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덕의 도시 발견] 답사가의 겸손한 제안 ②

2024. 5. 10.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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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용 없이 도보로 걷다보면
오토바이·킥보드 등 무법지대
대중교통이야말로 공익에 부합
철도 없는 지역 지상철 늘리고
사라지는 터미널은 공영 전환
도심 버스총량 규제 철폐돼야

나는 운전면허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 보니 당연하게도 대중교통과 도보를 통해 이동하게 되고, 이에 따라 인도 그리고 대중교통 사정에 민감해진다.

얼마 전 경기도 화성시 동탄신도시를 답사했다. 도로망이 잘 정비된 블록의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인도를 걷다 보니 보도블록 곳곳이 깨지고 파여 있어서 걷기에 불편했다. 보도블록이 훼손된 것이 어제오늘 일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보도블록 상태가 나쁜 인도 옆으로는 자가용들이 빠른 속도로 도로를 이동하고 있었다. 동탄을 자가용으로만 오가는 사람들은, 자기 도시의 인도가 이런 상황인지 아마 잘 모를 것이다. 자가용을 사용하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와 노인 부모들이, 이렇게 민관(民官)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인도를 위태롭게 걸어다니고 있다.

인도가 이렇게 훼손된 데에는 킥보드·오토바이·자전거같이 원래는 도로로 주행해야 하는 교통수단을 운전하는 시민들이, 인도를 자기들 것인 양 달린 책임이 크다. 언제부터인가 관청과 민간 기업 모두, 인도를 시민의 이동 통로가 아닌 자신들의 사업 공간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각종 자전거·킥보드 대여 공간이, 가뜩이나 좁은 인도의 상당한 면적을 점거하고 있다. 공공자전거 제도를 운영하는 지자체들도 이런 경향에 일조하고 있다.

인도를 주행하는 오토바이 문제의 심각성을 얼마 전 느끼게 된 일이 있다.

강원도 강릉시의 강릉역은 평창동계올림픽 때 고속철도 강릉역의 위치를 강릉 시내로 고수한 덕분에 도심 공동화 현상을 피할 수 있었다. 강릉역 주변의 옛 지상철도 터도 마치 광주의 푸른길이나 서울의 경의선숲길처럼 도보 이동이 가능한 인도로 잘 조성돼 있다.

얼마 전 강릉 시내를 답사하면서 이 폐선 용지를 걷고 있었다. 나뿐 아니라 수많은 시민들이 잘 가꿔진 산책로를 걸으며 강릉 시내 관광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뒤에서 오토바이 운전자가 경적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혹시나 내가 도로로 나왔나 싶어서 확인했지만, 내가 서 있는 곳은 인도가 맞았다. 황당했지만 비켜서니 오토바이 운전자는 담배를 피우면서 계속해서 인도를 주행해 나아갔다. 물론 끝없이 시민들에게 경적을 울려대며.

인도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오토바이를 주행하는 것은 모두 불법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바로잡을 경찰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도심 식당 앞에 불법 주차한 차량들, 공공장소에 장박하고 있는 캠핑카, 금연 안내판 앞에 모여 흡연하는 사람들 등 한국의 거리는 무정부 상황에 가깝다. 이런 현실을 바로잡을 경찰들은 어디에 있는가? 경찰은 검찰과 기싸움을 벌이거나, 정치·공안 문제에 몰두하기 전에 민생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이를 위해 다른 어떤 공무원 직종보다 경찰직 공무원을 대규모로 충원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난번 컬럼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적어도 주차 단속은 지방정부에서 분리시켜서 다시 중앙정부 차원에서 실시해야 한다. 자가용이 아닌 대중교통에 중점을 두고 사회를 바라봤을 때, 다음 사항도 아울러 제안드리고 싶다.

첫째, 철도를 지하화할 예산으로 철도 없는 지역에 지상철도를 부설하는 것이 더욱 많은 시민들에게 혜택을 준다. 대도시의 철도를 지하화해서 연선의 집값을 올려주는 것보다, 예를 들어 철도 없는 태안반도 깊숙한 곳까지 지상철을 부설해 수많은 시민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것이 더욱 공익에 부합한다.

두 번째, 민간 자본이 운영하다가 적자로 폐쇄된 고속·시외버스터미널, 그리고 농산어촌의 실핏줄 기능을 담당하는 버스 노선을 공영제로 돌리자. 이것은 시민 이동권을 보장하는 것일 뿐 아니라 대중교통이 사라짐에 따라 자가용으로 옮겨가게 될 이동 수요를 붙잡음으로써 탄소 배출을 줄이는 효과도 갖는다.

마지막으로, 대도시로 진입하는 버스의 총량을 규제하는 정책은 철폐돼야 한다. 교통총량제를 취하면 대도시의 시내 교통은 오히려 혼잡해진다. 버스가 없으니 자가용을 이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공익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실효도 없는 정책이다. 이상 두 차례에 걸쳐, 한국 사회가 조금씩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답사가의 겸손한 제안이었다.

[김시덕 도시문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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