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윳빛 결실

신은정 2024. 5. 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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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술당당' 막걸리 원데이 클래스

어떤 것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경험해 봐야 하는 법. 마시기만 하던 막걸리를 직접 만든다면 어떨까. 전통적인 방식으로 빚어낸 술이 궁금하다.

술은 왜 빚는다고 할까. 송편도 아니고 도자기도 아닌 액체를 말이다. ‘빚다’라는 말을 떠올리면 손으로 뭔가를 분주히 만들어내는 장면이 떠오른다. 알코올에 온갖 화학약품이 섞인 초록 소주는 빚는 게 아니지만, 전통주는 쌀과 누룩을 빚어 만드는 정성스러운 음식이다. 정성을 들이고 인내의 시간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빚어지는 것이 우리의 얼이 담긴 전통주다.

전통주는 몇 해 전부터 낡은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트렌디한 술이 됐다. 다양한 재료를 접목해 새롭게 탄생한 전통주들은 젊은 층의 입맛을 저격했다. ‘혼술’ 문화에도 이제 전통주의 자리가 생긴 것. 위스키가 그랬듯, 전통주의 인기가 높아지자 사람들이 그 과정과 문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맛보는 것을 넘어 우리와 가장 친근한 재료로 만들어지는 술을 만나고 싶어 우리술당당을 찾아갔다. 약 2년 전 문을 연 우리술당당은 성수동에 위치한 전통주 보틀숍이자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하는 전통주 복합문화공간이다. 벽면을 빼곡하게 채운 300여 종의 술은 대다수가 양조장에서 바로 오는 것들이다. 이곳의 특별한 점은 이화주와 막걸리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는 것. 가치 있는 술을 알아보는 애주가들을 비롯해 한국의 문화를 체험하기 위한 외국인들의 방문이 잦다. 가게 한편에 붙어 있는 사진들이 그 추억을 증명한다. 오늘 진행할 체험은 막걸리 원데이 클래스. 한 번 빚는 단양주법으로 진행된다. 클래스는 우리술당당이 선정한 전통주 2종 시음부터 시작한다. 쌀이 동동 떠 있는 도갓집 무화과동동주와 대한민국 탁주 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TAAK100을 맛본다. 달큼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새롭게 느껴진다. 우리술당당 김치승 대표의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설레는 술 빚기를 시작해 본다.

술 빚기 중 첫 번째로 중요한 과정은 재료를 선별하는 작업이다. 김치승 대표는 어떤 술을 만들지 상상해 보고 술에 필요한 재료들을 고르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오늘은 물, 찹쌀과 누룩 세 가지를 사용해 가장 전통적인 막걸리를 만든다. 여기에 계절에 맞는 재료를 첨가하는데, 5월이니 봄을 알리는 꽃 향을 조금 첨가해 본다. 캐모마일, 장미, 국화가 들어간 막걸리는 상상만 해도 봄 향기가 물씬 풍긴다. 재료를 준비한 뒤에는 고두밥을 찐다. 찹쌀을 사용해 밥을 하면 훨씬 쫄깃쫄깃하고 건조하다. 이는 발효가 잘 되기 위한 조건이며 전통적으로 사용해왔던 찰기 있는 쌀과도 유사하다고 한다. 2시간 정도 물에 불린 찹쌀을 채반에 받쳐 물을 빼고, 찜통에 포를 깔고 그 위에 넓게 펼쳐준다. 보통 20분이면 완성되는데, 더 찌는 것은 크게 상관없지만 덜 찌면 발효가 되지 않아 충분히 쪄주는 것이 중요하다. 전기밥솥이나 압력밥솥 말고 찜기를 사용해 증기를 쐐야 한다.

고두밥이 맛있게 쪄질 동안, 미리 준비해둔 고두밥을 이용해 술을 빚는다. 식은 고두밥 1kg에 물 1L, 꽃도 함께 넣어준다. 쌀에 뭉친 부분이 없도록 잘 섞어준다. 이는 발효가 잘 되도록 하는 과정이다. 쌀알이 흩어져야 곰팡이가 쌀을 잘 분해해 발효가 잘 된다. 손 전체를 사용한다기보다는 손가락으로 뭉친 부분을 약하게 꼬집듯 풀어준다. 뭉친 부분이 없도록 잘 풀었으면 누룩을 넣고 이제 쌀과 재료가 친해질 수 있도록 섞어주는 치대기 작업을 한다. 섞으면서 들어가는 산소가 잠자고 있던 균들을 깨워준다. 많이 섞으면 섞을수록 쌀이 분해되며 죽과 가까운 형태가 된다. 이제 열심히 치대준 재료들을 발효통에 넣고, 평평하게 되도록 손등으로 지그시 눌러준다. 봄처럼 날씨가 따뜻할 때는 5일 정도면 막걸리가 완성된다. 발효가 잘 되는 최적의 온도는 25도라, 겨울에는 2주 가까이 걸리기도 하고 여름에는 3일이면 익는다. 곰팡이가 막걸리를 잘 만들어낼 수 있도록 직사광선과 온돌 의 열기를 피해 보관하고, 2~3일간 하루 2회 깨끗한 수저로 5번 정도 저어주면 가장 좋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면 열심히 술을 만들고 있는 상태다. 술이 잘 익었는지 확인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시간과 눈보다는 후각이다. 통을 열어 냄새를 맡아보고 발효된 술 냄새가 나면 완성된 것이다.

이렇게 발효된 술을 거르면 막걸리가 완성된다. 전통적으로는 채와 채다리를 사용해 걸러냈지만, 집에서 만들 경우에는 거름망을 사용하면 된다. 거름망에 넣은 상태로 살짝 수분기가 남을 때까지 잘 짜주면 우윳빛 막걸리가 탄생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막걸리는 시판 막걸리보다 살짝 높은 도수인 12도 정도로, 좋은 재료에서 시작된 깊은 맛이 난다. 텁텁한 맛이 없어 술을 자주 즐기지 않는 에디터조차 반한 맛이다. 막걸리의 어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막걸러서 막걸리라 불렀다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막 걸러진 막걸리는 신선한 우유와도 같다.

술을 만드는 동안 미리 쪄둔 고두밥을 확인할 차례. 찜통에서 갓 꺼낸 윤기가 흐르는 쌀을 넓게 핀 다음, 격자무늬로 밥을 나눠 빨리 식혀 준다. 선풍기나 에어컨을 틀어서 온도를 낮춰줘도 좋다. 고슬고슬한 고두밥을 김에 얹어 먹어본다. 직전에 맛본 깊은 맛의 막걸리가 이 재료로 탄생한 결실임을 곱씹으며 입안을 굴러다니는 쌀알을 꼭꼭 씹어 단맛을 느낀다.

쉽게 살 수 있는 맛있는 술도 많지만, 역시 내 새끼가 더 소중하다. 언젠가는 나만의 재료가 들어간 새로운 가양주를 만들길 바라며 직접 만든 막걸리를 든든히 품었다.

MINI INTERVIEW <우리술당당> 김치승 대표

대표님에게 전통주란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부터 쭉 해왔던 일이라 익숙하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잊고 살았던 친구를 만났을 때처럼 설렘을 주는 술이라 생각합니다. 한국 전통주가 쌀의 단맛과 더불어 간장·된장에서 나는 누룩의 쿰쿰한 냄새를 가졌거든요. 그런 점에서 한국인에게 굉장히 익숙하지만 술로 태어나면 새로운 설렘을 주는 술이죠. 지금은 한국 전통주가 엄청 대중적인 술은 아니지만, 알고 나면 누구나 빠져들 수밖에 없는 술이라 생각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전통주는?

면천두견주라는 술입니다. 당진의 면천이라는 곳에서 빚어지는 굉장히 오래된 술이죠. 죽을 술로 만드는데, 거기에 진달래를 더해서 봄 같은 향과 풍미를 가진 술이에요. 원래는 진달래 철인 봄에만 술을 생산했는데, 지금은 사계절 생산하고 있어요.

우리술당당이 어떤 공간이 됐으면 하나요?

어렵고 생소한 전통주를 쉽고 재밌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 람들이 전통주를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었으면 해요. 전통주의 매력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김치승 대표 PICK 5월에 추천하는 전통주

과천도가 〈숲으로12〉

만개한 꽃과 따뜻한 날씨 덕분에 일 년 중 가장 활동하기 좋은 5월. 봄나들이를 가는 듯한 이미지와 새큼한 향과 풋풋한 느낌이 나는 맛까지 이 계절과 가장 어울린다. 맛있는 막걸리 숲으로12 와 숲으로 나들이를 떠나보는 건 어떨까?

진정브루잉 〈파랑〉

바다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술. 녹파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술로, 잔에 따를 때 마치 푸른빛 파도가 치는 듯해서 녹파주라 부른다. 강릉 햅쌀과 찹쌀을 활용해 만들어 강릉의 푸른 바다를 연상케 한다.

술아원 〈경성과하주〉

사시사철 술을 즐기는 우리 민족은 계절마다 즐기는 술이 다르다. 경성과하주는 대표적인 여름 술로, 단맛은 강하고 도수는 높아 보관이 편리하다. 여름을 나기 위한 선조의 지혜가 담긴 술이자 조선의 칵테일이라 칭할 수 있는 경성 과하주를 여름을 앞둔 이 계절에 추천한다.

¶우리술당당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5길 9-20 지하1층

0507-1336-6874

신은정 / sej@drtou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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