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웃음 주고 떠나는 선방위

공성윤 기자 2024. 5. 10.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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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공식 종료한 선방위…‘파란색 1·여사’ 빠진 ‘김건희 특검’ 등 심의로 뭇매
언론노조 “초현실적 부조리극”…선방위 “특정 정당이나 권력자 위한 조직 아냐”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22대 총선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위)가 5월10일자로 활동을 공식 종료한다. 임시 합의제 기구인 선방위는 지난 5개월간 30건의 법정제재를 의결했다. 이 중에는 "파란색 1" 등 논란을 일으킨 안건이 다수 포함돼 있어 활동 내내 조롱에 휩싸였다. 

지난해 12월 결성된 선방위는 19차례 회의 동안 30개 안건에 법정제재를 결정했다. 선방위 설치 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출범한 2008년 이후 가장 많다. 제재를 받은 30건 중 MBC가 17건으로 가장 많았고 CBS(4건), YTN·CPBC평화방송·채널A·대전MBC(각 2건), 울산MBC(1건)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방송 담당자 징계와 벌점 부과라는 쌍벌적 성격의 '관계자 징계'가 14건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선방위 심의에는 과징금 부과가 없어 관계자 징계가 최고 수위의 법정제재다. 그 아래로 '주의'와 '경고'가 있다. 선방위 법정제재는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심사 자료로 쓰인다.

4월24일 국회 본청 앞에서 진행한 "입틀막 거부, 언론장악저지, 22대 국회 1호 입법 다짐대회" ⓒ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

"'파란색 1'보면 1번 찍는다는 발상 자체가 국민 우롱"

관계자 징계를 받은 안건 중 유독 논란을 일으킨 방송은 MBC의 날씨보도다. 지난 2월27일 MBC 뉴스데스크는 기상캐스터가 미세먼지 농도가 1이었다는 내용을 전할 때 파란색으로 칠해진 숫자 '1' 그래픽을 띄웠다. 이에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을 연상시킨다"며 제소했고, 선방위도 이에 동의했다.

반면 중앙선관위는 "선거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는 반응을 내놨다. 참여연대와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날씨 예보조차 정쟁 대상으로 만든 당사자는 선방위"라고 비판했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파란색 1을 보면 1번을 찍을 거라고 생각하는 발상 자체가 국민을 우롱하는 것" 등의 비아냥이 쏟아졌다.

선거와 무관한 방송을 제재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1월3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김준일 시사평론가는 '이태원 특별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두고 "윤석열 대통령 가는 길이 역사가 되는구나"라고 발언했다. 또 김 평론가는 다음날 같은 방송에서 국민의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를 향해 "여기저기 고생이 많다" "여기서 욕먹고 저기서 욕먹고" 등의 말을 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과 여권을 조롱하고 희화화했다"는 민원이 접수됐고, 선방위는 '경고'를 의결했다. 시민단체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은 "선거방송이 아닌 방송을 조사하는 월권 심의"라고 주장했다. 그 밖에 선방위가 심의한 안건 중 △YTN 민영화 △바이든-날리면 논란 △고발사주 의혹 △이종섭 호주대사 도피 논란 등을 다룬 MBC의 보도는 선거와 관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MBC 뉴스데스크 2월27일 일기예보 방송 ⓒ MBC 캡처

'김건희 특검', 권고 이후 일제히 '김건희 여사 특검' 변경

법정제재를 받지는 않았지만, 써야 할 단어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태클을 건 사례도 있다. 1월15일 SBS 《편상욱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한 김영배 민주당 의원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향해 "김건희 특검에 대해 명확한 자기 입장을 밝히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선방위는 영부인에게 존칭어를 붙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행정지도인 '권고'를 의결했다. "대통령 부인에 대해 '여사'도, '씨'도 안 붙였는데 이는 진행자가 잡아줘야 한다"(손형기 위원)는 것이었다. 선방위의 결정 이후 KBS, MBC, YTN, JTBC 등 주요 방송사들이 일제히 '김건희 특검'이란 표현을 '김건희 여사 특검'으로 바꿨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선방위 활동 종료에 대해 5월9일 성명을 통해 "2024년 대한민국 언론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초현실적 부조리극이 마침내 막을 내린다"고 꼬집었다. 이어 "출연진들이 의도한 웃음은 아니었으되, 희극적인 에피소드도 많이 남겼다"며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직격했다. 백선기 선방위 위원장은 이날 열린 마지막 정기회의에서 "선방위는 선거방송을 심의하는 것이지 특정 정당이나 권력자의 이익·비판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 아니다. 언론 보도에 대해 심의하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백선기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위원장이 4월18일 서울 양천구 방송회관에서 열린 제15차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정기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MBC 캡처

해산 이후 남은 리스크..."입틀막 제재 남발 고발한다"

선방위는 해산됐지만 이를 둘러싼 법적 이슈는 남아 있다.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이 선방위 위원들을 고발했기 때문이다. 해당 단체는 4월29일 서울남부지검 앞에서 '입틀막 제재 남발을 고발한다'는 기자회견을 열고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장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선방위를 향해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킴은 물론 방송사 업무 전반에 걸친 경영을 저해했다"고 주장했다.

선방위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거방송의 공정성 유지를 위해 예비후보자 등록신청 개시일 전날부터 선거일 후 30일까지 설치·운영된다. 위원은 여권·야권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각각 추천한 사람을 포함해 총 9명 이내로 구성된다. 이번 선방위에선 백선기 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가 위원장을 맡았고 △권재홍 전 MBC플러스 대표이사 △박애성 법무법인 래안 구성원 변호사 △손형기 전 TV조선 보도본부 시사제작에디터 △심재흔 세종대 교양학부 겸임교수 △이미나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부교수 △임정열 전 강원도선거관리위원회 사무처장 △최철호 전 KBS N 대표이사 △김문환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초빙교수 등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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