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남편이라는 태양에 다가가다 불타버린 그녀, ‘차이콥스키의 아내’

신정선 기자 2024. 5. 1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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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65번째 레터영화 ‘차이콥스키의 아내’입니다. ‘범죄도시4′가 상영관을 잠식한 요즘, 오늘 소개할 ‘차이콥스키의 아내’는 영화관을 여기저기 찾아봐도 하루에 단 1회 상영하는 곳이 대부분이네요. 이렇게 움츠러 있기엔 너무 아까운 이 작품, 클래식을 좋아하시거나, 차이콥스키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더욱 흥미롭게 보실, 문학적인 혹은 연극적인 영상을 좋아하셔도 재밌게 보실 영화입니다. 아닌 줄 알면서 안 될 줄 알면서도 갖고 싶었던 그 남자, 차이콥스키. 한 여성의 눈 먼 욕망을 위한 파멸의 교향곡, 영화 ‘차이콥스키의 아내’입니다.

영화 '차이콥스키의 아내' 중 한 장면. 애틋한 러브신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정반대. 차이콥스키가 그녀를 거칠게 밀어내기 직전, 찰나를 담은 장면이거든요. 남편이 그렇게나 질색하는 붉은 드레스를 차려입고, 만나주지 않으려는 그를 찾아간 여자. 그녀가 사랑하는 것은 남편일까요, 남편의 명성일까요, 아니면 그 명성이 남긴 환영일까요.

차이콥스키를 좋아하시나요. 전 차이콥스키 하면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납니다. ‘백조의 호수' 무대에서 날아오르던 아담 쿠퍼(빌리의 성인 역을 맡았던 댄서). 봐도봐도 짜릿해서요. 차이콥스키는 동성애자였다는 게 학자들의 정설입니다. 영화 ‘차이콥스키의 아내’는 동성애자 차이콥스키의 실제 아내였던 안토니나가 주인공이고요, 그녀의 시점에서 둘의 만남과 죽음까지를 보여줍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내용과 역사적 팩트를 비교해봤는데, 의외로 상당 부분 사실이더군요. 왜 의외냐, 저게 사실일까 싶은 부분이 꽤 있거든요. 엮이지 않았어야 할 관계의 끈에 칭칭 감겨 고통 받던 두 사람.

영화는 차이콥스키 장례식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죽어서 누워있던 차이콥스키가 벌떡 일어나요. 찾아온 여자에게 소리를 치죠. “저 여자 왜 왔어? 누가 부른 거야! 당신이 지긋지긋해! 끔찍해! 날 사랑하지 않았잖아!” 비명처럼 지르는 이 소리는 장례식장에 찾아온 아내 안토니나에게 하는 말. 안토니나는 법적으론 끝까지 아내였지만 오래 전부터 차이콥스키에겐 남보다도 못한 타인이었죠. 당연히 장례식장에도 불청객이었고요. 둘이 결혼해 같이 산 기간은 불과 6주였다고 하네요. 영화적 상상력으로 구상한 도입부부터 범상치 않은 ‘부부’ 사이를 보여주죠.

‘아니, 그럼 애초에 결혼은 왜 했어?’ 싶으시죠. 영화에 나오진 않지만, 학자들 견해론, 차이콥스키가 사귀던 남성이 결혼을 해버렸다고 합니다. 여자하고요. 19세기 러시아에서 동성애자들은 사회적 위신을 위해서라도 결혼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차이콥스키는 (남자) 애인의 결혼을 보면서 본인도 같은 선택을 고려했다는 거죠. ‘그래, 다들 그렇게 사는데 나도 한 번?’ 이런 생각이었다는 건데, 훗날 평생 후회할 결정이 됩니다.

그에게 결혼해달라고 애원하던 모스크바 음악원 학생이 안토니나. 멀리서 그를 지켜보다 완전히 빠져버려요. 영화에 이 부분이 자세히 등장합니다. 차이콥스키에게 편지를 보내 집으로 와달라고 하고, 찾아온 그에게 매달려요. “처음 본 날부터 한 가지만 원했어요, 선생님을 안고 키스하고, 한평생 같이 살고 싶어요. 당신은 딴 남자들과 달라요. 당신을 지켜주고 싶어요. 첫 키스도 당신하고 하고 싶어요.” 네, 첨으로 둘이 만난 날 대사가 저 정도입니다. 거짓말도 서슴치 않고요. “저 지참금 많아요”라고 했는데, 사실이 아니었죠. 차이콥스키는 “난 한평생 여자를 사랑해 본 적이 없다. 까칠하고 예민하다, 단점도 많다”며 거절하죠. 그래도 하도 안토니나가 적극적이니 “형제 간의 우애 같은 사랑에 만족할 수 있다면”이라는 조건을 달고 결혼합니다.

싫다는 남편 차이콥스키를 스토킹하듯 찾아온 아내 안토니나. 그녀를 사로잡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학자들 정설에 따르면, 둘은 단순히 동성애 이성애 차원에서가 아니라 성격적으로도 전혀 맞지 않았다고 합니다. 차이콥스키가 결혼 후 우울증에 시달리죠. 반면 안토니나는 매우 행복해했다고 합니다. 안토니나는 한 편지에서 “아침에 차를 마시는 그를 보면 마음이 녹는 거 같아. 너무 잘생겼어. 내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줘. 그를 바라보며 생각해. ‘이 남자는 내 거야, 아무도 뺏어갈 수 없어!’”라고 썼다고 하는데요, 영화에서도 그녀의 이런 심리를 아주 잘 보여줍니다. 자신의 환영에 갇힌 여자. 사랑을 사랑하는 여자. 파국은 시작부터 불가피했죠.

행복에 젖은 안토니나와 달리 차이콥스키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작곡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결혼 후에도 차이콥스키는 아내에게 손가락도 대지 않는데요, 참다못한 안토니나가 어느 날 꽃단장을 하고 차이콥스키 침대로 쳐들어가요. “당신은 내 거에요!” 차이콥스키가 그녀를 밀쳐내는데, 참 보고 있기가.... 종국엔 그가 도망치듯 집을 나가 별거. 실제론 그게 마지막이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는 잠깐이지만 이후에 두어번 만나는 걸로 나오고요 그 짧은 만남의 서글프고 기묘한 긴장을 끌어내는 연극적인 연출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사실인데도 비현실적인 둘의 관계를 움직이는 추상화처럼 영상에 담았어요. “이 감독 연극 좀 했나?” 싶었는데 역시나 연극 연출도 했더군요.

차이콥스키는 안토니나에게 이혼해달라고 여러 번 종용합니다. 안토니나는 끝까지 거부하고요. “그는 신이 주신 영원한 제 남편이에요!” 전 이 영화에서 처음 알았는데, 안토니나가 아이를 셋이나 낳았대요. 응? 남편이 손가락도 안 댔다며? 네, 남편 말고요, 다른 남자하고요. 그런데 그 아이 셋을 모두 고아원에 보냈다고 하네요. 그리고 셋 다 거기서 죽었다고 합니다. 이것도 역사적 사실. 당시 러시아에서 이혼은 상대편의 외도 등 제한적인 조건에서 가능했대요. 안토니나의 출산 이후엔 차이콥스키가 이혼을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런데도 안 한 것은, 일부 학자의 추측에 따르면, 이미 그 때쯤엔 안토니나가 차이콥스키에게 이미 의미가 없는 존재, 굳이 수고롭게 이혼까지 하고말고할 정도의 가치조차 없어져버린 존재가 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냥 조용히 외면하고 덮어버리는 게 더 나은.

차이콥스키 주변 사람들이 안토니나에게 이혼을 권하며 말해요. “제발 태양이 편하게 빛나게 놔줘요.” 안토니나도 차이콥스키가 태양인 걸 알고 있었습니다. 불타버릴 줄 알면서도 무모하게 다가가던 그녀는 다 타버려 재가 되면서도 자신을 속인 자신과 타협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사랑했던 혹은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욕망의 바닥을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 역시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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