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89살 비비언 고닉 ‘작정하고 읽는 자는 늙지 않고 영원히 성장한다’

고명섭 기자 2024. 5. 10.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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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언 고닉(89)은 전설이 된 미국 여성 저널리스트·작가다.

뉴욕 브롱크스의 가난한 이민자 동네에서 태어난 고닉은 1970년대에 진보적 주간지 '빌리지 보이스'의 기자로 일하며 급진여성해방운동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끝나지 않은 일'은 글항아리 출판사의 '비비언 고닉 선집' 세 번째 책이자 마지막 책이다.

'끝나지 않은 일'은 고닉에게 자기인식의 통로가 돼온 '다시 읽기'라는 행위를 자기 발견과 자기 확장의 방법으로 고찰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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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비평가 비비언 고닉. 위키미디어 코먼스

끝나지 않은 일
비비언 고닉 지음, 김선형 옮김 l 글항아리 l 1만8000원

비비언 고닉(89)은 전설이 된 미국 여성 저널리스트·작가다. 뉴욕 브롱크스의 가난한 이민자 동네에서 태어난 고닉은 1970년대에 진보적 주간지 ‘빌리지 보이스’의 기자로 일하며 급진여성해방운동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자신이 창안한 ‘일인칭 저널리즘’을 비평으로 확대한 ‘일인칭 비평’은 버지니아 울프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거기에 자기서사의 고백이라는 현대적 욕구를 반영함으로써 비평의 새로운 장르가 됐다. ‘끝나지 않은 일’은 글항아리 출판사의 ‘비비언 고닉 선집’ 세 번째 책이자 마지막 책이다. 고닉이 84살에 발표한 최근작이다.

선집의 첫 번째 책 ‘사나운 애착’(1987)은 평생에 걸친 어머니와의 애증을 신랄한 문체로 그린 작품이며, 두 번째 책 ‘짝 없는 여자와 도시’(2015)는 대도시에서 펼쳐지는 우정과 사랑의 진화를 아름답게 포착한 회고록이다. ‘끝나지 않은 일’은 고닉에게 자기인식의 통로가 돼온 ‘다시 읽기’라는 행위를 자기 발견과 자기 확장의 방법으로 고찰하는 책이다.

머리말의 첫 문장에서 고닉은 말한다. “내 경험으론, 인생 초년의 중요했던 책을 다시 읽다 보면 긴 의자에 누워 정신분석을 받는 느낌이 들 때가 꽤 있다.” 그 ‘다시 읽기’가 어떻게 시작돼 반복됐는지 고닉은 머리말의 일생 회고를 통해 밝힌다. 예닐곱살 무렵 브롱크스의 공공도서관에 처음 들어가 책을 만난 뒤 잠수하듯 책 속에 빠져 살았던 고닉은 대학에 들어가서 자신이 읽은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 후론, 내밀한 벗이 된 책들로 계속 돌아가고 또 돌아가곤 했다.”

서른살이 훌쩍 넘어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은 고닉은 1970년대에 여성해방운동을 알게 됐고 ‘성차별주의’라는 말과 조우했다. “성차별주의, 그 한 단어가 이제 내 하루하루를 송두리째 좌우했다. 어딜 보나 성차별주의가 있었다. 길거리에서도 보이고 영화를 봐도 보였다.” 다른 어떤 것보다 ‘문학’에서 성차별주의가 보인다는 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성장기를 함께한 책들을 펼쳐 들고 그제야 처음으로 보았다. 그 책들에 나오는 대다수 여자가 피도 살도 없는 뻣뻣한 막대기이고, 오로지 주인공의 운명에 좌절을 안기거나 행운을 선사하기 위해 등장할 뿐이라는 걸.” 젊은 고닉이 미친 듯이 읽었던 소설 속 주인공들은 거의 모두가 남자였다. “독자로 살아온 일평생 나는 그 남자들과 나를 동일시해왔던 것이다.”

고닉은 그 깨달음을 얻고 날아갈 듯한 희열을 느꼈다. 그러나 10년이 안 돼 다시 새로운 벽이 나타났다. “이미 상처 입고 훼손된 자아로부터 우리 자신을 구원하려면 이데올로기만으론 어림없다는 사실”이 그 벽이었다. 고닉은 자기 자신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마침내 “우주처럼 광활한 내면세계”가 열렸고 “내면의 번뇌라는 드라마가 그 우주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고닉은 읽던 책들을 달라진 눈으로 ‘다르게 읽기’ 시작했다. ‘다르게 다시 읽기’야말로 고닉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문이었고 매번 자아를 새롭게 발견하게 해준 빛이었다. 고닉은 말한다. “위대한 문학은 통합된 실존이라는 업적이 아니라, 그 위업을 향해 발버둥치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각인된 분투의 기록이다.” ‘작정하고 읽는 자는 늙지 않고 영원히 성장한다’는 것을 고닉의 글은 알게 해준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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