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 영업익?…정유사, 실적착시 속앓이

김희수 기자(heat@mk.co.kr) 2024. 5. 9. 17: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원유재고 장부가치 올랐지만
환차손·법인세 제외하면
1분기 순이익 쪼그라들어
영업익 대비 순익 22% 불과
삼성·현대차 등 88%와 큰차
정제마진 3개월 연속 하락
탈탄소 투자비 확보 난항

유가 상승으로 호실적을 거둔 정유업계가 '실적 착시 효과'에 남모를 고민을 하고 있다. 이미 사놓은 원유의 재고 가치가 올라 장부상 영업이익이 크게 잡혔지만 실제 손에 쥐는 당기순이익은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정제마진 하락세와 더불어 탈탄소 시대를 앞두고 생존을 위한 사업 전환 투자비를 확보해야 한다는 과제도 정유사들에 시름을 더하고 있다.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의 당기순이익 합계는 3994억원으로 영업이익(1조8006억원)의 22%에 불과했다. 기업 경영평가에 흔히 활용되는 영업이익에 비해 최종적인 순이익 규모가 현저히 작은 셈이다.

올해 1분기 SK이노베이션은 영업이익 6247억원을 기록했지만 927억원의 당기순손실로 고개를 숙였다. 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는 영업이익이 각각 4166억원, 4541억원, 3052억원이었다. 순이익은 각각 2202억원, 1662억원, 1057억원으로 나타났다.

정유 4사 가운데 두 지표 간 차이가 가장 작은 GS칼텍스도 영업이익 대비 당기순이익 비율은 53%로 절반가량에 불과했다. 반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자동차·LG전자 등 국내 주요 4개 기업의 영업이익 대비 당기순이익 비율은 평균 88%에 달했다.

정유업계 순이익 규모가 급감한 주요 원인으로는 강달러(원화 약세)가 지목된다. 원자재인 원유를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환율 충격에 많이 노출되는 사업 구조를 갖고 있다.

원유 도입 계약을 체결한 시점부터 대금을 납부하기까지의 기간에 달러당 원화값이 내리면 그만큼 부담이 늘어나는 환차손이 발생한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최근 달러당 원화값이 지난해 말 대비 100원 가까이 떨어지면서 올해 1분기에만 약 1500억원의 환차손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과대평가된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책정되는 법인세 부담도 문제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정유사가 보유한 원유의 재고 가치는 늘어난다. 한 국내 정유사는 유가가 10달러 상승하면 재고 평가에 의해 2500억원가량의 장부상 이익이 자동 발생한다. 실제 현금흐름은 없지만, 과세표준 200억원 초과 시 21%인 법인세율을 고려할 때 약 625억원의 추가 지출 부담이 생기는 셈이다. 또 유가 상승에 의한 재고 평가 이익은 유가 하락기에 다시금 손실로 반영될 수밖에 없다.

정유 산업의 수익성과 직결되는 정제마진은 하락세다. 정제마진은 최종 석유제품 가격에서 유가·운영비 등 생산비용을 제한 금액이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정유사의 평균 정제마진은 최근 3개월 연속 내림세를 이어가며 5월 첫째 주 기준 6.2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2월 첫째 주(15.1달러) 대비 59% 하락한 것으로, 정유사의 손익분기점으로 여겨지는 5달러대에 접근하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석유 시장이 급속히 팽창하던 과거에는 유가가 오르면 사재기 현상으로 정제마진도 함께 오르는 게 일반적이었다"며 "이제는 유가와 정제마진 추이가 연동되지 않아서 고유가로 인한 영업이익 증가는 장부상으로만 존재하는 착시 효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석유 시장은 전기차·신재생에너지 등이 대두되며 성장세가 점차 축소될 전망이다. 지난해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도로 수송 부문의 석유 수요가 2025년 정점에 도달한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IEA에 따르면 전기차로 인한 석유 수요 감소 규모가 2022년 일평균 70만배럴에서 2030년에는 500만배럴로 8년 새 7배 이상 늘어날 예정이다.

탈탄소 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신규 사업 투자비 확보도 정유사들의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에쓰오일은 2026년 가동을 목표로 9조2580억원의 투자비가 전망되는 샤힌 프로젝트를 울산에서 진행했다. 최대 1조5000억원을 모회사인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 기업 아람코로부터 조달할 수 있어 부담을 덜었다.

[김희수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