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지역 대학을 소멸시킨다

이상룡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수석부위원장 2024. 5. 10.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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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육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 ① 아직도 서울대 타령인가

윤석열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3대 개혁정책 중 하나인 교육정책은 그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무전공 무학과 입학제, 글로컬 대학 등 고등교육정책도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이에 한국비정규교수노조에서는 윤석열 정부 고등교육정책의 제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는 연재를 마련했다. 이 연재는 <프레시안>과 <대학지성 In&Out>에 동시 게재한다.편집자

사람이 태어나서 계속해서 키가 자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끔찍한 일이 아닐까? 1930년 케인스는 2030년이 되면 노동시간이 주 15시간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동시대의 러셀은 하루 노동시간을 4시간으로 줄이자고 제안했다. 이들은 일정 수준이 되면 더이상의 성장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멈추지 못했다. 작금의 저출생은 어쩌면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한 대가일지도 모른다.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에서 저출생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저출생이 성장을 멈춰야 한다는 경고라면, 애를 낳으면 돈을 주겠다는 것은 성장 지상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책일 것이다. 저출산 대책에서 실패했듯이 우리는 지역 소멸과 지방대 위기에서도 실패할 것이다. 일본은 오랜 실패 끝에 아이를 낳자고 장려하는 대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데 집중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했다고 한다. 지역 소멸과 지방대 위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역에는 의사도 부족하다. 연봉 3억을 준다는데도 지방에는 오지 않는다. 지역소멸 원인은 일자리나 돈의 문제만이 아닌 것이다.

대학의 위기는 학문의 위기다. 대학이 사라지는만큼 학문은 소수의 연구자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연구자는 아마도 수도권에 몰려 있을 것이다. 지역의 대학은 문을 닫고 있고, 그나마 남아 있게 될 지역 대학들은 생산직 노동자를 양성하는 기관으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 대학의 역할은 직업교육기관으로 고착되고 있다. 지역의 사립대는 취업율이 낮은 인문사회계열 학과를 없앴고, 물리학과 등의 어려운 학과는 폐과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학과를 졸업하더라도 지역에서 얻는 일자리는 저임금 불안정 노동일 것이다. 지역의 학생들은 수도권 대학으로 진학하거나 수도권에서 일자리를 구하고자 한다. 지역은 소멸하고, 수도권은 과밀해지고, 저출생 수렁은 깊어진다.

수도권 대학의 정원을 대폭 줄이면 지방대를 살릴 수 있다. 그러나 누가 그렇게 하자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온 것이 거점국립대 육성일 것이다. 이름하여 '서울대 10개 만들기'. 그런데 지방대 몰락의 원인이 대학 서열체제와 수도권 집중에 있다면, 이는 사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 악화시킬 것이다. 경희대 김종영 교수가 처음 제안한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거점국립대에 서울대 수준의 예산을 투자해 연구중심대학을 육성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할 경우 이들 지역 거점국립대 외의 다른 국립대와 지역의 사립대는 어떻게 될까? 글로컬30 정책으로 지역의 국립대는 거점국립대로 흡수되어 사라지고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에도 이들 대학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거점국립대 집중 육성으로 여타 국립대와 지방 사립대는 죽는다. 거점국립대가 위치한 지역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나머지 지역의 몰락은 가속화될 것이다. 지역 간 불균형은 더 심화될 것이다. 게다가 거점국립대는 과연 수도권 대학들에 대한 경쟁력을 갖추게 될까? 수도권 대학에 대한 선호를 넘어설 수 있을까? 이런 해결책들이 지역 공동체를 파괴한다. 순차적으로 육성하겠다고 할 수 있다. 거점국립대를 먼저 육성하여 수도권 대학과 경쟁력을 갖추고, 그 다음 여타의 국립대를 지원하겠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막상 여타의 국립대를 지원하려고 할 때는 이미 그 국립대는 거점국립대에 흡수통합되어 없을 것이다.

거점국립대만 남기는 것은 패착이다. 국립대는 예산 삭감 없이도 입학정원을 감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거점국립대의 정원을 먼저 줄이고 지역의 국립대를 모두 육성 지원하여 지역의 교육여건을 개선하고 연구기능을 강화할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렇게 하면 지역 사립대의 정원 감축 압박도 완화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 대학이 너무 많다고? 모두가 대학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모두에게 대학 수준의 교육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시대착오이며, 우리나라에 대학이 너무 많다는 것은 현실 파악이 잘못된 것이다. 대학의 소멸을 방치하는 것은 사회의 지식 역량을 소멸시키는 것이며, 대학이 위치한 지역의 경제 위축과 일자리 감소만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그 지역의 지식 역량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그 지역을 식민지화하는 것이다.

지방대는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보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이 오는 곳이고, 따라서 그 수준에 맞춰서 가르쳐야 한다는 인식들이 있다. 지역의 한 사립대에서는 "우리 학교에서는 강독, 이런 수업하면 안 됩니다."고 말한다고 한다. 어려운 것을 가르치면 학생들이 오지 않으니 쉬운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한다. 쉬운 것을 가르치면 학생들이 올 것이냐도 의문이지만, 설령 온다 하더라도 쉬운 것을 배운 학생들이 어딜 가서 취업을 할까? 그리고 쉬운 것을 가르치기나 하는 그 대학의 교수들은 무슨 의욕으로 교육과 연구를 할까?

경쟁 지상주의 벗어나야 한다. 자신이 사는 곳이 정글인 한 아이를 낳을 수 없다. 글로컬30과 라이즈를 반대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도 지역에는 라이즈를 은근히 찬성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방 분권은 늘 진리였고, 교육부의 통제로 대학의 자율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찬성할 수 있다. 그런데 교육부 관료와 달리 지역의 정치인들은 통제할 수 있을까? 라이즈가 되면 지역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을까? 그러나 라이즈를 찬성하는 이들은 진심일 것이다. 서울대10개 만들기를 공약으로 내세운 그들도 진심일 것이다. 그들은 진심으로 지역 소멸과 지방대 위기와 저출생을 그럼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악은 평범하니까.

▲서울대학교 정문 ⓒ연합뉴스

[이상룡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수석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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