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린적 없어도… “욕설·고함도 심각한 교제 폭력”

조율 기자 2024. 5. 1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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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화가 많은 애인을 만나 운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보통 교제 폭력 하면 심하게 맞거나 흉기로 찔리는 등 극단적인 경우만 생각하니까요."

교제 폭력에 대한 논의가 가해자 처벌 강화, 수사기관의 초동 대응 강화 등 '사후적' 대응에 집중되면서 사전 예방을 위한 제도 개선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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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등 극단적 경우만 노출돼
사회적 인식·일상 경계심 부족
“비물리적 폭력도 범죄될 가능성
관련 통계·예방시스템 갖춰야”

“단순히 화가 많은 애인을 만나 운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보통 교제 폭력 하면 심하게 맞거나 흉기로 찔리는 등 극단적인 경우만 생각하니까요.”

20대 후반인 A 씨는 3년 전 B 씨와 사귀기 시작했다. 자신의 사소한 부분까지 기억해주는 다정한 사람이었지만 치마를 입었을 때 옷을 갈아입으라고 강요하거나 어떤 사람과 연락하는지 매번 추궁하는 탓에 A 씨는 점점 피로감을 느꼈다. A 씨가 어느 날 이별을 고하자 B 씨는 흥분했다. 길 한복판에서 입고 있던 모자와 가방을 땅바닥에 내팽개치고 A 씨를 향해 욕설과 고함을 질렀다. A 씨의 어깨를 밀치기도 했다. 결국 A 씨는 이별을 철회하고 B 씨가 먼저 이별을 고한 1년 뒤에서야 ‘안전 이별’할 수 있었다.

남성 직장인 김모(32) 씨의 첫 연인은 말다툼을 할 때마다 김 씨의 뺨을 때렸다. 연인이 손을 올릴 때마다 움츠러들 만큼 폭력이 반복됐지만 주변 사람들은 ‘사랑싸움’으로 봤다. 김 씨는 “헤어진 후에야 그것이 사랑이 아닌 폭력이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명문대 의대생 최모(25) 씨 사건을 계기로 강력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연인 관계에서의 ‘일상적 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비물리적 폭력 또한 살인과 같은 강력 범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10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등에 따르면 교제 폭력은 성적·신체적 폭력뿐만 아니라 상대에 대한 통제, 언어적·정서적 폭력, 경제적 폭력까지를 포함한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보통 신체적 폭력이 발생하면 언어적·정서적 폭력 등이 내재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언어적·정서적 폭력 등은 그 자체로도 심각한 유형의 폭력임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교제 폭력에 대한 논의가 가해자 처벌 강화, 수사기관의 초동 대응 강화 등 ‘사후적’ 대응에 집중되면서 사전 예방을 위한 제도 개선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 현재 국가가 규정한 4대 폭력(성희롱·성폭력·성매매·가정폭력)의 경우 법에 의해 예방교육 시간과 대상, 교육 실시 주체 등이 규정돼 있지만, 교제 폭력은 관련법이 없어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적인 교육에 기대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다 보니 교제 살인 통계도 따로 집계되고 있지 않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본인의 감정을 통제하는 교육, 상대방 의사에 반하는 행동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큰 아픔을 주고 중대한 범죄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알게 하는 사전 교육도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경찰은 이날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최 씨를 면담한 뒤 진술 분석을 거쳐 ‘사이코패스 진단검사’ 진행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최 씨가 지난 6일 여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한 뒤 준비한 옷을 갈아입는 등 계획범죄 정황도 추가로 드러났다.

조율 기자 joyul@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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