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새에 관한 몇 가지 풍경
공중을 휘젓는 새는 수시로 머릿속으로 들었다가, 앉았다가, 날아간다. 새가 날면 나는 움푹 꺼진다. 나를 개구리처럼 우물 바닥에 내동댕이친 뒤 아득히 멀어지는 새. 출구를 찾아 또 떠나는 그 새들에 관한 몇 개의 풍경.
오래전, 라디오에서 들은 사연이다. 병실의 한 환자가 자신은 새인데 잠시 인간으로 변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무도 들은 척 아니하자, 의사와 간호사를 모이게 한 뒤, 멀뚱멀뚱 쳐다보는 가운데 창문을 드르륵 열고 푸드덕푸드덕 날아갔다고 한다.
영화 <버드맨>은 근육질의 남자가 팬티만 걸친 채 벌새처럼 공중부양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영화는 요란하고 복잡했다. 어쨌든 많은 이야기를 담았지만 이런 한 줄 평도 가능하겠다. 욕망으로 불룩한 도시는 성공의 상징처럼 빌딩과 옥상이 즐비한 곳. 높이 오를수록 깊이는 비례하고, 추락에 가속도가 붙는다. 한 발짝 삐끗해도 아찔한 죽음. 이런 태연한 현상이 범람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사람이 새로 변해 창문에서 날아가는 장면도 있다.
앞서의 라디오 사연은 누가 ‘유머’라고 소개한 것인데 아무도 웃지 않았다. 나는 한참 있다가 나중에 크게 웃고 혼자 메모했다. <버드맨>을 볼 때 퍼뜩 이 사연이 생각나고 누가 이 영화를 보고 투고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새는 ‘사이’의 준말인 것 같다. 이승과 저승의 사이, 그 접면을 휘젓고 다니는 공중의 신사숙녀들. 그러니 아무리 으슥한 곳에서도 새는 맞닥뜨리게 된다. 혹 저 새는 나의 동태를 살피는 척후병이 아닐까. 눈을 마주치면 얼른 외면하고 지지배배 제 암호로 어디로 보고하는 새.
주걱댕강나무는 양산 천성산에 자생하는 귀한 나무다. 그 나무의 꽃을 보러 탐사 떠날 때 기회가 왔다. 동학의 최제우 대신사께서 우주와 천지를 관통하는 깨달음을 얻은 현장인 ‘적멸굴’이 천성산 정상 부근에 있는 것. 오래된 숙원 풀 듯 참배했다. “경주의 최복술(최제우)이 적멸굴에 가서 도통하여 수리가 되어 날아갔다“(<동학 이야기>, 표영삼)는 전설처럼, 이날 내 머리 위에서 나사 박듯 큰 새가 유유히 회전했다. 시간의 강물에서 내가 보고 만지는 것, 각주구검일지라도 어디선가 들리는 새의 울음이 경전처럼 동굴을 감싸며 내 마음을 깎아 주었다.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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