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아파트 주차장에 친 텐트… 즐거우십니까

이정구 기자 2024. 5. 10.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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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파트 주차장에 대형 텐트를 설치해 논란이라는 ‘와글와글’ 계열 뉴스를 봤다. 주차 공간 두 칸을 차지한 텐트 안에는 침낭도 갖췄고 모기향까지 피웠다고 한다.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이라 ‘제정신 아니구나’ 생각했다.

근데 귀가하면서 몇 년 전 지금 아파트로 이사한 뒤 들어간 입주민 단체 대화방이 생각났다. 작심삼일로 끝났지만 엘리베이터 탑승 대신 계단 오르내리기 운동을 택했는데, 장애물이 산더미였다. 계단 곳곳마다 놓인 자전거, 유모차, 의자 같은 온갖 살림살이, 사실 잡동사니에 가까운 물건들이 발길을 막았다. 하나하나 모두 사진 찍어 단체 대화방에 올리고 ‘화재 발생 때 대피 동선을 위해서라도 알아서 치우자’고 의견을 냈다. 별 반응이 없어 머쓱했다.

그래도 변화가 있었을까. 몇 년 만에 꼭대기 19층부터 1층까지 계단을 다시 내려가며 살펴봤다. 부동의 1위로 예상한 자전거.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계단 난간마다 줄줄이 걸려 있었다. 총 20대. 이어 화분 7개, 낡은 서랍 5개, 의자 5개, 유모차 3개, 킥보드 2개, 테이블, 빨래건조대, 요가매트, 카시트 등. 72세대가 사는 아파트 계단에 잡동사니 52개가 놓여 있었다.

저마다 ‘이 정도는 작으니 내놔도 되겠지’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아파트 화재 경보 알림 오작동 때마다 ‘실제 상황이면 어쩔 뻔했느냐’, ‘관리사무소의 안전 불감증’이라고 항의하던 사람들이 맞나 싶었다. 성인 4명은 거뜬히 앉을 수 있는 크기 테이블이 계단 중간을 막고 있는 걸 보고, ‘불이라도 나면 탈출은 못 하겠구나’ 생각했다. 말끔한 상태로 덩그러니 놓여 있는 부츠 한 켤레는 추리 퀴즈 같았다. 비를 맞아 냄새 나는 부츠를 집에서 말리기는 싫고, 현관 바로 앞에 내놓기는 또 민망하니 굳이 방화문까지 지나 계단 통로에 뒀을까.

‘카페에 놓인 노트북은 절대 훔쳐가지 않아도 자전거는 훔쳐가는 이상한 한국인’이라지만, 공용 공간, 자신과 타인의 경계에 있는 애매한 공간을 이상하게 쓰는 일은 여러 번 겪어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카페에 멀티탭을 챙겨와 모니터까지 설치하고 전자기기 여러 대를 사용한다든지, 공간이 넓지 않은 KTX 열차나 고속버스에서 뒤에 앉은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의자 등받이를 끝까지 젖힌다든지.

쿠팡이 신선식품 배송 때 주로 사용하는 프레시백(보랭백)에 생활 쓰레기를 담아 내놓는다는 일화도 종종 올라온다. 쿠팡 배송 기사로 일했던 친구는 작년 프레시백 안에서 죽은 쥐를 발견했다며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고 하소연을 한 적도 있다.

이런 극단적 사례에 비하면 단체 대화방에 올린 사진을 보고 누군가는 ‘불이 난 것도 아니고, 작은 물건들인데 왜 유난이냐’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렇게 팍팍하게 살고 싶지도 않고, 잡동사니 52개를 내놓은 다수 입주민과 당장 싸울 자신도 솔직히 없다. 다만, ‘그런 물건들이면 집 안에 충분히 들여 놓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묻고 싶다. ‘나 하나쯤이야’로 시작해서 애꿎은 사람이 피해를 본 사고가 끊이질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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