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괴벨스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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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 시절 히틀러에 이은 '2인자'였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1897∼1945)가 갑자기 독일 언론에 소환됐다.
1920년대 중반 20대 청년이던 괴벨스는 히틀러의 연설에 매료돼 나치 당원이 되었다.
독일 대중의 머리와 가슴을 온통 히틀러 그리고 나치 이념으로 물들였다.
그런데 괴벨스를 잡으러 갔던 군인들이 그로부터 '히틀러는 멀쩡히 살아 있다'라는 말을 듣자 상황이 반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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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 시절 히틀러에 이은 ‘2인자’였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1897∼1945)가 갑자기 독일 언론에 소환됐다. 베를린 교외에 있는 그의 별장이 골칫덩어리로 전락했다는 내용이다. 괴벨스의 권력이 절정에 달한 1939년 지어진 별장은 부지 면적이 17만㎡(약 5140평)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다. 동·서독 분단 시기엔 동독의 청소년 수련원으로 쓰이기도 했으나 통일 이후인 1999년부터 사실상 방치돼 흉물로 남아 있다. “모든 시설을 없애고 녹지로 만들자”는 주장과 “역사적 의미가 큰 만큼 철거는 불가하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한다.
괴벨스는 독일의 2차대전 패배가 임박한 1945년 4월까지 12년 넘게 선전부 장관 자리를 지켰다. 연합국 일원인 소련(현 러시아) 붉은 군대가 베를린을 향해 진격하던 그해 4월30일 히틀러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후계자로 괴벨스를 지명했다. 하지만 나치 독일의 ‘1인자’로서 괴벨스의 삶은 짧았다. 히틀러가 죽고 하루 만인 5월1일 그 또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부인과 여섯 명의 자녀도 함께 저세상으로 갔다. 최고 권력자 일가족의 비참한 최후였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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