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지멘스에도 졌다···공정위, 불복訴 '연전연패'

임종현 기자 2024. 5. 9. 16: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SPC·쿠팡 이어 과징금訴 패소
서울고법 "4억원 부과 처분취소"
'거래상 지위 남용' 판단 어려워
올해만 다섯번째···1655억 규모
법원 '편향적 신뢰' 줄어든 탓도
[서울경제]

공정거래위원회가 우월적 지위 남용을 놓고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인 지멘스와 벌인 행정소송에서 패소했다. 공정위는 최근 SPC·쿠팡·SK그룹·해운선사 등과의 법정 공방에서 잇따라 고개를 숙였다. 올 들어서만 패소에 따른 과징금 부과 취소 금액은 1655억 원에 달한다. 공정위가 소송에서 연전연패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법원의 공정거래 전문성이 높아지면서 예전과 달리 공정위에 대한 편향적 신뢰가 줄어든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제7행정부(구회근 부장판사)는 지멘스가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명령 취소 소송에서 2일 지멘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공정위가 지멘스에 내린 처분을 모두 취소하고 소송 비용도 공정위가 부담하라고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가 주장하는 사정 및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원고의 전기 소프트웨어 비용 수취 행위가 대리점들에 대한 거래상 지위 남용으로서 이익 제공 강요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 사건 처분은 모두 위법하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2022년 7월 지멘스가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2010년 10월부터 2014년 9월까지 MRI·CT·X레이 기기 유지 보수를 맡는 총 7개 대리점에 대해 유지 보수 소프트웨어 비용을 계약상 근거 및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부담한 것을 문제 삼았다. 이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4억 8000만 원을 부과했다.

지멘스는 전기(2010년 10월~2014년 9월)에는 대리점에 위탁수수료를 지급하고 소프트웨어 비용을 별도로 청구했는데 이후에는 기존 수수료에서 해당 비용을 선차감한 뒤 남은 금액을 대리점에 지급하는 방식으로 변경하고 이 부분을 계약서에 명시했다.

공정위는 지멘스가 전기에 소프트웨어 비용을 별도로 청구한 방식이 계약서 규정에 없기 때문에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지멘스는 회사와 대리점 사이의 우호적 협상을 통한 결정 사안이라고 주장하며 불복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결국 지멘스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단순히 계약서에 관련 규정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거래상 지위 남용 성립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아울러 공정위가 문제로 지적한 후청구 방식은 수수료에서 소프트웨어 비용을 선차감하는 것과 공제하는 방식의 차이만 있다고 판단했다. 즉, 두 청구 방식 차이로 인해 대리점에 돌아가는 수수료 차이가 크다면 거래상 지위 남용의 성립 여부가 달라질 수 있으나 금액 차이가 부당한 착취와 정당한 징수 여부를 좌우할 만큼 결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대리점들이 징수 방식 변경에 대해 이해하고 동의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이어 “회사는 대리점들이 특별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음에도 스스로 ‘선지급, 후청구 방식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해 선공제, 후지급 방식으로 변경한다’고 안내, 차감 방식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올해 들어 기업들 간의 과징금 취소 소송에서 잇달아 패소하고 있다. 올 2월에만 SK그룹, 쿠팡, SPC그룹, 해상운임 담합 등 총 4개 소송에서 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실트론 사익편취 혐의로 과징금 8억 원을 부과받았지만 처분 취소를 받았고 SPC그룹 5개 계열사에 647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처분도 법원에서 “시정명령 중 일부를 취소하고 과징금 중 통행세 부분을 재산정하라”며 SPC의 손을 들어줬다. 쿠팡의 경우에도 공정위가 거래상 지위 남용으로 과징금 32억 9700만 원을 부과했지만 법원이 처분 취소 판결을 내렸다.

전문가들은 공정위가 최근 연이어 소송에서 지는 이유로 사건 특성과 법원의 시각 변화 등을 꼽았다. SPC와 쿠팡 사례처럼 부당 지원이나 일감 몰아주기 사건은 비교적 승소가 높은 담합 사건에 비해 입증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계열사가 내부거래를 통해 유리한 조건을 가진다는 점을 공정위가 법정에서 입증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공정위에 대한 법원의 편향적인 신뢰가 줄어든 점도 있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예전에는 공정위 전문성에 압도돼 공정위가 우위를 점한 상태에서 재판을 시작했다”며 “지금은 법원도 데이터가 쌓여 전문성이 올라가다 보니 시장을 좀 더 중립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고 설명했다.

임종현 기자 s4our@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