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 아들 병역기피 고발되자 병무청에 ‘취하해달라’ 청탁”

김경필 기자 2024. 5. 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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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성수 전 금융위원장. /뉴시스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이 해외에서 병역을 기피하고 있는 아들에 대한 고발을 취하해달라고 서울지방병무청 과장에게 13차례 전화를 걸어 청탁을 한 것으로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해당 과장은 실무진 반대에도 고발을 취하해줬고, 은 전 위원장 아들은 한국에 입국했다가 다시 출국해 현재까지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감사원은 이 과장을 비롯한 전·현직 병무청 직원 2명을 병역법 위반 방조와 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병무청에는 징계 등의 조치를 요구했다.

감사원이 9일 공개한 ‘2023 공직 비리 기동 감찰’ 보고서에 따르면, 병역 의무가 있는 은 전 위원장 아들 은모씨는 국외 여행 허가를 받아 미국에 가 있는 상태에서 2021년 9월 병무청에 국외 여행 허가 기간을 연장해달라고 신청했다. ‘미국 영주권을 신청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병무청은 이것은 연장 사유가 되지 않는다며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은씨는 허가 기간이 지나도록 귀국하지 않았다. 병무청은 은씨를 2021년 12월 병역법상 국외 여행 허가 의무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은씨는 병무청의 국외 여행 허가 연장 불허에 대해 이의 신청을 했다.

이 시기에 은 전 위원장이 나섰다. 한국투자공사 사장과 한국수출입은행장, 장관급인 금융위원장을 잇달아 역임하고 퇴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그는 병무청이 아들의 연장 신청을 거부한 2021년 11월부터 병무청이 자기 아들을 고발한 뒤인 2022년 1월까지 두 달 동안, 당시 서울병무청 병력자원과장 A씨의 업무용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13차례 통화했다. 은 전 위원장은 A씨에게 ‘아들이 고발돼 있어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붙잡혀가서 미국에 다시 가지 못할까봐 걱정하고 있다’며 아들의 이의 신청을 받아주고 고발을 취하해줄 것을 청탁한 것으로 조사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은씨가 병역법 위반으로 고발돼 있다고 해도 병역 의무 이행을 위해 귀국한다면 입영 전까지 한 번은 미국에 다녀올 수 있었다. ‘입영을 위한 가사 정리’ 목적으로 한 차례 출국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또 은씨가 미국 이민국으로부터 ‘사전 여행 허가’를 받아놓으면, 한국에서 군 복무를 하는 동안에도 앞서 해놓은 영주권 신청이 유지됐다.

A씨는 은 전 위원장에게 이런 내용을 설명한 것으로 감사원은 파악했다. 그러나 은 전 위원장은 ‘아들이 병무청 말을 믿지 않고, 미국으로 못 돌아갈까봐 걱정을 너무 많이 하고 있으니 걱정을 하지 않도록 아들의 이의 신청을 받아주고 고발을 취하해 달라’고 거듭 청탁했다고 한다.

A씨는 부하 직원들에게 은씨의 이의 신청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했고, 직원들은 ‘법규상 은씨의 이의 신청을 받아줘야 할 이유가 없다’며 거부했다. 그럼에도 A씨는 부하 직원들을 계속 닦달했고, 이 업무 담당이 아닌 다른 직원들까지 대법원 판례를 찾아와 ‘이의 신청을 받아주면 안 된다’며 A씨를 말렸다.

그러자 A씨는 은씨의 이의 신청을 받아줘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직접 작성했다. ‘은씨가 귀국해 병역 의무를 이행하려 한다’ ‘영주권을 신청한 상태에서 미국을 떠나면 영주권 신청 자체가 무효화된다’ ‘은씨가 귀국 후 입영 전에 신변 정리를 위해 잠시 출국하려면 고발되지 않은 상태여야 한다’ 등 거짓 내용으로 된 보고서였다. A씨는 이런 보고서를 중간 결재권자를 건너뛰고 당시 서울병무청장 B씨에게 곧바로 올렸고, B씨 허락을 받아 은씨의 이의 신청을 받아줬다. B씨는 감사원에 ‘은씨가 은 전 위원장 아들인지 몰랐고, 관련 규정도 잘 모르는 채로 결재를 해줬다’고 주장했지만, 감사원은 A씨가 B씨에게 올린 보고서에 ‘父, 은성수’라고 적혀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 병무청에서 30년 넘게 근무한 B씨가 관련 규정을 몰랐을 리도 없다고 봤다.

은씨는 2022년 1월 한국에 돌아왔고 병무청은 은씨에 대한 고발을 취하해줬다. 은씨는 ‘입영 전에 신변을 정리하고 오겠다’며 기한 내에 귀국하겠다는 서약서를 내고 국외 여행 허가를 받아 다시 미국으로 갔다. 그러나 은씨는 돌아오지 않았고, 현재까지 병역을 기피하고 있다.

감사원은 A·B씨를 병역법 위반 방조와 허위 공문서 작성 및 행사, 청탁금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 요청하고, 은 전 위원장에게도 이들에게 부정 청탁을 한 혐의(청탁금지법 위반)를 적용해 검찰에 수사 참고 자료를 보냈다. 병무청에는 B씨는 징계하고, 이미 퇴직한 A씨에 대해서는 공직에 다시 임용되지 못하도록 비위 사실을 인사혁신처에 알리게 했다.

은 전 위원장은 본지에 “감사원의 발표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대응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전해 왔다. 은 전 위원장은 지난해 본지 통화에서 이 사안에 관해 “시차로 인해 아들과 병무청이 서로 연락이 되지 않아, 아들이 ‘미국에서 영주권 취득과 관련한 이슈가 있어 한국에 들어오기 어렵다’고 하는 것을 병무청에 대신 전달해주기만 했다”며, “전 금융위원장이라고 밝히지도 않았다”고 했다. 또 “’이의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아들이 귀국해 군대를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취지로 이야기한 것이지, 편의 제공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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