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조국 정치생명 쥔 사법부, 여의도에 흔들리나 

김현지 기자 2024. 5. 1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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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피한 조국·황운하, 사표 낸 이재명 재판장…재판은 ‘차일피일’
정치 지형 바꾸는 사법부? 巨野에 좌우될 후임 대법관 인사도 큰 변수

(시사저널=김현지 기자)

22대 국회 개원(5월30일)을 앞두고 여의도의 무게추가 서초동에 실리고 있다. 우선 4·10 총선에서 존재감을 발휘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정치적 운명이 대법원 판단에 달렸다. 조 대표는 자녀 입시비리 등 의혹과 관련해 원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상황이다. 사건은 총선 직후 대법원 3부에 배당됐는데, 여기서 원심이 확정되면 조 대표는 의원직을 잃는다.

법조계는 연내 대법원 선고를 예측하지만 재판 지연 등의 변수는 남아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과 관련한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야당 당수들의 정치생명을 쥔 사법부가 정치 지형을 바꾸는 듯한 형국이다. 문제는 사법부의 중립성과 독립성이다. 법조계 안팎의 "사법부가 정치권에 휘둘린다"는 비판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이는 이재명 대표 사건 재판장의 사표 제출 배경으로도 의심받는 대목이다. 조국 대표와 황운하 조국혁신당 원내대표(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가 실형 선고에도 구속을 피한 판결 또한 법조계에선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두 사건의 재판부는 조국 대표 등을 향해 "사회적 유대관계가 있어 도주 우려가 없다"고 설명했지만, 이는 이들에게 면죄부만 줬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야권으로 확연히 기울어진 22대 국회가 후임 대법관 인사 등 사법부 지형 변화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대법원 대법정 입구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연합뉴스

"사회적 유대관계…" 조국·황운하가 구속 피한 이유

4·10 총선에서 조국혁신당의 돌풍은 거셌다. 바람을 이끈 건 단연 조국 대표다. 조 대표는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법무부 장관을 지내며 '검찰 개혁'의 선봉에 섰다.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기도 했다. 검찰과 윤석열 정부에 대한 반감이 조 대표의 신생 정당을 제3당으로 키웠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런 조국 대표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준 건 역설적이게도 사법부였다. 재판부는 조국 대표 부부의 자녀 입시비리 의혹 대부분을 유죄로 판단하면서도 정작 조 대표를 구속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사건 재판 진행 및 심리 경과에 비춰볼 때 주요 증거에 대한 조사가 완료돼 더 이상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사회적 유대관계와 재판에 성실하게 임했던 태도 등에 비춰볼 때 도주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도 어려운 점, 배우자가 수감 중인 사정 등을 고려해 법정 구속하지는 않는다.(2023년 2월3일 1심 판결문 일부)"

이는 황운하 원내대표가 구속을 피한 사유와 판박이다. 황 원내대표 사건 재판부 역시 △주요 증거에 대한 조사 완료 △사회적 유대관계 등을 언급했다.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이러한 대목이 "이례적"이라는 법조계 시각은 팽배하다. 부장판사 출신 A변호사는 "1심 판단이 2심에서 뒤집힐 가능성이 있거나 증거를 첨예하게 다투는 경우 피고인을 구속하지 않기도 한다"며 "그러나 조국 대표 사건은 이미 1심에서 증거 조사도 끝났고 부인인 정경심 교수 판결도 마무리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과하게 말하면 '조 대표를 구속하지 않겠다'는 결론에 맞춰 쓰인 판결문'"이라고 혹평한 그는 "죄질이 나쁜 경우 '사회적 유대관계' 등이 법정 구속을 피할 만한 사정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법조기관장 출신 B변호사는 "특히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징역형을 선고받은 후 법정 구속을 피한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판결문에는 재판부가 이들의 죄질을 비판한 대목이 있다. 조국 대표의 사건을 맡은 1심 재판부는 "입시제도의 공정성에 대한 사회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됐다(①자녀 입시비리)" "자녀에게 주어진 장학금 명목의 금원을 반복 수수해 직무상 공정성과 청렴성을 의심받을 행위를 했다(②자녀 장학금 수수)" "국가 기능의 공정한 행사와 사정기관에 관한 국민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해 죄질이 불량하고 죄책도 무겁다(③유재수 감찰무마 사건)"는 등의 내용을 밝혔다.

그러면서 "(조국 대표가) 객관적 증거에 반하는 주장을 하면서 잘못에 대해선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진정한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황운하 원내대표 사건의 1심 재판부 판단은 다음과 같다.

"특정인이나 특정 정당을 위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방향으로 수사 권한을 남용했다. 그 과정에서 소속 경찰관들에게 부당한 업무지시를 했고, 인사권을 남용해 성실하게 수사업무를 수행하던 경찰관들을 좌천시키는 인사조치를 취했다. 경찰 조직과 그 업무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 신뢰를 저버렸다. 그럼에도 납득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변명을 내세우고 인사조치된 경찰관에 대해 비리 세력과 유착됐다고 근거 없이 폄하하는 등 자신의 범행을 전혀 뉘우치지 않고 있어 죄책이 매우 무겁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시사저널 최준필

'조국 사건' 맡은 진보 성향 노정희 대법관, 8월1일 퇴임이 변수

이들은 현재 나란히 상소심 판단을 앞두고 있다. 조국 대표(징역 2년)와 황운하 원내대표(징역 3년)는 하급심에서 모두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았다. 현행법상 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만원 이상이나 일반 형사사건에서 금고 이상 형을 확정받으면 직을 잃는다. 황 원내대표 사건은 현재 서울고법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조 대표 사건은 총선 직후인 4월11일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에 배당됐다. 주심과 노정희·오석준·이흥구 대법관은 이튿날부터 법리 검토에 들어갔다(표 참조).

변수는 대법원의 지형 변화다. 김선수·노정희·이동원 대법관은 8월1일 임기만료로 퇴임하는데, 후임 대법관 임명이 늦어지면 3부 구성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이는 22대 국회의 '여소야대 정국'과도 맞물린다. 노정희 대법관은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대통령이 대법관을 임명하려면 헌법에 근거해 국회 동의(전체 의석의 과반 출석, 과반 찬성)를 얻어야 한다. 지역구와 비례를 포함해 171석을 얻은 민주당만으로도 대법관 인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대법원을 비롯한 법조계는 "노정희 대법관이 부재한 채 나머지 대법관들로도 사건 심리가 가능하다"지만, 후임 대법관 임명 시기와 사건 진행 속도 등의 변수는 남아있다.

이러한 시각의 중심에는 재판 지연 문제가 있다. 조국 대표는 기소(2019년 12월) 이후 3년여 만인 2023년 2월에야 1심 판단을 받았다. 조 대표 사건을 장기 심리한 김미리 부장판사가 휴직한 것이 배경으로 지목됐다. 당시 법조계에선 김 부장판사가 3년 근무 후 이동하는 인사 원칙을 깨고 4년간 재직하다 휴직한 것과 관련해 "재판 지연"이라는 비판이 상당했다.

황운하 원내대표가 연루된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역시 기소 3년여 만인 지난해에야 1심 선고가 나왔다. 선거법 사건이 1~3심 통틀어 1년 내 마무리돼야 한다는 현행법과 배치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도 기소(2022년 9월) 이후 2년 가까이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되레 재판장이 장기간 사건 심리 도중 사표를 제출하며 논란만 불거졌다. 강규태 부장판사는 1월 법정에서 이례적인 '사직의 변'을 직접 밝히기도 했다. 재판이 늦어진 배경은 "증인 수가 많아 신문이 오래 걸린다"거나 "이 대표의 국회 일정과 단식 등으로 인한 기일 변경"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재명 대표가 이 외에도 대장동·백현동·위례·성남FC 사건, 위증교사 혐의로도 재판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4월19일자 기사 참조).

대법원 관계자는 재판 지연 문제와 관련해 "피고인이 증거에 동의하지 않으면 증인을 법정에 불러 신문해야 한다"며 "법원은 증거에 기반하지 않은 사실을 인정할 수 없고, 이러한 (증거 다툼이 있는) 사건일수록 신중하게 양측 모두에게 절차를 보장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시사저널 박정훈·연합뉴스

"정치 상황도 살펴야" 김명수 체제에서 드러난 '눈치보기'

그러나 '사법의 정치화'를 우려하는 법조계 시각은 짙어지고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양승태 대법원장(2011년 9월~2017년 9월) 시절만의 문제가 아니다. 역으로 '사법부 독립'을 외친 김명수 대법원장(2017년 9월~2023년 9월) 체제에서 노골적인 '정치권 눈치보기'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2021년 2월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사표를 만류하면서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정치적 상황도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를 수리해버리면 탄핵 이야기를 못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재명 대표를 대권주자로 키운 판단이 '김명수 체제'에서 나온 사실도 재조명됐다. 이 대표는 2018년 경기지사 선거 과정에서 '친형 정신병원 강제입원' 의혹을 부인하며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를 받았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벌금 300만원의 당선 무효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당시 전원합의체(주심 노정희 대법관)에선 유·무죄 의견이 엇갈렸는데, 권순일 전 대법관의 무죄 의견이 판단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권 전 대법관의 '대장동 50억 클럽' 등이 불거지며 재판 거래 의혹이 제기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야권은 '특별검사(특검) 정국'을 예고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검찰 술판 회유' 주장뿐 아니라, 조국·황운하 사건 등도 살펴봐야 한다는 취지다. 이와 관련해 박찬대 신임 민주당 원내대표는 5월7일 언론 인터뷰에서 야권 인사를 대상으로 한 검찰 수사의 적법성 조사를 위해 특검 도입을 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부장판사 출신 C변호사는 "정치권이나 극성 지지자들의 사법부 비판은 곧 재판권에 대한 중대 침해"라며 "그런데 김명수 체제에서 법관 탄핵 등의 길까지 터주며 '정치가 사법부를 휘두를 수 있다'는 인식이 새겨졌다"고 우려했다.

"사법부가 정치권 눈치를 지나치게 보거나 정치권력자들에 의해 휘둘리는 듯한 느낌을 주게 되면 이는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며 우리 사회 전반의 원칙이 무너질 수 있다"고 걱정한 한 원로 헌법학자의 목소리도 서초동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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