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법 대신 정의 구현(?)…사적 제재 논란

이채윤 2024. 5. 10.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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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구현하는 사적제재” VS “사회와 법 신뢰 무너뜨려”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양형 기준 적극 고민 필요
▲ 일러스트/한규빛

최근 법으로 벌하지 못하는 범죄자들을 처단한다는 ‘사적 제재’ 콘텐츠로 방송하던 유튜버가 범죄 의혹 등을 폭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수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 유튜버는 구독자가 30만명에 이르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압구정 롤스로이스 뺑소니’ 사건 가해자인 신모(28)씨의 고등학교 선배 A씨에게 신씨와의 친분과 A씨의 별도 범죄 의혹을 유튜브에서 공개하겠다고 협박해 3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는다.

해당 유튜버는 사회적 공분을 낳은 폭행·아동학대 사건 등의 가해자 신상을 공개해왔는데, 압구정 롤스로이스 사건 외에 다른 사건 가해자 등 2명으로부터도 같은 수법으로 총 1억8000만원 상당을 받아낸 것으로 조사됐다.

다양한 미디어의 소재가 된 ‘사적 제재’란 법률에 의하지 않고 개인이나 사적 단체가 가해자들에게 가하는 모든 형태의 사회적 제재를 의미한다.

공권력이 아닌 개인들이 누군가를 사적으로 제재하는 것은 법치주의 국가에서 금지되고 처벌의 대상이 되지만 ‘사적 제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이는 공적 사법 체계 등이 ‘정의롭지 않다’는 대중의 인식이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와 사적 제재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 국민사형투표[SBS 국민사형투표 홈페이지 갈무리]

■ 솜방망이 법에 분노를, 사적 제재에 지지를

지난해 SK커뮤니케이션즈가 성인남녀 7745명을 대상으로 ‘범죄 가해자의 신상 공개 및 저격 등 사적 제재’ 논란에 대한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중 49%(3856명)가 적절하다는 지지 의견을 표했다.

이어 전체 응답자 중 44%(3480명) 역시 ‘강력범죄에 한해서 인정한다’며 선택적 지지 의견을 보이기도 했다. 그 목적에 공익성이 있으니 이해가 간다는 입장이다.

사적 제재를 지지하는 배경엔 사법 불신이 가장 크다. 현행 사법 체계에서 사법부가 범죄자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고 있다는 생각이 사적 제재를 지지하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피해가 큰 강력범죄 가해자의 낮은 형량을 보며 사법체계가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지 않다는 실망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사적 제재 유튜브 뿐만 아니라 지난해 11월에는 법이 처벌하지 못한 악질범을 사적으로 처단하는 내용의 SBS 드라마 ‘국민사형투표’가 방영됐다. 악질 범죄자를 대상으로 ‘국민사형투표’를 진행해 사형을 집행하는 내용을 다뤘다. 또 주인공들이 피해자들을 대신해 복수하는 SBS ‘모범택시’ 시리즈, 어머니를 범죄로 잃은 주인공이 악인들을 해치는 디즈니 플러스 ‘비질란테’와 같은 드라마들 역시 호응을 얻었다.

이보다 먼저 2000년대 초 등장한 일본 만화 ‘데스노트’ 역시 개인이 강력범죄자들을 심판하는 내용으로 인기를 끌며 영화화 되고 최근까지도 우리나라에서는 뮤지컬로까지 대중을 만났다.

사법 불신이 낳은 대중의 분노가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사례와 사적 제재를 다룬 콘텐츠들을 소비하게 한다. 사회의 정의가 실현됐다는 생각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제2의 피해자 만드는 사적 제재

하지만 사적 재재는 현행법상 명백히 범죄에 해당한다. 물리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신상 공개를 통한 사적 제재도 경우에 따라 형법상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배드파더스’ 사이트는 양육비 지급 의무를 미이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제보를 받아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이를 두고 대법원은 “신상공개를 사적 제재 수단으로 이용한 것은 명예훼손의 비방의 목적이 인정된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법적 절차가 존재하지 않거나 불충분 하다는 이유로 신상공개를 하는 사적 제재를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다.

무분별한 사적 제재는 사회의 질서와 법에 대한 신뢰를 더욱더 무너뜨릴 수 있으며 선의의 피해자를 낳거나 마녀사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최근 다시 문을 연 ‘디지털 교도소’ 사이트에서 과거 범죄 유무가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의 개인정보를 무더기로 공개하며 신상이 공개된 대학생이 억울함을 호소하다 목숨까지 끊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개인이 불법으로 피의자 신상을 공개한 후 그 피의자가 재판에서 무죄에서 밝혀지는 경우도 있고, 가해와 무관한 이의 신상이 잘못 알려져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아울러 사적 제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논의가 필요하다. 사적 제재에 대한 관련 법률이나 제도는 없으며 개인의 가치 판단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앞서 쓴 구속기소된 유튜버처럼 SNS 상에서 사적 제재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

▲ 일러스트/한규빛

■대중 법 감정과 실제 판결 괴리 극복해야

사적 제재는 불법적인 행위이지만, 대중이 사적 제재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사적 제재에 대한 관심은 강력 범죄자에게 내려지는 낮은 형량에 대한 반감, 즉 사법 불신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대중이 공감하는 적절한 처벌에 대한 생각에 비해 낮은 선고 형량이 사적 제재에 호응하는 원인이다. 또한 사법체계가 피해자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무력감, 그것이 언제 또 나에게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한몫한다.

무분별한 온라인 시대의 사적 제재 무조건 옹호할 수 없다.

대중의 눈높이와 요구에 부합하도록 사법 체계가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공익의 기준과 범위를 고민하고 대중의 법 감정과 실제 판결 사이의 현실적 괴리를 극복하고자 국가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양형 기준을 개선하고, 시대 변화와 대중의 목소리를 반영함으로써 적절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

또한 대중도 사적 제재의 문제점에 대해 인식하고 조금은 냉철한 생각을 갖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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