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하연의 여의도 돋보기] FTX는 투자자 전액보상?…韓 당국에 쏠리는 눈

신하연 2024. 5. 9. 18: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픽사베이 제공]

<글쓴이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했나요. 어렵고 딱딱한 증시·시황 얘기는 잠시 접어두고 '그래서 왜?'하고 궁금했던 부분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하나씩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지난 2022년 11월 파산하면서 가상자산업계는 물론 전통 은행권에까지 여파를 미쳤던 가상자산 거래소 FTX를 기억하실 겁니다.

당시 단순히 비트코인 등 코인 가격만 20%씩 급락한 것이 아니라 제네시스 글로벌캐피털(GGC)과 블록파이가 도산하고, 가상자산 대부업체 제네시스 트레이딩, 가상자산거래소 제미니 등이 신규 대출과 자금 인출을 중단하기도 했었죠.

미국 지역은행 중 FTX와 거래하며 가상자산을 달러화, 유로화로 바꿔서 보관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던 실버게이트가 파산했고 그 영향으로 뱅크런이 일어난 실리콘밸리뱅크까지 결국 파산하는 등 '나비효과'가 한동안 이어지며 전 세계에 충격을 가져왔습니다.

FTX에 투자한 일본의 소프트뱅크,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미국 실리콘밸리 밴처캐피털 등도 투자자금을 장부상 전액 손실 처리했고요.

이랬던 FTX가 최근 '깜짝 소식'을 발표했습니다. 지난 7일(현지시간) FTX 변호사는 모든 FTX 채권자가 보관자산의 118%에 해당하는 현금을 상환 받게 될 것이라고 발표하고 이같은 내용의 회생계획을 델라웨어 연방 파산법원에 제출했습니다.

파산법원의 승인을 받으면 향후 몇 달 내 보상금 지급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파산 당시 보유 자산 가치를 기준으로 상환하는 계획이기 때문에 고객 입장에서는 그동안의 자산 가치 상승분은 반영하지 못하지만, 당초 채권자의 자금 회수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전망이 기정 사실화 됐던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입니다.

실제로 파산 사건으로는 이례적인 속도의 자금 회수이기도 하고요. 대표적인 파산 스캔들로 꼽히는 엔론 사태의 경우 파산 계획이 승인되는 데만 약 3년, 채권자에게 자금을 분배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FTX의 전액 보상 뉴스를 보자마자 떠오른 건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고팍스였습니다. 고팍스는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 '고파이'의 운용을 제네시스 캐피탈에 위탁하고 있었는데 FTX 파산 이후 유동성 위기에 빠진 제네시스가 지급불능을 선언하면서 고파이 자금이 묶인 상태입니다.

고팍스가 원리금 지급이라는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해외거래소 바이낸스와 손을 잡는 것이었습니다. 고팍스 창업자들은 바이낸스에 지분을 증여, 구제금융을 받기로 했고 이에 따라 바이낸스는 고팍스에 상환 자금을 차입해주고 설립자와 기존 주주들의 구주를 확보해 최대주주로 올라섰습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대주주 적격성을 이유로 고팍스의 가상자산사업자(VASP) 변경 신고를 1년 넘게 미루면서 발목이 잡혔습니다. 중국계 거래소인 바이낸스의 지배구조가 불투명하고 자금세탁이나 불법송금 위험성이 있다는 게 당국의 주장입니다.

고파이 투자자들은 금융당국이 하루 빨리 결정을 내리길 촉구하고 있습니다. 업계에 투자자 보호를 강조하는 당국이 오히려 명확한 기준도 없이 대주주 변경 승인을 미루며 투자자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당국의 결정이 늦어지면서 피해를 보는 건 고팍스도 마찬가집니다. 바이낸스가 고파이 피해금액 700억원 중 25%는 선지급했고 나머지 75%(566억원)은 신고 수리 후 지급하기로 했는데 당국의 수리가 늦어지면서 이도저도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지난해 2차 상환까지 400억원가량 상환했지만 가상자산 가격 상승에 따라 2023년 초 566억원이었던 미지급금 잔액이 작년 말 640억원 까지 늘었습니다.

투자자 자금 상환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한편 지난해 말부터는 일부 재무 개선 흐름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국이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않으면서 투자자들의 시선도 싸늘하게 식을 수 있다는 점도 부담 요인입니다.

지난해 6월 하루인베스트와 델리오의 투자자 예치자금 '먹튀' 사건을 봐도 금융당국이 소비자 보호 측면의 책임론에서 자유롭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이들 업체는 코인을 예치하면 운용을 통해 연 10~12% 수준의 이율을 제공한다고 홍보하며 예치 코인을 끌어 모았는데, 돌연 출금을 막고 잠적하면서 코인을 맡긴 고객 입장에선 하루아침에 보유 코인이 사라지게 된 거죠.

금융감독원은 하루인베스트 입출금 중단 당시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 대상이 아니라 당국의 감독 대상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델리오가 출금을 중단한 이후에도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델리오는 금융당국으로부터 VASP 허가를 받은 정식 업체였고, '당국의 공인'을 내세워 투자자들을 모집했기 때문에 충격이 더 컸습니다.

하루인베스트와 델리오 투자자들도 당국의 VASP 인허가 기준이 불명확하고 사후 관리·감독 역시 소홀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고팍스 사례와 하루·델리오 사태 모두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피해를 본 투자자들의 분노가 해당 회사보다는 당국으로 많이 향하고 있단 겁니다.

업권법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나서기 어려운 상황도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당국이 나서서 정리해줘야 할 문제들까지 방치된 상태로 누적되다 보면 '레드 테이프'(red tape·관료제적 형식주의 또는 문서주의)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질 겁니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발전은 한걸음 멀어질테고요.신하연기자

summer@dt.co.kr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