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옳은가를 찾는 ‘기술’[책과 삶]

최민지 기자 2024. 5. 9.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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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론
최재천 지음
김영사 | 224쪽 | 1만8000원

“알면 사랑한다.” 평생 인간과 자연을 관찰해온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자신의 책에 사인을 할 때마다 적어넣는 문장이다. 올더스 헉슬리가 <영원의 철학>(1945)에서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만 사랑할 수 있다”고 단언한 데서 따온 말이다. 최 교수에게 있어 사랑은 ‘앎’의 한 형태이고, 여기서 사랑이란 성애적 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하지만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다툼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사회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최 교수가 신간 <숙론>(熟論)에서 강조하는 것도 이것이다. 숙론이란 여럿이 특정 문제를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의논하는 과정으로,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찾는 데 목적이 있다.

저자는 반세기에 이르는 교육 현장 경험을 토대로, 평생 닦아온 자신만의 숙론 노하우를 공유한다.

기존의 책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숙론을 잘하는 법보다 숙론을 잘 이끄는 법을 말한다는 것이다. 하버드대 학생 시절부터 제돌이 야생방류 시민위원회, 기획재정부 중장기전략위원회 등 각종 학회, 위원회에 참여한 경험은 그를 탁월한 사회자로 만들었다. 그의 조언은 매우 구체적이다. 지나치게 쾌적한 공간은 숙론에 부적합하다거나 단정적 어법을 쓰지 않는 규칙을 정해야 한다는 등의 ‘기술’이 소개된다.

저자는 숙론하지 않는 한국사회 미래가 밝지 않다고 하면서도 결코 비관하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 한국인은 ‘두뇌와 심장의 거리가 가까운’ 사람들이다. 앎과 실행의 간격이 멀지 않아 빠르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숙론 문화만 제대로 정착하면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할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역시 알면 사랑할 수밖에 없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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