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를 여전히 사랑하는 바이든이 치르게 될 대가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2024. 5. 1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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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타냐후는 최근까지 여섯 번이나 이스라엘 총리직을 연임하면서 바이든을 포함한 역대 미국 대통령과 애증 관계를 맺어왔다. 특히 바이든은 네타냐후와 오랜 기간 돈독한 인연을 이어왔다.
2023년 10월18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포옹하고 있다. ⓒAP Photo

최근 이란이 시리아 주재 자국 영사관을 폭격한 이스라엘에 대해 300기 이상의 무인기와 미사일을 발사했다. 중동이 일촉즉발의 확전 위기에 빠졌지만 두 나라 모두 확전을 자제하면서 일단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특히 최대 군사 지원국이자 맹방인 미국의 말을 잘 듣지 않던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이하 직함 생략)가 이번에는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7개월째 접어든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의 전쟁 양상에 따라 네타냐후는 언제든 돌변할 수 있다.

이란이 4월13일(현지 시각) 사상 처음으로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한 직후 미국은 곧바로 영국·프랑스 등 유럽 동맹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요르단 등 중동 우방까지 동원해 99% 이상 미사일을 격추해 이스라엘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했다. 이스라엘도 일주일 뒤 이란을 향해 재반격에 나섰지만 핵시설이 있는 나탄즈 근처 이스파한 공군기지에 공격용 드론을 3발만 발사함으로써 확전은 피했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이 당초 이란 수도 테헤란 근처의 군기지 몇 곳을 폭격하려다 미국의 강력한 만류로 대폭 축소했다”라고 전했다. 특히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은 이란의 공격을 받은 직후 즉각 반격하려 했지만 네타냐후가 그날 새벽 바이든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의 전화를 받고 철회했다”라고 밝혔다. 바이든의 전화가 확전을 막은 ‘전환점’이 됐다는 뜻이다.

현 단계에서 네타냐후의 자제는 중동전 확전을 차단한다는 점에서 11월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바이든에겐 좋은 소식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바이든이 안심할 처지는 못 된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지원을 받는 하마스 사이의 전쟁을 하루빨리 끝내는 것이 화급한 일이지만 열쇠를 쥔 네타냐후가 여전히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네타냐후가 미국의 반대에도 난민이 밀집한 가자지구 최남부 라파에 대규모 군사작전을 강행할 경우 또다시 난민 희생자가 급증할 게 확실하다. 그 경우 재선을 노리는 바이든에게 치명적이다.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가 자국 남부 지역을 급습해 1200여 명을 살해하고 250여 명을 인질로 잡자 이스라엘은 하마스 소탕작전에 나섰다. 이 전쟁으로 가자지구 북부에 살던 주민이 남쪽으로 대거 이주하면서 라파 지역엔 약 150만명이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 국제구호위원회(IRC) 집계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최근까지 팔레스타인 주민 3만3000명 이상이 희생됐다. 이 가운데 70%가 여성과 어린이다. 특히 이스라엘이 이들 난민에 대한 국제구호단체의 식량과 물 공급을 제한하면서 상당수 난민이 식량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도 미국은 이스라엘을 감싸기만 하고 제대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며 국제사회에서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올해 3월 상원 다수당인 민주당 척 슈머 원내대표는 네타냐후를 ‘평화의 걸림돌’이라며, 이스라엘 국민이 선거를 새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슈머 원내대표가 네타냐후를 직격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네타냐후가 가자지구의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를 해소하라는 바이든의 거듭된 요청을 보란 듯이 거부하고 ‘마이웨이’를 고집했기 때문이다. 결국 바이든은 네타냐후를 설득하는 것을 포기한 채 미군 C130 수송기를 동원해 피란민이 밀집한 남부 가자지구 상공에서 식량을 투하하는 긴급 계획을 승인해야 했다.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바이든만큼 네타냐후와 오래 인연을 맺어온 사람도 드물다. 바이든은 상원의원 초년 시절 워싱턴 주재 이스라엘 부대사(1982~1984)로 부임한 네타냐후와 첫 인연을 맺었다. 네타냐후가 부대사직을 마치고 유엔 대사로 승진할 당시 바이든은 상원 외교위원장으로 서로 호흡을 맞췄다. 승승장구하던 네타냐후는 1996년 총리가 되었고 최근까지 여섯 번이나 총리직을 연임하면서 바이든을 포함한 역대 미국 대통령과 애증 관계를 맺어왔다.

하지만 네타냐후는 미국 내 막강한 유대인 파워를 등에 업고 종종 오만한 태도를 보여 빈축을 사기도 했다. 단적인 예로, 미국의 중재 아래 2015년 7월 안보리 상임이사국 및 독일이 이란과 극적으로 타결하자 네타냐후는 미국 의회 연설에서 “이란 핵협정은 아주 나쁜 거래다. 그런 협정은 없는 게 훨씬 낫다”라며 노골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중동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그럼에도 바이든 당시 부통령은 “비비, 난 당신이 하는 말에 전혀 동의할 수 없지만 그래도 당신을 사랑하오”라며 네타냐후에 대한 변함없는 친분을 과시했다. 비비는 네타냐후 총리의 별명이다.

“바이든은 철두철미한 시오니스트”

두 사람의 돈독한 관계는 네타냐후가 지난해 3월 사법부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이에 맞서 이스라엘 전역에서 거센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자 틀어지기 시작했다. 바이든이 당시 이스라엘 반정부 시위자들을 옹호하며 “이스라엘 상황을 매우 우려한다. 이런 식으로 이스라엘을 끌고 갈 수는 없다”라며 네타냐후에게 강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출했다. 그러자 네타냐후는 곧바로 “이스라엘은 우방의 압력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 독자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주권국이다”라며 되받아쳤다.

냉랭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공격으로 이스라엘이 전시 상황에 처하면서 다소 복원됐다. 바이든은 하마스 공격 직후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다짐하는 한편 이스라엘을 방문해 네타냐후와 결속을 과시했지만 그를 제어하는 데는 실패했다. 개전 후 물과 식량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가자지구에 인도주의적 참사가 벌어지고 있지만 바이든은 제대로 네타냐후를 압박하지 못했다. 특히 가자지구에서 구호 활동을 벌이던 월드센트럴키친(WCK) 직원 7명이 4월1일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사망하자 바이든은 ”격노했다”라며 공습 책임자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라는 요지의 성명을 발표했지만, 네타냐후를 직접 비판하진 않았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는 최근 칼럼에서 “바이든이 네타냐후와의 개인적 유대를 과신한 나머지 그를 설득할 수 있다고 과대평가한 것 같다”라고 바이든의 ‘오판’을 꼬집었다.

물론 바이든만 결심하면 네타냐후를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비장의 카드가 있긴 하다. 이를테면 매년 38억 달러(약 52조2000억원)에 달하는 미국의 군사원조를 삭감할 수도 있고, 유엔에서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지하는 것을 철회할 수도 있으며,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공급을 제한할 수도 있다. 또 미국 중재로 진행 중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외교관계 정상화 작업도 중단할 수 있다.

하지만 바이든이 이런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제로다. 왜 그럴까? 대니얼 커처 전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는 “바이든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건 친이스라엘 DNA 때문”이라고 말했고, 마틴 인디크 전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도 “바이든은 철두철미한 시오니스트(유대민족주의자)다”라고 말했다. 국무부 출신의 중동 전문가인 애런 밀러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최근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어느 미국 대통령도 바이든처럼 자신을 시온주의자라고 고백한 사람은 없다. 바이든이 이스라엘에 가혹하지 못한 까닭은 자신의 정치적 삶이 이스라엘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바이든의 친이스라엘 이미지는 11월 대선이 다가올수록 그에게 커다란 정치적 부담이다.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폭격으로 무고한 팔레스타인 난민 희생자가 급증하고, 인도주의적 위기가 고조됐는데도 바이든이 단호한 조치 취하기를 주저하자 실망한 친민주당 유권자들, 특히 아랍계 미국인들이 지지를 철회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최근 위스콘신주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 예비경선에서 친민주당 유권자 약 4만8000명이 바이든에 대한 항의 표시로 투표용지에 ‘지지 후보 없음’에 표시했다. 바이든이 지난 대선 때 이 지역에서 고작 2만 표 차이로 트럼프에게 신승했음을 고려하면 이들이 이번 대선에서 투표장에 안 나오거나, 나와도 ‘지지 후보 없음’에 기표할 경우 바이든의 패배는 확정적이다. 이런 현상은 아랍계 유권자가 특히 많은 미시간주에서도 나타났다. CNN은 “바이든이 네타냐후를 굳건히 지지하면서 혹독한 정치적 대가를 치르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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