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차 교사는 교권 침해 기사 쏟아지는 ‘스승의 날’이 두렵다

이재호 기자 2024. 5. 1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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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시행’ 활동가 조영선 선생님 인터뷰
조영선 선생님이 2020년 4월15일 청소년의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조영선 선생님 제공

“서울특별시 학생인권 조례를 폐지한다.”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은 2024년 4월26일 이 열여섯 글자로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서울시민 9만7702명(유효 서명 기준)이 힘을 모아 최초의 주민발의로 제정된 서울학생인권조례(이하 조례)가 12년 만에 폐지된 것이다. 폐지된 조례안 제1조는 ‘학생의 인권을 보장함으로써 모든 학생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며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이루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조례가 왜 폐지됐어야 했던 걸까 의문이 든다.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행동’(청시행) 활동가이자 23년차 교사인 조영선 선생님께 상황을 물었다.

—조례 폐지 이후 학교 현장은 어떤 상황인가.

“언론 보도를 통해 이미 알고 있는 학생도 있겠지만, 아직 학생들에게 조례 폐지를 말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어떻게 설명할지가 중요할 텐데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다. 조례가 제정된 이후 12년 동안 학생들에게 ‘너희는 인권이 있고 존엄한 존재’라고 교육해왔는데, 그 교육의 근거였던 조례 폐지를 어떻게 설명할까. 특정 정당과 혐오 세력의 공격으로 조례가 폐지됐다고 있는 그대로 말한다 해도 그다음에 학생들이 ‘그럼 이제는 차별해도 된다는 뜻인가요?’라고 반문하면 어떻게 답할까. 조례 폐지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할까. 사실, 아직 혼란스럽다.”

—조례 폐지의 의미는 무엇인가.

“기준의 사라짐이겠다. 조례 제정 이후 학교에서 ‘모든 학생이 인권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혐오하고 차별하면 안 된다’ ‘혐오표현은 명백한 인권침해이고, 소수자 학생은 대항표현으로 맞서야 한다’고 가르쳤고, 그 가르침의 기준이 조례였다. 그러나 조례 폐지로 인권 교육의 기준이 없어졌다. 학부모들도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인권침해 피해가 발생하면 조례에 따라 교육청에서 판단하면 학교가 조처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사법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서이초등학교 교사가 세상을 떠난 뒤 보수 진영에선 교권 붕괴 원인으로 조례를 지목했다.

“조례 때문에 권리가 침해된 교사가 있는지 되묻고 싶다. 조례에는 교사를 징벌하는 조항이 없다. 어떤 교육 행위가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하면 학교에 권고조처가 내려지고, 구성원 전체가 인권 교육을 받는 방식으로 행정조처가 이뤄질 뿐이다. 일부 두발규제나 휴대전화 사용을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사들이 조례(제12·13조)에 반발할 수도 있겠지만, 휴대전화나 두발은 결국 학생들이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어떻게 사용하고 다뤄야 하는지를 배워나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닌가. 어쨌든 교권 침해와는 무관하고….”

—조례 폐지가 전국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있나.

“그 속도가 빨라 우려된다. 여섯 곳 지방자치단체(경기, 광주, 서울, 전북, 충남, 제주) 가운데 충남은 빨리 폐지될 줄 알았지만, 서울에 이어 경기가 5월9일 폐지 공청회를 하는 걸 보고 크게 놀랐다. 전북은 학교 구성원 조례를 제정해 보수 진영에서 학생뿐만 아니라 학교 구성원 모두를 위한 조례를 만드는 거라고 주장하지만, 학교 구성원 조례를 도입한 곳에서도 교사들이 조례에 근거해 인권침해 구제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실증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제22대 국회에서 학생인권법(이하 법)을 제정해야 한다. 학생인권과 교권은 상충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학생인권이 존중받는 학교여야 교사도 존중받을 수 있다. 법이 제정되면 조례에서 명시하는 기준과 학생인권 기구를 전국 시도에 차별 없이 설치할 수 있다. 교사가 학생에 대해 인권 교육을 하거나 성평등 교육을 할 때 혐오세력이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학생인권법이 이런 인권 교육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제정되면 좋겠다.”

—<한겨레21>이나 언론에 바라는 점이 있을까.

“다음 주(5월15일, 스승의 날)가 두렵다. 스승의 날이 되면 교권(교사의 권리)이 침해된다는 주제의 기사가 쏟아진다. 과거의 극단적 사건이 다시 소환되고, (보수 쪽으로) 치우친 성향의 교사들 인터뷰가 많이 보도된다. 11월3일 학생의 날엔 학생인권 침해 기사가 나오고.(허탈한 웃음) 이런 언론보도 프레임이 반복되는 게 맞을까. 교사들이 2023년 9월4일 ‘공교육 멈춤의 날’까지 했지만 정작 교사들의 노동권은 언론에 제대로 조명된 적이 없는 것 같다. 조금만 더 진지하게 깊이 고민하고 보도할 순 없을까.”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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