웠다.

매년 10월 20일쯤 되면 동네 제사가 몰려 제수용품인 명태가 없어 나무로 깎아 그 모양을 만들어 제사상에 올릴 정도로 풍암리는 격전지였다.

심형기 회장은 “다양한 사업으로 단순히 역사적 희생을 넘어 동학혁명의 현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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