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경영, 욕망이 시장이다 [한경에세이]

이형우 2024. 5. 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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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우 마이다스그룹 회장·마이다스아이티 최고인사책임자(CHO)

 경제란 무엇일까?

경제의 본질은 수요와 공급이다. 수요는 욕망이고, 공급은 욕망이 원하는 효용이다. 즉 ‘경제=수요(욕망)X공급(효용)’이다. 어떤 기업이든 업(業)의 본질은 같다. 시장의 욕망에 부합하는 효용을 공급하는 것이다. 기업 경영의 근본도 욕망을 다루는 기술이다. 인사, 생산, 마케팅, 영업, 재무 등 모든 바탕은 욕망이다.

경영의 수준은 욕망을 이해하는 수준에 비례한다. 시장의 욕망을 알아야 사업을, 구성원의 욕망을 알아야 경영을 할 수 있다. 세상의 욕망을 다룰 수 있어야 기업이든 인생이든 제대로 경영할 수 있다.

모든 사회 현상은 욕망의 변주곡이다. 경제는 욕망의 유통이고, 산업은 욕망의 구현이다. 정치는 욕망의 조정이고, 윤리는 욕망의 자기 제어이며, 법은 욕망의 통제 수단이다. 교육은 욕망의 친사회적 육성이고, 문화는 집단의 욕망이 질서로 드러난 것이다.

인간 세상은 욕망이 얽혀 돌아가는 거대한 수레바퀴와 같다. 당연히 시장의 본질도 욕망이다. 애덤 스미스도 <국부론>에서 모든 경제 행위의 바탕이 이기적 욕망이고, 사회는 개인의 욕망에 의해 작동하는 체계임을 통찰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 충족을 위해 제품, 서비스, 기술과 같은 가치를 생산하고 거래한다. 욕망과 욕망이 만나 가치를 거래하는 과정에서 시장이 발전하고 경제가 성장하고 사회 전체가 번영한다.

 욕망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왜 욕망하게 되었을까?

인간의 바탕은 생물, 동물, 인간이다. 사람은 자신의 존속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이기적 생물’이다. 또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다. 스스로 성찰하며 인생의 가치를 고민하는 ‘정신적 인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잘 먹고 잘살고 싶어 하고, 잘하고 잘 크고 싶어 하며,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 세상 사람이 모두 달라 보여도 본질만 놓고 보면 똑같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이어져 현재 존재하는 생물이자 동물이면서 인간, 즉 ‘생동인(生動人)’이다.

생동인의 세 가지 속성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정체성을 형성하고 다양한 욕망을 빚어낸다. 인간의 욕망은 다양해 보이지만, 크게는 세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우리는 생물이기 때문에 자신의 안위와 존속을 최우선으로 하는 ‘이기적 욕망’을 갖는다. 맛있는 음식이나 이성에 대한 관심, 편하고 안락한 주거 환경, 좋은 자동차와 멋진 옷 등을 원하는 이유도 우리가 항상성에 기반한 생물이기 때문에 그렇다.

둘째는 좋은 관계와 더불어 성취와 인정을 갈구하는 사회적 욕망이다. 사회적 욕망은 더불어 살아감으로써 간접적으로 존속에 유리한 가치를 얻고자 하는 사회적 동물의 속성으로 빚어진다. 셋째는 친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정신적 욕망이다. 정신적 욕망의 추구는 자기실현의 삶 또는 자기 초월의 삶으로 구현된다.

세 가지 욕망은 내면에서 늘 자리다툼을 한다. 인간은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물건을 훔치기도 하지만,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내어놓기도 한다. 자신의 성취와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을 수단으로 삼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지기도 한다. 인생이 더없이 복잡해 보여도 그 구성은 단순하다. 빨강, 초록, 파랑의 삼원색이 세상 모든 색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이 세 가지 욕망이 상호작용하며 다양한 채색의 인생을 연출한다. 그래서 인생은 모두 각양각색이고 천차만별이다.

사람들의 욕망이 다양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욕망의 본질이 ‘가치 기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생 동안 다양한 경험을 통해 가치 기억을 내면화한다. 뇌는 가치 경험을 가치 기억으로 형성하고, 가치 기억을 바탕으로 욕망이 발현한다. 뇌가 이런 특성을 갖는 이유는 기억의 ‘가치 맥락적’ 속성 때문이다. 우리 뇌는 감각 정보에 긍정과 부정, 좋음과 싫음, 이익과 손해라는 가치를 매긴다. 그리고 각각 맥락을 고려해 범주화한다. 이렇게 ‘가치 맥락적’으로 처리된 정보들이 기억으로 형성된다. 뇌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나중에 유사한 상황에서 어떤 정보가 더 중요한지 잘 파악해서 유리한 판단과 반응을 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피자를 먹으며 유쾌한 시간을 보냈던 경험은 가치 맥락적 기억으로 형성되었다가 나중에 다시 그 레스토랑을 찾는 욕망으로 이어진다. 더운 여름날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기억은 날씨가 덥다고 느껴질 때 자연스럽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이처럼 좋았던 기억들은 우리로 하여금 그 대상을 다시 욕망하도록 만든다. 반면에 불편했던 기억들은 그 대상이나 상황을 회피하도록 만든다. 우리가 하는 수많은 선택은 대부분 이렇게 긍정 혹은 부정의 가치 경험을 통해 맥락적으로 형성된 가치 기억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욕망을 다루는 기술의 핵심은 ‘가치 기억 만들기’이다. 기억이 없으면 만들면 되고, 기존의 기억이 있다면 유리하게 전환하면 된다. 모든 비즈니스와 마케팅의 본질적 속성도 고객에게 강력하고 지속적인 ‘가치 기억’을 만들고 활성화하는 것이다.

헨리 포드는 마차의 기억을 이용해서 대중의 마음속에 자동차의 욕망을 심는 데 성공했다. 스티브 잡스는 전화나 휴대폰의 기억을 스마트폰의 기억으로 전환하여 인류에게 스마트한 세상을 선물했다. 자동차도 스마트폰도 처음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없는 것이었다. 포드와 잡스는 가치 기억 만들기에 성공함으로써 기존의 욕망을 재정의하고 세상에 없던 욕망을 창출했다. 경영자는 욕망을 창조하고 욕망을 연결하는 사람이다.

욕망은 ‘소통’을 통해 거래된다. 소통은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상호작용이다. 모든 거래도 본질은 욕망의 소통이다. 사랑이나 우정과 같은 마음의 거래도, 마케팅과 영업을 포함한 조직과 시장의 가치 거래도 모두 소통을 통해 일어난다. 결국 거래의 성공은 소통 성공의 결과이고, 거래의 실패는 소통 실패가 그 원인이다.

 어떻게 성공 소통을 할 수 있을까?

우리 뇌는 정서, 감정, 이성의 판단체계를 통해 자극 정보들을 처리하고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할지 선택한다. 소통 역시 판단체계를 바탕으로 한다. 즉 정서, 감정, 이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간파하고 <수사학>에서 우리가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로 소통한다고 설파했다.

정서, 감정, 이성의 소통 메커니즘은 순차적이고 편향적으로 일어난다. 따라서 정서 단계에서 먼저 긍정을 여는 것이 성공 소통의 핵심이다. 정서 단계에서 가치 판단이 긍정이면 좋은 감정이 일어나고, 좋은 감정은 이익으로 생각을 유도한다. 반대로 부정 정서는 싫은 감정으로 연결되며 우리 뇌는 손해로 인식한다.

성공 마케팅의 불문율인 AIDMA 전략도 신경과학적 소통 메커니즘을 반영하고 있다. 먼저 시각, 청각, 후각 등의 정보를 통해 감각피질을 자극하여 주의를 끄는 주목(Attention)과 지각 회로를 통해 기존 기억의 자료를 조회하고 종합하여 주의를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관심(Interest)은 ‘긍정 열기’ 단계에 해당한다. 다음은 제품이나 서비스의 이점과 가치를 부각해 가치 회로를 통해 가치를 판단하고 소유하고 싶은 욕망(Desire)을 불러일으키도록 하는 것은 ‘좋은 감정’을 유도하는 단계이다. 또 제품이나 서비스에 관한 긍정적 경험과 정보를 기억(Memory)하게 하는 것은 가치 중심적으로 퍼즐이 맞춰지고 ‘이익 인식’을 하는 단계이다. 마지막으로 구매 행동(Action)은 집행 회로에서 이전 단계의 감정과 정보를 종합해 최종적으로 이루어진다.

주목에서 관심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정서적 판단이 일어나고, 관심에서 욕망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감정적 판단이 일어난다. 또 합리적 판단 과정을 거쳐 기억에서 행동으로 넘어가게 된다. 결국 마케팅과 영업의 핵심은 ‘욕망의 허들 넘기’다.

소프트웨어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에서 개발한 마이다스(MIDAS)가 어떻게 세계 1위를 하게 되었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특별한 비결은 없었다. 시장의 욕망을 만들고 고객과 연결하는 일에 집중했을 뿐이다. 전문가용 구조해석 소프트웨어 시장을 일반 기술자용 설계 시장으로 재정립해 새로운 가치 기억으로 욕망을 창출했다. 그리고 방문 영업 중심의 시장 소통 방식을 기술자의 욕망에 기반한 마케팅 이벤트로 전환했다. 고객 욕망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상황을 기회로 만들고, 기회를 성과로 만들어 가치로 연결한 선순환의 결과였던 것이다.

많은 기업이 ‘블루오션’을 찾아 나선다. 경쟁이 치열해진 시장은 ‘레드오션’으로 단정해버리고 즉시 떠난다. 레드오션은 고객의 욕망이 사라진 시장을 뜻한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다. 누구나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바란다. 고객의 욕망에도 한계는 없고, 욕망이 존재하는 한 시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욕망이 사그라지면 새로운 가치 기억으로 욕망을 만들어내면 된다. 고객 자신도 모르던 욕망을 일깨우는 것이다. 경영자는 욕망을 창조하고 욕망을 연결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욕망으로 살고 욕망 때문에 죽는다. 사람을 움직이는 모든 동기의 본원은 욕망이다. 기대 욕망이 바로 희망이며, 욕망이 끊어진 자리가 절망이다. 고객이 원하는 것도 자신의 성장과 행복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제품과 서비스다.

욕망이 있는 곳은 어디든 블루오션이다. 그래서 레드오션도 블루오션도 없다는 것이다. 오직 욕망만 있다. 경영의 요체는 욕망의 붉은 바다에 희망이라는 푸른 점 하나를 찍고 더 넓게 퍼져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사업과 경영에 성공하고 싶다면 돈이 아니라 욕망을 다루어야 한다. 경영자는 욕망 예술가이자 기술자이며, 욕망의 연금술사이다.

이 글은 한국경제신문 5월 10일자에 게재된 한경에세이 ‘레드오션도 블루오션도 없다’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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