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연금개혁 논의를 위해[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34)

2024. 5. 1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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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지난 5월 7일 이번 21대 국회에서의 연금개혁이 무산됐다고 발표했다. 주호영 위원장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사실상 21대 국회 연금개혁특위 활동을 종료하게 되는 상황에 왔다”며 “최종적으로 소득대체율 2%포인트 차이 때문에 입법이 어렵게 됐다. 이 논의를 토대로 22대 국회 때 조속한 연금개혁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호영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장(가운데)과 국민의힘 유경준(오른쪽),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여야 간사가 5월 7일 국회 소통관에서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종료 및 출장 취소 등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연금특위의 기이한 발표

이번 발표는 여러 면에서 기이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제21대 국회의 임기는 오는 5월 29일까지로 이 발표날부터 3주 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임기 만료일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두 가지 이유로 허투루 흘려보낼 수 없는 22일이다.

첫 번째 이유는 시민숙의기구인 연금개혁 시민대표단 500인의 공론조사 결과가 지난 4월 21일에 나왔다는 점이다. 따라서 국회는 이 결과를 접하고 불과 2주 정도 논의를 진행한 뒤에 자체 종료한 셈이다. 국회가 논의한 기간이 임기까지 남은 기간보다 더 짧다. 심지어 시민대표단은 한 달간 공론화 회의를 진행했다. 국회가 이렇게 성의 없게 일해선 곤란하다. 또 다른 이유는 연금개혁의 시급성과 중요성이 남다른 상황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재정추계가 처음 시작된 2003년 이후로 2007년 한 차례만 연금개혁이 이뤄졌다. 참여정부와 17대 국회만이 2003년 재정추계 결과를 바탕으로 연금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당시 여야 정당들이 치열한 논의 끝에 합의안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2008년 제2차 재정추계 이후 지난해 초 5차 재정추계 결과가 나오고서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후속 개혁이 이뤄지지 않았다.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국민연금은 빈약한 노후소득보장 기능과 광범위한 사각지대 등의 문제를 계속 가지고 있었고, 그동안의 재정추계 결과는 기금의 지속가능성이 빠르게 악화하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만일 21대 국회에서 연금개혁이 무산된다면, 언제쯤 후속 논의가 이뤄질 수 있을까. 약간 비관적인 시나리오로 전망하면 제22대 국회의 원 구성 협상이 여름까지 지연되고, 오는 9월 정기국회 이후엔 국정감사와 예산 심의에 밀려 연금개혁은 내년으로 또 미뤄질 수 있다. 그 이후 내년 상반기에도 결론을 못 내면 하반기부터 그 이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의 표심을 고려해야 한다.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에게 돈을 더 거두는 조치를 단행하면 다행이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크진 않을 것이다. 결국 제21대 국회의 남은 임기인 20여 일을 허투루 보내면 안 되는 상황이다.

국회 연금특위의 “활동 종료” 선언 이후에도 상황은 기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이튿날인 지난 5월 8일,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은 뉴스1과의 통화에서 “아직 21대 국회가 21일 남았다. 남은 기간 개혁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5월 9일 오전엔 연금개혁 공론화위원회 김상균 위원장이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21대 국회에서 국민연금 개혁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주호영 연금특위 위원장의 “활동 종료” 발언에 대해서도 “협상에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 기자회견”이자 “중간보고” 성격이라고 해석했다. 이런 기대와 희망에 찬물을 끼얹듯 윤석열 대통령이 같은 날 오후 ‘윤석열 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연금개혁에 대해 “21대 국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 조급하게 하기보다 22대 국회에 넘겨서 좀더 충실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금개혁을 미룬 역대 정부를 맹비난하며 이 정부의 3대 개혁 과제 중 하나로 꼽은 연금개혁의 시급성을 줄곧 강조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3월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결과가 나온 이후에도 공을 국회로 넘기더니 이젠 차기 국회로 넘기자고 하는 상황이다.

정의당 김준우 대표, 강은미 의원과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관계자들이 5월 8일 국회 소통관에서 연금개혁 결렬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이 최종? 연금개혁은 계속된다

국회 연금개혁특위가 남은 임기 동안의 개혁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이번이 최종 연금개혁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능한 수준으로 합의하고 22대 국회에서 다시 연금개혁특위를 구성해 추가 개혁에 나서는 것도 방법이다. 현재까지 여야는 ‘월소득 중 얼마만큼을 보험료로 낼지’를 의미하는 ‘보험료율’을 현재 9%(근로자는 사업주와 4.5%씩 부담)에서 13%로 올리는 것에 합의했다. 문제는 ‘은퇴 뒤 받는 연금액이 일할 때 벌던 소득의 몇퍼센트를 차지하는지’를 의미하는 ‘소득대체율’이 40년 가입 시 2028년부터 40%가 되는데, 이를 민주당은 45%로 올리자고 주장하고, 국민의힘은 43%까지만 올리자고 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연금특위의 여당 간사인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보험료율 13%에 소득대체율 44%’를 타협안으로 제시했다고 하니, 여야 간 이견이 1%포인트에 그치는 셈이다.

만일 소득대체율을 44%로 합의를 봐도, 야당에 다른 선택지가 있다. 노후소득보장 체계에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하나의 요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기초연금, 퇴직연금과 공공부조, 고령층 일자리 등의 정책으로도 노후소득의 안정을 꾀할 수 있다. 또한 5년마다 이뤄지는 재정추계 때마다 연금개혁을 통해 소득대체율을 다시 바꿀 수 있고, 최근의 합계출산율 추이를 감안하면 재정추계의 간격을 5년이 아닌 2~3년으로 줄일 필요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이번이 마지막 개혁은 더더욱 아닌 셈이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뿐만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타협이 수월한 의무가입 상한 연령(연금보험료 납입 연령)을 현행 59세에서 64세로 연장하는 안과 출산, 실업, 군복무 크레딧 확대, 퇴직연금 제도 개선 등도 이번 국회에서 마무리 지을 필요가 있다.

공론조사의 복기가 필요한 이유

이번에 연금개혁에 적용된 공론조사는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위원회 때부터 한국사회에서 타협이 어려운 갈등 사안을 조정하는 제도로 여러 차례 활용됐다. 공론조사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번 공론조사는 양쪽의 입장이 치열하게 각축을 벌이는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강했다. 소득보장론(노후 소득의 안정을 중요시하는 입장)과 재정안정론(국민연금 기금의 지속가능성을 중요시하는 입장)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이 나서서 시민대표단 앞에서 각자의 주장을 펼쳤고, 심지어는 공론화 회의가 끝난 이후에도 토론을 이어가고 있다. 공론조사의 결과로 ‘더 내고 더 받기’(소득보장안)를 선택한 시민이 전체의 56%로 ‘더 내고 그대로 받기’(재정안정안)를 선택한 이들(42.6%)보다 13.4%포인트 많았다. 이 결과를 두고 소득보장론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충분히 학습한 시민들이 지지를 보냈다’고 해석하고, 재정안정론을 주장하는 쪽은 ‘자료 제공이 부실했고, 일부 잘못된 자료가 전달됐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이번 공론조사에서 아쉬운 점은 논의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정하는 ‘모수개혁’에만 집중됐다는 점이다. 논의의 초점을 국민연금에만 맞추다 보니 기초연금, 퇴직연금, 여타 노후소득보장 정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양쪽 간에 어느 부분에서 합의할 수 있고, 어느 부분에서 차이를 드러내는지가 분명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재정안정론 쪽은 국민연금 이외에도 전액 재정으로 운영하는 기초연금과 사업주가 부담하는 퇴직연금 등으로 다층적 연금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기초연금 등 정부의 재원으로 노후 소득을 안정화한다면 소득보장론 쪽과의 차이가 별로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재정추계상에서도 여러 문제점이 엿보인다. 공론화 회의 과정에서 여러 차례 튀어나온 단어인 ‘수익비’(내는 보험료를 1로 했을 때 받는 연금을 계산한 값)는 정작 재정계산 보고서에 존재하지 않는다. 수익비가 2가 넘는다고 하는데, 경제성장률과 기금수익률 등을 모두 감안한 비율인지, 혹은 자연스레 복리의 마법으로 2에 근접하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급변하는 인구 추이에 대한 고려도 부족하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따라 이번 5차 재정추계는 2040년부터 합계출산율이 1.19를 회복해 2046년 이후엔 1.21 이상으로 반등하는 것을 전제로 기금의 소진 시점과 적자 규모를 계산했다. 물론 이는 중위값이고, 저위값인 0.95(2040년 기준)와 고위값인 1.39(2040년 기준)를 모두 포함해 계산했지만, 시나리오별 차이가 잘 보이지 않는다. 중위값을 적용한 기금소진 시기가 2055년이고, 저위값도 마찬가지이며 고위값일 때만 소진 시기가 1년 뒤인 2056년으로 늦춰진다. 저위값인 0.95조차 2023년 합계출산율인 0.72에 비하면 상당히 낙관적인 수치지만, 합계출산율에 따라 국민연금 기금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제대로 확인하기가 어렵다. 국민연금재정추계전문위원회의 ‘2023 국민연금재정계산 보고서1 – 국민연금 장기재정추계’에서도 그나마 찾을 수 있는 자료가 합계출산율이 저위값(2040년 기준 0.95)일 때 2070년 가입자가 월 소득의 38.6%를 보험료로 낼 수도 있다(부과방식비용률)는 내용만이 있을 뿐이다. 물론 이 수치의 의미도 충격적이다.

제22대 국회가 열리면 정부와 국회가 합동으로 국민연금 재정계산에 대한 대국민 보고회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우리의 연금과 복지 재정이 어떤 상황이고, 향후 어떤 시나리오가 그려지는지부터 제대로 알아야겠다.

윤형중 LAB2050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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