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영웅을 기다리며
지난 4일 별세한 임영웅 선생. ‘고도를 기다리며’로 우리 연극사의 한 획을 그은 ‘문화 영웅’이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 연극 팬들은 이 작품을 통해 부조리극의 당혹스러운 난해함이 다양한 해석의 단초일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연극을 보는 자 누구든 자신의 시대에 맞춰 작품의 의미를 해석할 자유가 있다는 것. 그것이 원작자 사뮈엘 베케트조차 똑 부러지게 밝히지 않은(못한) 의도나 의미가 아닐까.
‘고도를 기다리며’ 블라디미르가 보여주는 낙천주의와 에스트라공이 보여주는 비관주의는 영락없이 우리 내부에 뒤섞여 있는 두 성향이다. 자신의 짐꾼 럭키를 잔인하게 목줄로 매어 노예처럼 부리는 지주 포조는 오늘날 어느 집단의 우두머리와 그 졸개들을 연상시킨다. ‘오늘은 오지 않고 내일 올 것’이라는 고도의 메시지와 의미 없는 정보를 제공하는 양치기 소년은 교묘한 거짓말들로 민초들을 오도하는 SNS 선동자들과 흡사하다. 이처럼 ‘고도를 기다리며’의 부조리는 바로 지금 우리 상황의 절묘한 압축판이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보통 사람들이 따르고 복종할 만한 존재로 ‘초인(超人)’을 내세웠고,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은 ‘큰 바위 얼굴’을 그려냈다. 고도, 초인, 큰 바위 얼굴 등의 함축적 의미는 각각 다르나, 실존의 한계를 넘어서는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같다. 바야흐로 지도자를 참칭하는 사기꾼들의 발호로 국민이 항심(恒心)을 가질 수 없는, 혼란하고 암울한 요즈음이다. 이런 세상을 예견하고, 뛰어난 철학자·문학가들은 의미심장한 존재들을 부조하여 후세에 남겨 주었으리라.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난세를 평정해줄 영웅을 간절히 기다린다. 사기꾼이나 범죄꾼들이 영웅을 가장하고 날뛰는 시절, 힘을 가진 진짜 영웅은 어디에 있는가. 보통 사람들의 소망이나 생각까지도 멋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망상이 지배하고, 가짜 영웅들의 헛된 욕망과 백일몽이 난무한다. 영웅이 등장하기를 고대하면서도 영웅과 사기꾼을 구분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민초들의 한계다. 오늘도 우리는 진짜 영웅을 만나지 못한 채 ‘영웅 대망(待望)’의 비원(悲願)이나 대물림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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