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다 사라질 판"…충격 휩싸인 여의도 증권맨들 [돈앤톡]

신민경 2024. 5. 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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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셋증권 'AI 애널' 등장
리포트 작성시간 5시간→5분으로
"커버리지 확대·신속 리포트 공시 효과"
"리서치센터 인력 축소 불가피" 우려
여의도 증권가. 사진=한경DB

'인공(사람이 하는 일), 인공지능의 시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2월 말에 한 증권사에서 낸 약 100쪽 분량의 산업 리포트 제목입니다. 말 그대로 사무와 의료, 금융, 제조, 엔터테인먼트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사람이 있던 자리 곳곳에 인공지능(AI)이 스며들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증권사는 "시기의 문제일 뿐 '본격적인 AI의 시대 도래'는 필연적"이라고 예견했습니다.

약 3년이 지난 지금, 리포트의 예고는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증권사의 꽃이라고 불렸던 직군인 '애널리스트'가 AI로 대체된 겁니다. 이른바 'AI 애널리스트'의 등장에 여의도 증권가는 술렁이고 있습니다. 일자리는 물론이고 증권사의 브레인 집단이 기계화가 가능하게 됐다는 점에서 충격이라는 반응입니다.

AI 활용을 둘러싼 논란에 다시 불을 붙인 것은 한 증권사가 내놓은 'AI 리포트'입니다. 지난 7일 미래에셋증권은 "자체 개발한 기술을 통해 'AI가 생성한 기업분석 리포트'를 성공적으로 발간했다"면서 홍보를 했는데요. 이 증권사는 우선 빅테크인 애플과 커피 프랜차이즈 스타벅스, 정유주 엑슨모빌 등 세 종목에 대한 리포트를 내놓았습니다. 현행 규정상 애널리스트가 아닌 인물이 기업 분석 리포트를 발간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애널리스트가 '감수자'로 같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들의 주된 역할은 사실이 틀린 부분을 고치거나 복문이나 중문을 매끄럽게 수정하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미래에셋증권은 시간 단축 효과를 크게 볼 수 있었다고 강조했습니다. 통상 기업 실적 발표 후 애널리스트가 분석을 하고 리포트를 작성하기까지 5시간가량 소요되는데 이를 5~15분으로 줄였다는 겁니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자료 수집과 도표화 등에 걸리던 시간이 사라지니 투자자들에게 더 신속하고 빠르게 정보를 줄 수 있다"며 "인력의 한계가 있다보니 애널리스트 인당 커버리지 종목이 많아봤자 20~25개에 그쳤는데 이를 확장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미래에셋은 개발한 모델을 내부 애널리스트들에 교육한 뒤 리포트 작성 시 적극 활용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발간된 AI 리포트들을 살펴보면 일단 육안으로는 기존의 애널리스트 보고서와 큰 차이는 없습니다. 좌측이나 우측에 주가수익비율(PER)과 배당수익률, 시가총액, 상장주식수, 52주 최고가와 최저가, 최근 주가 추이 등 기본 정보를 적어뒀고 실적 리뷰도 수치 중심으로 전개했습니다. 

지난 7일 미래에셋증권이 발간한 AI 리포트 일부.

'실적이 왜 예측치에 부합했는지'부터 '주가와는 어떤 관계를 보이는지' 등 나름의 분석도 있습니다. 예컨대 1분기 실적이 예측치에 대체로 부합한 엑슨모빌에 대해 AI 리포트에선 "최근 3개월간 주가는 15.6% 올라 S&P500과 나스닥을 웃돌았다"며 "현재 PER은 13.6배로 과거 평균보다 높고, 최근 지수와의 관계는 약해졌다. 이는 곧 주가가 이미 양호한 분기 실적을 반영했다는 뜻"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다만 사람이 쓴 보고서와의 차이점도 많은데요. '목표주가'와 매수·매도 등 조언을 하는 '투자의견'이 없다는 게 가장 아쉬운 점입니다. AI는 숫자에 강할지는 몰라도 각종 변수에는 둔감하기 때문에 투자의견을 내놓으면 책임소재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현장감이 부족한 느낌도 있습니다. 애널리스트들이 작성한 리포트는 기업 탐방과 면담, 유선 전화 등을 통해 얻어낸 정보를 '읽는 맛'이 있는데, AI 리포트에는 찾을 수 없습니다. 유행하는 노래나 드라마의 제목 혹은 투자자들이 알기 쉽도록 비유한 제목을 보는 것도 리포트의 묘미였는데, AI에게 그만큼의 센스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번에 AI 리포트를 감수한 미래에셋증권 한 애널리스트는 이렇게 소회를 전했습니다. 그는 "전문용어와 수치 중심으로 리포트가 나오다보니 일반 투자자들이 보기엔 무리가 있지만 기관들 대상으로는 많이 읽힐 것 같다"며 "노력을 최소화하면서도 커버리지를 확대해 조금 더 넓게 산업을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애널리스트들도 도움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증권가 종사자들은 'AI 애널리스트'의 등장이 마냥 반갑지는 않습니다. AI의 확산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리서치센터는 도제식 문화가 다소 남아 있습니다. 리서치센터에 신입으로 입사하게 되면 애널리스트 업무를 보조하는 RA(research assistant) 직무로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일정기간이 지나거나 요건을 갖추게 되면 애널리스트로 승격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RA의 업무를 AI가 하는 셈이니, 리서치센터 자체에서 신입을 육성하는 프로그램이 없어진다고 보는 겁니다. 가뜩이나 최근 증권사에서는 리서치센터 규모를 줄이고 있는 추세였습니다. 전체 규모도 줄이고 신입 일자리가 없어질 게 뻔하니 좋게만은 볼 수 없는 겁니다.

모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몇년간 증권사들마다 주니어·시니어를 막론하도 인력을 줄이고 있다"며 "당장의 일은 아니지만 AI 리포트가 안착이 되면 유휴 인력부터 감축 대상이 될 것"이라고 푸념했습니다.

다른 증권사 한 애널리스트는 "국내 현장감에서 차별화를 주기 어려운 해외주식 파트 애널리스트를 비롯해 RA의 인력시장이 상당부분 축소될 것이라 본다"며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내부적으로 그렇게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다"고 귀띔했습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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