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잘 지내나요? 쿠알라룸푸르에서 처음 만난 여유

김나영 2024. 5. 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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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의 거기서 잘 지내나요?

서울 사는 김나영 작가가 쿠알라룸푸르에 사는 지인에게 물었다. 거기서 잘 지내나요?

▶Interviewee
from Kuala Lumpur
조아연

치열하지만 안락했던 서울이란 '컴포트 존'을 벗어나는 선택을 했다. 현재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옆 동네 셀랑고르에서 전에 없던 여유가 찾아온 삶을 만끽하는 중이다.

-자기소개 부탁해요.

저는 현재 남편, 4살 아이와 함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인근 도시에 거주 중입니다. 이곳에 오기 전엔 한국에서 약 10년 동안 해외 여행지를 홍보하는 관광청 PR 담당자로 일했어요. 어릴때부터 대학 때까지 중국, 필리핀, 프랑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나라를 옮겨가며 학창 시절을 보냈고, 해외 출장이 많은 업무 특성상 쉬지 않고 돌아다녀야 했기에 상당히 긴 시간을 해외와 한국을 오가는 생활을 해왔어요. 그러다 보니 늘 내 집, 내 공간이 주는 안정감이 간절했습니다. 짐 싸는 것도, 비행기도, 호텔도 모두 지긋지긋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보통 사람들은 주말과 휴가 기간 동안에 어떻게든 여행을 다닌다는데 저는 무조건 '집에 있기'가 계획이었어요(웃음). 어딜 가도 내 집이 있는 한국이 최고다, 내 인생에 더 이상 해외 생활은 없다고 다짐했었는데, 아이가 생기니 생각이 또 달라지더라고요. 식구들과 함께 말레이시아로 넘어온 건 벌써 반년이나 지났네요.

-오랜 해외 생활에 지친 마음도 이해되고, 아이를 생각해 다시 한번 큰 결심을 한 것도 대단한 것 같아요. 말레이시아는 어떤 점에서 가장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나요?

저도 남편도 해외에서 지냈던 경험이 있어서 아이를 낳게 되면 해외로 나가도 좋겠단 마음이 은연중에 있었어요. 먼저 결혼한 선배들이 한국에서 아이 키우기를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고요. 그러던 중에 남편이 말레이시아로의 이직 제안을 받았고, 이게 기회다 싶었어요. 말레이시아는 이전에 한 번도 여행해 본 적이 없던 나라였어요. 하지만 알아보면 볼수록 살기에 괜찮은 곳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어를 기본으로 쓰는 나라였고, 한국과 비행 거리도 6시간 정도로 멀지 않은 데다가 경제 수준이나 치안도 꽤 선진화되어 있고요. 주변에서 이미 다녀온 분들의 만족도도 높았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가 어렸을 때 세 식구가 함께 해외에 살아 보는 건 평생 잊지 못할 재미있는 경험이 되겠다 싶더라고요.

-어떨 때 '이곳으로 이주하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햇빛 쨍쨍한 주말에 콘도 수영장에서 남편, 아이와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나서 달달한 망고를 실컷 먹을 때요! '아, 너무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와요. 삶의 질 수직 상승의 기분이랄까요.

-단란한 세 식구가 함께 살고 있는 동네는 어떤 곳인지도 궁금해요. 그 동네를 선택한 이유도요!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조건은 남편 회사와의 거리였고, 그 다음으로는 최대한 현지의 삶 그대로를 즐길 수 있도록 한국인이 밀집하지 않은 곳을 찾고 싶었죠. 말레이시아는 13개의 주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금 사는 곳은 '셀랑고르(Selangor)'주예요.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와는 지리상 서울-분당 정도의 위치고요. 인구 밀도가 낮고, 평화롭고 조용한 분위기예요. 서울에 살면서 교통체증과 인파에 대한 피로도가 높았던 터라 지금 환경이 만족스러워요. 현재 살고 있는 콘도는 작은 몰과 연결되어 있어서 마트부터 병원까지 웬만한 편의시설이 다 가까우니 저 같은 집순이에겐 아주 딱이죠(웃음). 같은 건물의 이웃들도 일본, 독일, 프랑스, 터키, 남아공 등 다국가 다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재밌어요.

-인구 밀도에 대한 만족도 부분이 크게 공감이 가는데, 그 외에 또 맘에 드는 점이 있다면요?

이곳이 오랜 기간 영국의 식민지였던 탓에 아시아 중에서도 문화적, 정서적으로 굉장히 서구화된 느낌이에요. 아이러니하게도 그 점이 정착하는 데 있어선 장점으로 다가오고요. 공용어는 말레이어지만 일상생활이나 비즈니스, 교육에 있어서는 영어를 통용어로 사용하기 때문에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거의 없는 편이죠. 낯선 이들과 눈을 마주치면 웃으며 인사하고, 스몰토크도 일상적이고요. 사람들에게서 여유가 느껴져요. 또, 어딜 가나 아이와 함께하는 가족이 많고 환영받는 분위기란 것도 좋아요. 대부분의 식당에는 키즈 메뉴가 별도로 있고, 아이들에게는 음식을 무료로 제공하는 식당도 쉽게 찾을 수 있어요. 덧붙이자면 평소 여름을 사랑했기에 가벼운 옷을 입고 일년 내내 여름날을 즐길 수 있다는 것! 고온다습한 편이지만 아침저녁으론 선선하고요. 너무 덥다 싶을 때 신기하게도 시원한 비가 내려요.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떠 있는 걸 보면 기분이 절로 좋아지죠. 하나만 더 덧붙이자면 K-컬처 영향으로 한국인에게 굉장히 호의적인 편이라는 점도 있겠네요. 한국 식당과 제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그곳에서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궁금해요. 치열했던 서울의 삶과는 다른 모습일 것 같거든요. 보통의 날, 그리고 쉬는 날의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워킹맘 시절에 막연히 꿈꾸던 전업주부의 일상을 온전히 누리는 중이에요. 혼자 차분히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평일엔 아이를 등원시킨 후에 운동을 하고, 읽고 싶던 책을 읽거나 장을 봐와서 요리도 하고요. 서울에서는 일에 쫓겨 사느라 이런 루틴이 있는 삶이 너무나 간절했거든요. 이곳에서 만난 동네 친구들과 카페나 맛집을 찾아다니는 시간도 모두 소중해요. 주말에는 아이를 중심으로 세 식구가 함께 시간을 보내요. 공원이나 근교로 드라이브를 가기도 하고요. 아직 이곳에서 지낸 지 1년이 채 안 되어서인지 이번 주말엔 또 어디 가볼까? 고민하며 여행하는 기분으로 지내고 있어요.

-지금 사는 도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3곳을 꼽는다면 어디가 있을까요?

첫 번째로는 쿠알라룸푸르의 랜드마크인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바로 앞에 위치한 'KLCC 공원'이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대형 야외 수영장이 있는데 정말 쾌적해요. 빌딩숲과 야자수 나무로 둘러싸인 이국적인 공간에서 물놀이를 즐길 수 있어요. 다음으로는 쿠알라룸푸르 시내에 위치한 '마제스틱 호텔'. 90년 전 말레이시아에 처음 지어진 호텔이자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서 깊은 건물이에요. 과거 건축 양식을 그대로 보존한 고풍스러운 외관이 정말 멋져요. 호텔이기 이전에는 국립 미술관으로도 운영됐었다고 해요. 브랜드 호텔은 어디나 분위기가 비슷하잖아요. 그런데 이곳은 특유의 분위기 덕에 말레이시아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경험이겠다 싶었어요. 객실도 서비스도 세련되고 고급스러웠고요. 건물이 구관, 신관으로 나뉘어 있는데 구관을 꼭 둘러보길 추천해요. 클래식하고 우아한 분위기로 과거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거든요! 다시 간다면 로비에서 애프터 눈 티를 꼭 마셔 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론 쿠알라룸푸르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랑카위'섬이요. 벌써 2번이나 다녀왔어요. 작고 소박한 섬이지만 정말 깨끗하고 사랑스러워요. 제 가족은 명소 관광보다는 리조트에서 여유롭게 쉬고, 먹고, 물놀이하는 걸 선호해서 아주 제격인 숙소였어요. 숙소비도 합리적인 편이라 바다가 보고 싶을 때 부담 없이 다녀오기 좋아요.

-쿠알라룸푸르를 여행할 때 꼭 해봐야 할 3가지를 꼽는다면요?

우선 나시르막은 꼭 먹어 봐야 해요! 한국 비빔밥의 위상과 맞먹는 말레이시아 대표 음식이에요. 구운 닭고기에 코코넛 라이스와 멸치, 땅콩, 오이를 곁들이고 삼발 소스라는 매콤한 양념을 더해 먹는데, 감칠맛 넘치는 재료의 조합이 기가 막혀요. 삼발 소스가 우리 볶음 고추장과 비슷해서 친숙한 맛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매력적인 시내를 둘러볼 수 있는 시티투어는 필수죠. 오래된 이슬람 사원, 과거 양식의 건축물, 모던한 빌딩들이 한데 어우러져서 환상적인 풍경들을 만들어요. 빽빽한 건물 사이로 모노레일이 다니는 풍경이 홍콩을 떠올리게도 하고요. 차이나타운은 서울의 을지로 느낌이에요. 오래된 골목 구석마다 젊은 층이 운영하는 힙한 카페나 바가 있어서 흥미롭죠. 마지막으론 전통 재래시장인 센트럴 마켓을 반드시 둘러보세요. 로컬 특산품이나 여행 기념품을 찾는다면 필수 코스에요. 저는 동남아 무드가 느껴지는 알록달록한 바틱(batik) 패턴을 좋아하는데, 말레이시아도 바틱이 유명하더라고요. 마켓에 바틱 패턴을 활용한 미니백이나 헤어밴드 등 다양한 제품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해요. 쇼핑하면서 두리안 아이스크림, 망고 주스 등 로컬 간식들도 맛볼 수 있는 건 덤!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건 무엇이 있나요?

태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말레이시아이기에 여행을 갈 만한 가까운 곳이 정말 많더라고요. 대부분 비행기로 1~2시간 거리인 데다가 티켓도 저렴해서 주말여행으로도 부담이 없어요. 싱가포르는 차로 국경을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접근성이 좋고요. 몰디브도 비행기로 4시간 정도로 가까워요. 신혼여행을 몰디브로 다녀왔었는데,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아이와 함께 다시 가 보려고 생각 중이에요. 아이가 어릴 때 더 많은 것들을 보여 주고 경험하게 해 주고 싶어서 부지런히 도장 깨기를 해 볼 예정입니다! 아, 그리고 쿠알라룸푸르 스카이라인이 화려하고 멋져서 호텔 루프톱 바에서 야경을 보며 칵테일을 한 잔 즐겨 보고 싶은데… 아직 못 해 봤네요. 언젠간 가 볼 수 있겠죠?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해외살이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웃음)…. 아이까지 데리고 익숙한 생활과 안정적인 커리어가 있는 서울의 '컴포트 존'을 떠나는 게 맞는 걸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오죽하면 '나 새벽 배송 없이 어떻게 살지?' 하는 생각까지 했을까요. 그때 친구가 제게 해준 말이 큰 도움이 됐어요. 인생에는 정해진 답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살면서 하는 결정에는 잃는 게 있으면 또 얻는 게 있는 양면성이 있을 뿐, 옳은 선택이나 틀린 선택은 없다는 거였죠. 그 말이 맞더라고요. 여기 온 덕에 새벽 배송 대신 매일 마트에서 직접 신선한 식재료를 만져 보고 고르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평일 낮에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는 행복을 얻었으니까요. 여행이든 해외살이든, 편안한 나의 환경을 떠나 변화를 주는 건 인생을 한층 풍요롭게 한다고 확신해요. 기회가 있다면 두려움을 떨쳐 내고 나의 '컴포트 존'을 벗어나는 도전을 해 보길 적극 추천합니다!

*김나영 작가의 질문으로 시작된 해외살이 인터뷰 시리즈. 타국에서의 삶을 동경해 왔던 마음 때문인지 수상하게도 해외에 지인이 많은 김나영 작가가 저마다의 사정으로 이방인의 삶을 선택한 이들의 해외살이를 묻는다.

글 김나영 에디터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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