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석재의 돌발史전] ‘대도(大盜)’의 시대는 정녕 지나갔는가

유석재 기자 2024. 5. 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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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대도로 불린 상습절도범 조세형. /뉴스1

‘논어(論語)’ 안연(顔淵)편엔 이런 말이 나옵니다.

季康子患盜, 問於孔子. 孔子對曰: “苟子之不欲, 雖賞之, 不竊.”

(계강자환도, 문어공자. 공자대왈: “구자지불욕, 수상지, 부절.”)

계강자(季康子)가 도둑을 걱정한 나머지 공자께 그 대책을 물었다.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만일 그대가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면, 비록 백성들에게 상을 주면서 시킨다고 해도 도둑질하지 않을 것이다.”

이 구절에는 조금 다른 해석도 있습니다. 예컨대 다산 정약용은 이렇게 풀이합니다. “만일 그대가 백성들이 도둑질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교화를 베풀고 살기 좋게 해 준다면) 상을 준다 해도 도둑질하지 않을 것이다.” 큰 틀에선 ‘정치를 잘해 백성들이 살기 좋아진다면 도둑질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의미인 것은 같습니다.

10년 전, 20년 전과 비교할 때 확실히 우리나라의 치안은 좋아졌습니다. 유튜브에선 커피숍에서 노트북이나 휴대전화를 자리에 놓고 나가도 아무도 훔쳐가지 않는다는 걸 신기해하는 외국인의 목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국민 수준이 높아진 결과라는 의견도 있고, 곳곳에 CCTV가 설치된 효과라고 보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대적으로 손쉬운 절도(竊盜)가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2000년도 초에 출현했던, 냉장고나 에어컨을 통째로 들고 가거나 아예 총기를 들고 은행에서 강도짓을 하던 복고풍 도둑의 모습은 이제 많이 사라졌습니다. 2001년 대전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의 주범들이 사건 21년 만에 검거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좀도둑은 여전합니다. 최근 뉴스를 보면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에서 탐나는 식물을 훔쳐 가는 좀도둑이 기승을 부리고 있고, 대전 유성온천 사우나에서도 좀도둑이 활개를 치고 있다고 합니다. 저도 얼마 전 서울 한 커피숍에서 S펜을 흘렸다가 다시 찾지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에 ‘대도(大盜)’라는 엄청난 이름으로 불렸던 한 인물은 최근 들어 다세대주택에서 저금통을 터는 등 좀도둑 행각을 벌이며 여전히 감옥을 들락거리고 있기도 합니다.

이제 과연 ‘대도’의 시대는 지나간 것일까요?

위의 ‘논어’에서의 대화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계강자란 인물은 당시 노(魯)나라의 최고 권력자였습니다. 노나라의 3대 권력가문인 삼환(三桓) 중에서도 권력 쟁탈전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거둔 계씨(季氏), 그 가문 내의 쿠데타로 적자(嫡子)의 자리를 계승한 계강자. 자기 집 뜰에서 주(周) 천자(天子)의 의례인 팔일무(八佾舞)를 거행함으로써 공자로 하여금 탄식하게 했던 그 계씨 집안의 대표적 인물이었습니다.

공자 자신은 결코 일생동안 그 정권하에서 출사(出仕)하지 않았으나, 정권이 바로 그의 손아귀에 있다는 정치적 현실을 공자마저도 외면하지 못해 자공(子貢), 자로(子路), 염구(冉求)와 같은 수제자들을 그 가문의 가재(家宰) 자리를 통해 입사(入仕)시켜야 했습니다.

공자는 말합니다. “그대, 왜 나라에 도둑이 들끓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는가? 모든 도둑들은 도둑이기 이전에 원래 백성이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가? 백성들이 살기 힘들어진 것은 모두 다 위에 있는 자들이 탐욕스럽기 때문인 것! 위정자들이여, 탐욕을 부리지 말라! 그렇다면 땀흘려 일하는 국민들은 허무감에 빠지지 않을 것이고, 공짜를 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주자(朱子) 주(註)에서 호안국(胡安國)은 이 대목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계씨는 정권을 도둑질하고, 강자는 적자(嫡子)를 빼앗았으니, 백성들이 도둑질하는 것은 정말이지 당연한 일이었다. 어찌 그 근본을 돌이키지 않겠는가? 공자께서 탐욕을 그만두라는 말씀으로써 계도해 주셨으니 그 뜻이 깊다.’

불행히도 ‘논어’ 전편을 통해 나타난 공자와 위정자들과의 대화에서 과연 위정자들이 그 말에 따랐다는 증거는 별로 없습니다. 그 대화가 끝난 직후에야 물론 감명을 받았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좌전(左傳)’이나 ‘사기(史記)’ 어디에도 그 말씀을 정책으로 실천했다는 이야기는커녕, 개인적인 수신(修身)의 요체로 삼았다는 기록조차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노(魯)는 이미 망해가는 나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장자(莊子)’ 도척(盜跖)편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小盜者拘, 大盜者爲諸侯. 諸侯之門義士存焉.

(소도자구, 대도자위제후. 제후지문의사존언.)

작은 도둑은 잡히게 마련이지만, 큰 도둑은 제후(諸侯)가 된다. 제후가 되기만 하면 그 문앞에는 인재들이 (저절로) 몰려들게 마련이다.

구구절절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죠. 크거나 값비싼 물건을 훔쳐간다고 해서 ‘대도’는 아닙니다. 대도는 훨씬 더 높은 경지에 있습니다. 드러나지 않고, 설사 드러나더라도 다른 곳에 이목을 집중시켜서 관심을 벗어나는가 하면, 정치적 국면이 달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해명 한 마디 없이 다시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그런 사람들 말입니다. 모든 대도의 거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불로소득(不勞所得)을 아주 쉽게 얻는다는 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소득이 다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밑바탕이 되는 것 같은 모습을 보면 어제 먹은 초밥이 식도를 역류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지난 총선 관련 기사에서 눈에 띄는 댓글이 하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쁜 놈보다 답답한 놈을 더 싫어한다.’ 읽고 나니 고구마 열 개 쯤을 한꺼번에 삼킨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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