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다르게 꿈꾸고 상상하는 동물들, 그들 역시 세상의 건설자 [책&생각]

최원형 기자 2024. 5. 1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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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꿈에 대한 철학적 분석
꿈이란 ‘내면세계’는 인간만의 것?
최신 연구 결과 종합한 증거들
의식의 ‘현상성’에 가치 부여해야
잠을 자고 있는 반려묘는 과연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우리가 동물의 꿈을 볼 수 있다면
동물의 기억, 상상력, 의식에 대한 인문학적 시선
데이비드 엠(M). 페냐구즈만 지음, 김지원 옮김 l 위즈덤하우스 l 1만9800원

동물들도 꿈을 꿀까? 반려견이 자면서 잠꼬대를 하거나 몸을 뒤척이는 모습을 자주 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렇지’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같은 포유류인 쥐는 꿈을 꿀까? 조류인 새나 두족류인 문어는? 답을 내기도 까다로운데, 꼬리를 무는 다음 질문이 더 무겁다. 찰스 다윈의 말을 빌리면, 동물들이 꿈을 꾼다면 “우리는 그들이 어느 정도 상상력을 가졌음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물들이 꿈을 꾼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우리는 과연 동물들을 이전처럼 대할 수 있을까? 과학철학, 동물권 등을 연구해온 데이비드 페냐구즈만(샌프란시스코주립대 부교수)은 ‘우리가 동물의 꿈을 볼 수 있다면’에서 이 난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동물과 꿈에 대한 현대 인지신경과학의 연구 성과들을 두루 살피고, 꿈을 꾸는 동물은 과연 어떤 도덕적 지위를 점할 수 있는지 묻는 철학적 질문으로 나아간다.

지은이는 그동안 인간이 얼마나 “동물을 나름의 정신을 가진 생물로 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멘토포비아’)에 빠져 있었는지 지적하고, 1990년대 이후 크게 늘어난 동물의 감정·인지에 대한 여러 연구 결과들로부터 동물이 꿈을 꾼다는 ‘증거’들을 모아 제시한다. 금화조의 뇌는 자는 동안 두 가지 종류의 신경 패턴을 보이는데, 그중 신경활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패턴은 깨어 있는 동안 노래를 부를 때 나타나는 패턴과 일치한다(전기생리학적 증거), 문어는 잘 때 여러 차례 몸 색깔이 바뀌는데, 이는 먹이를 사냥해 먹고 은신하는 행동을 할 때의 모습과 같다(행동주의적 증거), 1950~60년대 미셸 주베는 렘(REM) 수면 동안 운동신경의 표현을 막는 신경 메커니즘을 비활성화시키고자 고양이의 뇌교망상체의 일부를 잘라냈는데, 그 고양이는 자면서 적과 싸우는 꿈을 실제 행위로 옮기듯 귀를 뒤로 젖히고 앞발을 휘둘러댔다(신경해부학적 증거) 등이다.

피비에스(PBS) ‘네이처’ 프로그램에 등장한 문어 하이디가 수조에서 자는 동안 여러 차례 몸의 무늬를 바꾸는 모습. 각각의 무늬는 먹이인 게를 봤을 때, 잡았을 때, 먹을 때 나타내는 무늬와 같다. 유튜브 갈무리

인간중심적인 잣대를 고수하면 이 증거들을 평가절하할 수 있다. ‘의식을 갖춘 인간의 꿈과는 다른, 동물들의 생리학적 반응’이란 주장이다. 이에 지은이는 “생물이 꿈을 꾸면서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며, ‘의식의 SAM 모형’을 통해 의식과 꿈의 관계를 철학적으로 짚어나간다. SAM 모형은 의식을 내가 현상적 현실의 중심이 되는 ‘주관적’(subjective) 의식, 감정·기분·정서를 느끼는 ‘정서적’(affective) 의식, 성찰적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메타인지적’(metacognitive) 의식 등 세 종류로 나눈다. 꿈은 “주관적 존재감과 육체적 자기인식”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자아’의 존재를 웅변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자아는 인간일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최신의 꿈 연구들은 “감정을 총괄하고 강한 감정이 담긴 기억을 저장하는 지휘본부인 변연계가 꿈 드라마를 지휘”한다는 사실을 명백히 밝혔다. 먹이를 볼 순 있지만 갈 순 없는 미로에 갇힌 쥐들은 자면서 마치 그곳을 실제로 탐색하는 듯한 뇌 활동을 보인다. 이는 그들이 감정적 관심을 자극하는 물리적 환경을 기억하고 욕망을 실현하는 ‘미래 경험’을 적극적으로 상상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메타인지를 보여주는 ‘자각몽’은 인간만이 꾼다고 알려져 있지만, 지은이는 동물 역시 자신이 빠져든 장을 되돌아 보고 어딘가 다르게 ‘느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근거들을 바탕으로 지은이는 “동물의 꿈은 언제나 주관적 의식의 증거이고, 종종 정서적 의식의 증거이며, 가끔씩은 무려 메타인지적 의식의 증거도 된다”고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언어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에 의존하는 인간의 그것과는 다르지만 동물에게 나름의 ‘상상력’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미로 속 쥐들은 직접 가봤던 공간구조(‘재생적 상상력’)뿐 아니라 경험하지 못했던 공간구조(‘생산적 상상력’) 등 모든 종류의 공간구조 배열을 반복해서 떠올리며 ‘인지지도’를 그린다. 유인원은 사진 속 블루베리를 손으로 가져다 입에 넣고 먹는 시늉을 한다. 실제와 가상을 엮어내는 상상력은 근본적으로 ‘인류학적’인 것이 아니라 ‘동물학적’인 것이란 얘기다.

데이비드 페냐구즈만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부교수. 누리집 갈무리

꿈을 꾸는 동물들은 어떤 도덕적 지위를 점할까 논하는 대목이 이 책의 백미다. 철학자들은 대체로 의식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한다. 지은이는 여기에 의식을 ‘접근적’(access) 의식과 ‘현상적’(phenomenal) 의식으로 나누는 철학자 네드 블록의 이론을 끌어들인다. 접근적 의식은 추론·의사결정·언어적 전달 등 무언가를 인지하고 표상하는 기능과 연관된 반면, 현상적 의식은 비기능적이고 비표상적인 감정이나 경험에 연관된다. 이를테면 와인을 마실 때 느끼는 감정, 발가락을 가구에 부딪혔을 때의 고통 등은 접근적인 것이 아니라 현상적인 것이다. 지은이는 이 의식의 ‘현상성’이야말로 ‘나는 무엇인가’의 기반으로, 도덕적 지위를 부여하는 핵심 근거라고 주장한다. 만약 인지 기능을 전제로 한 ‘접근성’을 도덕적 지위의 근거로 삼는다면, 인지장애를 지닌 사람과 모든 비인간 동물들은 거기에서 배제되고 말 것이다. “생물체가 도덕성의 보호 아래에 들어오게 된 이유는 그들이 합리적·자발적으로 행동하거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세상에 관한 현상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들이 감지하고 느끼고, 인지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렇다면 꿈은 왜 중요한가? 꿈은 꿈꾸는 사람에게 인지적 통제가 빠진 경험적 무대를 제공하는, “현상적 내용을 보여주는 한편 인지적 접근을 막아주는 정신 상태”이기 때문이다. “꿈을 꾸는 것은 외부세계의 인도의 손길 없이 주관적 현실을 존재하게 만드는 마술에 준하는 정신적 속임수를 쓰는” 것이란 측면에서, 꿈을 꾸는 동물들은 인간과 다르지 않은 ‘생명의 주체’이며 ‘세계의 건축가’로서 도덕적 지위를 인정받아야 한다. 인간의 우위를 고집하는 편협한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면, 우리는 “꿈을 꾸는 동물들은 꿈을 꾸기 때문에 도덕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아야 하고, 정성과 위엄, 존경심을 갖고 대해야 마땅한 동료 생물”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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