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122) 강화도 용흥궁

기자 2024. 5. 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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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서자’로 왕위 오른 철종, 그의 ‘로즈버드’는 농부 시절이었을까
철종 용흥궁 1971년. 셀수스 협동조합 제공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의 후손은 대대로 조선의 왕위에 올랐다. 아들인 정조, 손자인 순조, 고손인 헌종이 그들이다. 헌종이 후사 없이 23세에 사망함에 따라 정조계 왕통이 단절되었다. 순조 때 권력을 장악한 안동김씨 세도정치는, 김조순의 딸이자 대왕대비인 순원왕후의 주도로 왕실 종친을 샅샅이 뒤져 강화도에서 농부로 살던 이원범을 찾아 순조의 양자로 입적하여 왕위를 잇게 하니 그가 바로 조선 제25대 국왕 철종이다.

영조가 숙종의 서자이고, 사도세자가 영조의 서자인데, 철종은 사도세자의 서자인 은언군의 서자인 전계군의 서자이므로, 5대 서자로서 왕위에 오른 것이다. 철종은 할아버지와 이복형이 역모 등으로 사사되는 것을 목격했기에, 강화도에 자신을 왕으로 옹립하려는 행렬이 왔을 때 산속으로 도망쳤다고 한다. 함께 도망치던 형 이욱은 다리가 부러졌다고 한다.

철종이 왕이 된 후 강화도에 있던 그의 집은 용흥궁(龍興宮)이라는 이름으로 격상되었는데, 사진 속의 집이 바로 그것이다. 농부가 어떻게 이렇게 좋은 집에 살았을까 의아할 수 있을 것이다. 정상적인 법통이 아닌 방식으로 왕이 된 사람이 왕이 되기 전에 살던 집을 ‘잠저(潛邸)’라 하는데, 잠저는 보통 왕위에 오른 후 다시 지었다. 원래 초가였던 집을 철종 4년에 강화 유수가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지었고, 1903년에 중건했다 한다.

철종 용흥궁 2024년. 셀수스 협동조합 제공

세월이 흘러 많이 허물어진 것을 1974년에 크게 보수했고 그 이후로도 손을 봐서 1971년과 지금의 용흥궁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밝게 채색되고 말쑥하게 꾸며진 지금의 담장보다 오히려 얼키설키 쌓아진 돌담이 훨씬 역사의 맛을 느끼게 한다. 강화경찰서 왼쪽 담 옆길을 따라 70m 정도 들어가면 용흥궁을 만날 수 있다.

오슨 웰스의 명작 <시민 케인>을 보면 주인공 케인이 방 안의 물건을 부수다가 유리공 장식물을 손에 쥐고 눈물이 가득 고인 채 ‘로즈버드(Rosebud)’라 한마디 읊조린다. 케인의 삶을 추적하던 기자는 그 말의 의미를 알아내려 하지만 결국 진실을 밝히지 못한다. 유품이 소각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어릴 때 타고 놀던 썰매가 보이는데, 썰매에는 ROSEBUD라고 쓰여 있다.

부와 권력을 손에 쥐었지만 그가 정말 행복했던 기억은 썰매 타고 놀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32세에 왕으로 세상을 떠난 철종에게 강화도의 농부 시절은 그의 로즈버드가 아니었을까?

* 이 칼럼에 게재된 사진은 셀수스 협동조합 사이트(celsus.org)에서 다운로드해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해도 됩니다.

김찬휘 녹색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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