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전 38명 휴진했던 병원,이번엔 쉬는 교수 거의 없었다

오경묵 기자 2024. 5. 10.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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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이 대기하는 모습. /뉴스1

국내 50개 대학 병원의 교수들이 10일 ‘동시 휴진’을 하겠다고 예고했지만, 이날 별다른 진료 차질은 발생하지 않았다. 전국 88개 대학 병원 중 과반(56%)인 50개 대학 병원이 진료와 수술을 하지 않는 ‘동맹 휴진’을 벌일 경우 특히 중환자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수들이 ‘발표’와 다르게 환자를 지키면서 진료 대란이 벌어지진 않았다.

이날 오전 8시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본관 1층과 신관 2층 등에서 환자 100여 명이 진료를 기다리는 등 차분한 분위기였다. 각 진료과 앞에 휴진을 알리는 게시물도 없었다. 이 병원은 지난달 30일 휴진 당시에는 38명이 휴진에 참여하면서 외래 진료가 소폭 감소했다. 하지만 이날은 휴진에 나선 교수들이 거의 없어 예정된 외래와 수술 모두 별 차질 없이 진행됐다. 이 병원의 한 교수는 “지난 휴진으로 진료가 미뤄진 경우가 있었다”며 “예약을 마냥 미룰 수는 없기 때문에 이날은 대체적으로 정상 진료가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이날 오전 10시쯤 서울아산병원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동관 1층에 마련된 의자 300여 개 중 200여 개는 환자로 차 있었다. 아내가 췌장암을 앓고 있다는 60대 보호자 B씨는 “의료 대란으로 인한 차질은 딱히 없는 것 같다”며 “이날 새벽 아내의 상태가 나빠져 강원도 춘천의 요양병원에서 급히 왔는데, 곧바로 진료를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도 대부분의 진료와 수술이 평시(전공의 집단 이탈 이후 기준)처럼 이뤄졌다. 서울대병원 정형외과와 신경과 등 일부 진료실은 환자들이 몰리면서 ‘상담 지연’을 이유로 진료가 늦어지기도 했다. 서울대어린이병원 소아비뇨의학과의 한 진료실 앞에는 ‘5월 10일 외래 진료 휴진’이라는 안내문이 내걸렸다. 어린이병원의 한 간호사는 “(이날) 소아비뇨의학과 진료 예약이 없어 휴진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지방의 대학병원들에서도 큰 혼란은 없었다. 다만 외래 진료를 조정한 경우는 일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대병원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매주 금요일 외래 자율 휴진 방침을 밝혔지만, 이날 휴진에 나선 교수는 소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구 계명대 동산병원과 대구가톨릭대 병원도 대부분 교수가 휴진하지 않으면서 병원이 정상 운영됐다. 일부 교수가 학회에 참석하면서 휴진을 했을 뿐, 진료과 전체가 외래 진료를 중단한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한편 연세대 의대 교수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2024년 의정 갈등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심포지엄에서는 정부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고영국 연세대 의대 교수는 “여당이 총선에서 대패한 후에도 정부가 근거 없는 2000명 증원을 고집하면서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의 붕괴가 현실이 되고 있다”고 했다. 정부를 향해 거친 언사를 쏟아내기도 했다. 이날 발표자로 참석한 안덕선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는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이 ‘전체주의’로 흘러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열린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 대해 “의사는 빠지고 시민단체와 정부 관리가 앉아 거수기 역할을 하는 특별위원회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뻔하다”고 했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외국 의사 면허 소지자의 국내 의료현장 투입 방안을 놓고는 “그분 제정신인가. 정신과적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그분’은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을 뜻하는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박 차관은 의사 집단행동 관련 브리핑 등에서 강경한 태도를 보여왔고, 의료계는 그의 경질을 요구하는 등 갈등을 빚어왔다.

전공의와 의대생들도 참석했다. 김민성 연세대 의대 학생회장은 “의료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산술적 증원이 정치적 도구로 전락한 현실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의대생들이 학교로 돌아오는 것에 앞서, 정부는 비판을 수용하고 대화 의지에 걸맞은 실질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 김은식 세브란스 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도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은) 현재 시점에서 처방해서는 안 되는 금기 약제”라며 “의사들의 의견을 무시했고, 파급력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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