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김태형 DB 통역, 그가 전한 당부의 말

손동환 2024. 5. 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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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4년 4월호에 게재됐다. 인터뷰는 3월 19일 오후에 이뤄졌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원주 DB는 지난 3월 14일 홈 코트에서 정규리그 1위를 확정했다. 2017~2018시즌 이후 6년 만에 결과. 이제는 ‘통합 우승’을 바라보고 있다.
김주성 DB 감독의 지도력과 선수들의 역량이 더해진 결과였다. 하지만 스태프의 역량도 무시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을 보탰기 때문이다. 외국 선수를 뒷받침하고 있는 김태형 DB 통역도 팀의 살림꾼 중 한 명이었다.

“통역 한 번 해볼래?”
김태형 통역은 어느날 선배의 권유를 받았다. “통역 한 번 해볼래?”라는 권유였다. 농구를 좋아했던 김태형 통역은 2007년 원주 동부(현 원주 DB)에서 통역을 맡았다. 멋모르고 시작했지만, 누린 성과는 엄청 났다. ‘원주 프랜차이즈 역사상 마지막 통합 우승’이었다.
김태형 통역이 누린 기쁨도 컸다. 그러나 기쁨을 누리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럴 만했다. 초보 통역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첫 시즌이었기에, 2007~2008시즌은 김태형 통역한테 많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동부에서 일을 시작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학교 선배님께서 동부의 통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선배님께서 통역을 그만두게 됐고, 저에게 “통역 한 번 해볼래?”라고 권유하셨습니다. 권유를 받은 후, 2007~2008시즌에 동부 통역을 하게 됐죠.
선배님께서 통역을 권유했던 이유는 어떤 거였나요?
저랑 친한 선배님이셨고, 제가 영어를 어느 정도 했습니다. 농구도 좋아했고요. 그렇지만 2007~2008시즌 종료 후 잠깐 그만둬야 했습니다. 졸업을 하지 못해, 학교로 잠깐 돌아갔거든요.
선수단에 합류했습니다. 첫 인상은 어떠셨나요?
TV로만 봤던 선수들을 눈 앞에서 직접 봤습니다. 지금은 감독님이신 김주성 선수와 당시 외국 선수였던 레지 오코사 등이 있었죠. 그런 선수들을 보면서, ‘내가 프로농구단에 있구나’라고 체감했습니다.(웃음)
친하게 지냈던 선수도 있었을까요?
이광재 코치님이 당시 신인이었습니다. 저와는 입사 동기인 셈이죠.(웃음) 같이 들어오다 보니, 이야기도 많이 나눴습니다.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있고요.
말씀하신 대로, 당시 1옵션 외국 선수는 레지 오코사였습니다.
외국 선수들의 나이가 저보다 많았습니다. 오코사도 아마 1980년생이었을 거예요.(김태형 통역은 1982년생이다) 그래서 저를 동생처럼 아껴줬어요. 밥도 같이 먹고, 저에게 많은 도움을 줬죠.
물론, 어려움도 있었습니다.(웃음) 외국 선수를 대하는 게 처음이었거든요. 그렇지만 외국 선수를 포함한 모든 선수들이 저에게 형처럼 대해줬습니다. 그만큼 저를 편안하게 대해줬어요.
입단하자마자 통합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동부가 우승할 거다”는 평가도 없었고, 저도 뭘 몰랐습니다. 너무 어렸고, 아무 것도 몰랐거든요. 하지만 승리가 누적돼다 보니, 저희 팀이 우승에 한 걸음 다가섰던 것 같아요. 팀원들의 역량 역시 대단했고요. 다만, 김주성 감독님의 힘이 특히 컸습니다. 감독님께서 그때 전성기였거든요.(웃음)

어려움? 그 이상의 보람!
모든 프로농구 스태프가 그렇듯, 통역 역시 빡빡한 일과 속에 산다. 외국 선수들의 일상을 도와줘야 하기 때문에, 이들의 타임 라인은 더 빽빽할 수 있다. 시즌 중에는 더 빼곡할 수 있다.
김태형 통역도 마찬가지다. 15년 넘게 ‘워라밸’(일과 휴식을 맞추는 밸런스)을 잊었다. 그러나 자신의 일이 구성원에게 도움이 됐을 때, 김태형 통역은 고생한 만큼의 기쁨을 얻었다. 어렵기는 했지만, 그 이상의 보람을 느꼈다.

일과는 어떻게 되시나요?
선수들은 오전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오후에 전술 훈련을 합니다. 저는 그때 참관을 하거나, 선수 간의 소통에 신경 씁니다. 또, 외국 선수들이 필요로 하는 게 있을 때, 제가 도와주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식사가 많이 신경 쓰일 것 같아요.
지금의 배달 시스템은 체계적이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그래서 선수들과 식사를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선수들은 원하는 음식을 캡처해서 보내주거나, 제가 대신 주문을 해주기도 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추천해주기도 하고요.
퇴근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직업입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더 컸을 것 같아요.
시즌 중에는 많이 어렵습니다. 팀 스케줄과 외국 선수들의 일정에 맞춰서 움직여야 하니까요. 그래서 시즌이 끝나야, 제대로 쉴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가족들이 더 생각나고요.(웃음)
가족들의 이해심이 많이 필요하겠어요.
맞습니다. 그렇지만 아내가 저를 많이 이해해줘요. 그리고 제가 비시즌 때 최선을 다합니다. 집안일에 최선을 다하죠.(웃음)
보람을 많이 느낀 때는 언제였나요?
이번 정규리그에서 1위를 했을 때, 정말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제가 케어하고 있는 디드릭 로슨과 제프 위디, 이선 알바노 모두 부상 없이 이번 시즌을 치렀습니다. 이 선수들이 부상 없이 뛰어줬기에, 저희가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프로 스포츠단에 있다 보니, 이길 때 느끼는 보람이 크더라고요.

“디드릭 로슨, 모든 게 다 가능한 선수입니다”
동부는 2017~2018시즌부터 DB로 바뀌었다. DB로 바뀐 첫 시즌부터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다. 2019~2020시즌에도 대권을 노릴 수 있었다.(DB는 2019~2020시즌 공동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2019~2020시즌은 코로나19로 조기 종료됐다)
하지만 DB는 2020~2021시즌부터 세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2023~2024시즌 정규리그 최강자가 됐다. 김주성 감독이 중심을 잘 잡아줬고, 디드릭 로슨과 이선 알바노, 강상재와 김종규 등 주축 자원들이 시너지 효과를 내서였다.
특히, 디드릭 로슨의 가세는 컸다. KBL 경험자였던 디드릭 로슨은 DB에 입성한 후 KBL 최상급 외국 선수로 거듭났다. 김태형 통역도 이를 인정했다. 디드릭 로슨을 “모든 게 다 가능한 선수인 것 같아요”라고 극찬했다.

DB가 2020~2021시즌부터 3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선수단 분위기가 무거웠을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플레이오프를 몇 년 동안 가지 못했습니다. 부상도 많았고, 외국 선수 교체가 많았죠. 그런 게 복합적으로 겹쳤기 때문에, 저희 팀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김주성 감독님이 2023년 여름 새롭게 부임했습니다. 통역님에게는 어떤 걸 주문하셨나요?
‘활발한 소통’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면, ‘외국 선수들이 필요로 하는 것’과 ‘코칭스태프가 원하는 것’을 연결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김주성 감독님께서는 형처럼 외국 선수들을 대해주셨습니다. 외국 선수 가족들과도 식사를 자주 했고, 외국 선수 가족들의 생일도 챙겨주셨어요. 그리고 국내 선수들에게도 많은 애정을 쏟으시고요.
디드릭 로슨이 정규리그 1위의 원동력이었습니다. 다른 외국 선수들과는 어떤 게 달랐을까요?
모든 게 다 가능한 선수인 것 같아요. 약점이 없는 선수 같기도 하고요.(웃음) 인성 또한 훌륭하고, 예의도 바릅니다. 정말 소탈하기도 하고요. 아. 가족에게도 정말 충실합니다.
그리고 농구 외에 다른 것들을 하지 않아요. 농구를 많이 고민하고, 실전과 훈련 때의 집중력도 뛰어난 것 같아요.
로슨에게 바라는 점도 있었나요?
그런 점은 없었어요. 경력이 있는 선수라, 한국 농구-한국 생활-한국 문화 이해도 모두 높거든요. 손이 안 가는 선수예요.(웃음)
앞서 이야기하셨지만, DB가 2017~2018시즌 이후 6년 만에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습니다.
위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첫 우승 때는 아무 생각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배우면서 했죠. 그렇지만 이번 시즌에는 달랐습니다. 외국 선수 선발 과정부터 참여하다 보니, 뿌듯함이 더 컸던 것 같아요.

“부상을 당하면 안 됩니다”
김태형 통역은 프로농구에 청춘을 바쳤다. 코트에서 많은 변화를 겪기는 했지만, 그의 위치는 그대로였다. 통역 그리고 국제업무 담당자로서 많은 데이터를 누적했다.
데이터를 많이 누적한 김태형 통역은 “부상 없는 시즌”을 강조했다. 이유가 있다. 외국 선수는 팀 전력의 절반 이상. 그런 외국 선수가 다치면, 국내 선수들의 노력이 허사가 되기 때문이다. 그걸 잘 아는 김태형 통역이기에, ‘건강’을 키워드로 꼽았다.

통역으로 있는 시간 동안, 어떤 것들을 얻으셨나요?
제 직업 자체에 보람을 느끼기도 했고, 우승으로 얻는 성취감도 컸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외국 선수와 함께 했던 게 저에게는 큰 자산이었습니다. 비시즌 때 검색했던 외국 선수 관련 데이터와 제가 조사했던 외국 선수들의 성향 역시 마찬가지고요.
통역으로서의 목표는 어떻게 되시나요?
외국 선수들이 농구에만 집중할 수 있어야 하고, 한국 농구와 한국 문화 등 한국에 잘 적응해야 합니다. 또, 이 선수들이 부상을 입으면 안 됩니다. 외국 선수들이 위에 언급된 내용을 지킬 수 있도록, 제가 힘을 보태야 합니다.
특히, 부상을 당하지 않아야 합니다. 물론, 예기치 못하게 발생하는 요소라고 하지만, 이 선수들이 마지막까지 부상을 당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해야, 팀이 긍정적인 결과를 낼 수 있거든요.
마지막으로 농구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매번 느끼지만, 팬 분들의 열성이 대단하세요. 응원도 많이 해주시고요. 저도 경기장에서 팬 분들의 열정을 많이 느낍니다. 다만, 팬 분들께서 앞으로도 코트에 많이 와주신다면, 선수들이 큰 기운을 받을 겁니다. 많은 응원과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러스트 = 락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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