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꽃향기로 버무린 주먹밥

관리자 2024. 5. 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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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밥을 넣은 작은 배낭 하나씩 메고 옆지기와 가벼운 산행에 나섰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결엔 온갖 꽃향기가 묻어 있었다.

앞서 산길을 오르는 옆지기는 작은 산자락 하나씩을 휘돌 때마다 향기의 출처에 대해 종달새처럼 재잘댔다.

"꽃향기로 버무린 주먹밥이라 그런지 간소한 식사로도 뿌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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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밥을 넣은 작은 배낭 하나씩 메고 옆지기와 가벼운 산행에 나섰다. 영원사라는 작은 사찰을 향해 오르는 치악산 계곡마다 봄꽃 향기가 진동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결엔 온갖 꽃향기가 묻어 있었다. 산굽이를 돌 때마다 각기 다른 꽃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 돌들, 나무들, 그리고 하늘에 떠가는 구름에도 향기가 묻어 나는 듯싶었다.

“이 향기는 아카시아향 같은데요.”

앞서 산길을 오르는 옆지기는 작은 산자락 하나씩을 휘돌 때마다 향기의 출처에 대해 종달새처럼 재잘댔다.

“어, 이 향기는 초콜릿 냄새가 진한 걸 보니 산더덕향 같네요.”

평소에도 후각이 발달해 냄새에 민감한 그녀는 오늘도 향기의 감별사 노릇을 톡톡히 했다.

산길가에는 참취나 미역취도 눈에 띄어 우리의 걸음을 자주 멈추게 했다. 비탈진 오솔길을 헐떡대며 오르는데, 꽃대가 두루미 다리처럼 긴 두루미천남성 군락 옆에 핀, 잎사귀가 넓적넓적한 곰취도 보였다.

나는 얼른 달려가 곰취를 손으로 쥐어뜯었는데, ‘이런!’ 뿌리까지 쑥 뽑혀 나왔다. 뒤따라오던 옆지기가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뿌리까지 뽑으면 어떡해요! 잎사귀만 뜯으면 될걸.”

그녀는 내 손에서 곰취를 채가더니 잎사귀만 뜯어내고는 뿌리를 가져다 본래 곰취가 있던 자리에 꾹꾹 눌러 다시 심어주었다. 좀 머쓱해진 나는 그녀의 움직임을 그냥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녀의 나무람이 서운하지만은 않았다. 사람들이 산나물을 채취할 때 뿌리까지 뽑아버려 씨를 말리는 몰지각한 일이 너무도 흔한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산을 조금 더 오르다보니 배꼽시계가 울렸다. 배가 출출해진 우리는 점심이나 먹고 가려고 작은 폭포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폭포수가 수직으로 쏟아져 내리고 수면에 닿아 다시 솟구치는 서늘한 물보라를 보고 있자니 산을 오르느라 등줄기에 맺힌 땀이 금방 식었다.

각자 배낭에 담아온 도시락을 꺼내 풀어놓는데, 잠시 앉아서 뜸을 들인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향기를 잔뜩 마셔서 배가 부르긴 하지만 그래도 밥을 먹어야겠지요?”

“그럼, 향기와 밥은 들어가는 곳이 다르잖수!”

이렇게 농을 주고받으며 도시락을 열어 주먹밥을 꺼내 먹었다. 그리고 올라오면서 뜯은 산나물도 미리 준비해온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주먹밥과 산나물이 전부였지만 우리는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린 진수성찬이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주먹밥을 다 먹고 나서 빈 도시락을 배낭에 집어넣던 그녀가 말했다.

“꽃향기로 버무린 주먹밥이라 그런지 간소한 식사로도 뿌듯하네요.”

그렇다. 잡식성인 우리는 온갖 다양한 맛에 마음을 빼앗기며 식탐에 휘둘려 진정한 행복을 잃고 사는지도 모른다. 신이 창조한 피조물 가운데 인간만큼 먹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걸스러운 존재는 없으리라.

“간소한 식사. 그래요, 앞으로 되도록 식생활은 단순 소박하게 합시다.”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정담을 나누고 있는데, 폭포 옆 바위 위에서 또록또록 눈알을 굴리며 우리를 내려다보는 귀여운 녀석이 있었다. 새끼다람쥐. 주먹밥 냄새를 맡고 왔을까. 고수레(음식을 먹기 전에 조금 떼어 던지는 일)를 하는 것조차 잊고 우리만 먹은 것이 새끼다람쥐에게 못내 미안했다.

고진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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