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시저의 유산은 어떻게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로 이어지나
1968년 충격적인 반전으로 전 세계 관객들의 마음을 훔친 '혹성탈출'이 시리즈를 이어오며 사랑받을 수 있었던 건 재미뿐 아니라 특유의 질문 때문이다. '공존'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지구를 지배할 유일한 종인 것은 온당한가, 인간은 지구 위 다른 생명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 것인가 등 말이다. 7년 만에 돌아온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시리즈의 유산을 이어받아 새로운 미래로 향한다.
진화한 유인원과 퇴화한 인간들이 살아가는 땅, 유인원 리더 프록시무스(케빈 두런드)는 완전한 군림을 위해 인간들을 사냥하며 자신의 제국을 건설한다. 한편 또 다른 유인원 노아(오웬 티그)는 우연히 숨겨진 과거의 이야기와 시저의 가르침을 듣게 되고, 의문의 한 인간 소녀와 함께 자유를 향한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프랑스 작가 피에르 불의 동명 SF 소설을 영화로 만든 1968년작 '혹성탈출'(감독 프랭클린 J. 샤프너)에서 시작해 오리지널 5편, 리메이크 1편, 리부트 3편이 나오는 등 '혹성탈출' 시리즈는 많은 사랑을 받는 프랜차이즈다. 오리지널뿐 아니라 리부트 3부작 역시 SF 영화 중 명작으로 손꼽힌다.
'혹성탈출: 종의 전쟁'(감독 맷 리브스)을 통해 시저의 시대를 마감한 시리즈는 7년 만에 나온 신작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감독 웨스 볼)를 통해 부제처럼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한다.
시저의 장례식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새로운 시작'이 '종의 전쟁' 이후로부터 이어진 시대의 이야기이자 시저의 유산을 어떤 식으로 이을 것인가에 관해 말할 것임을 암시한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노아의 여과 성장이라는 기본 줄기 안에서 아버지의 유산, 시저의 유산을 노아가 어떻게 자신의 안에서 받아들일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또한 '혹성탈출' 시리즈가 그러하듯이 노아의 여정은 유인원과 인간의 '공존'에 관한 질문 그리고 시저의 가장 중요했던 화두인 '집'에 관한 주제와 맞물다.
주인공 노아는 아직은 아버지의 그림자가 어렵고 또 무겁게 다가온다. 노아는 인간으로 치면 청소년과 어른의 경계에 발 디딘 인물로서, 폭력적인 프록시무스의 군단에 의해 아버지를 잃고 가족과 친구, 부족원들과 헤어지며 여정에 나서게 된다.
노아는 여정을 통해 '에코'라 불렸던 말 못 하는 짐승 같은 존재가 아닌 지성체로서의 인간을 만나고, 유인원 라카를 통해 프록시무스 군단이 말하는 거짓 유산이 아닌 시저의 진정한 유산을 알게 된다. 유인원의 생존, 그리고 인간과의 공존을 꿈꿨던 시저의 삶은 지금껏 보지 못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낯선 노아에게 많은 고민과 질문을 던져준다.
시저도, 시저의 가르침도 사라진 시대에서 노아가 시저의 유산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 것인가 하는 지점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이번 여정이다. 여정을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한 노아는 아버지와 시저의 유산을 받아들이되 자신만의 것으로 새롭게 정립한다. 여기에는 진실 역시 중요하게 작용한다.
인간이 지구를 지배했던 시절, 유인원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그 진실을 알게 된 노아에게 메이는 인간의 것들을 되찾을 것이라 말한다. 노아는 결국 자신과 유인원들에게 필요한 건 진정한 의미의 '집'임을 깨닫는다. 프록시무스와 인간의 폭력적인 방식이 아닌 자비와 공존이라는 개념이 담긴 평화로 쌓아 올린 '집' 말이다.
이처럼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시저의 가르침이 잊히고 왜곡된 시대에서 노아가 어떤 식으로 유인원들의 삶을 이끌지를 예고하는 시작점에 놓인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인간의 것을 되찾고 유인원에게 빼앗긴 시대를 다시 인간의 것으로 되돌리겠다는 메이의 선언에 노아는 그렇다면 유인원은 다시 침묵으로 돌아가야 하냐고 반문한다. 노아의 반문은 인간에 의해 부당하게 빼앗겼던 유인원의 권리, 비로소 내뱉을 수 있었던 자유를 향한 외침을 다시는 잃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노아의 선언은 공존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이뤄가야 하는지를 되묻게 만든다. 노아는 프록시무스처럼 지배하거나 인간처럼 유인원의 것을 빼앗는 등의 폭력적인 방식은 지구에서 모두가 공존할 방법이 아님을 경험했다. 또 그런 방식으로 다시금 집을 빼앗기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그렇기에 노아의 반문과 선언은 인간에게 깊은 반성과 고민을 하게 만든다.
또한 이번 작품에서 유인원과 인간이 어떻게 다른 길을 걸을지는 노아와 메이가 각각 시선을 어디에 두는지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노아는 하늘의 별을 보며 '미래'를 보지만, 메이는 빼앗긴 인간 중심의 행성이라는 '과거'를 바라본다.
인간이 변화한 시대와 유인원을 인정하지 않는 한 공존으로 갈 수 없고, 둘의 시선 차이에서부터 공존은 어긋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1968년 '혹성탈출'을 본 관객이라면 미래를 향한 유인원과 과거만을 바라보는 인간에게 어떤 시대가 도래할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영화에는 다양한 상징이 등장하고,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름'이다. 영화가 주인공의 이름을 '노아'로 한 것 역시 상징적이다. 성경 속 노아는 대홍수라는 멸망의 위기에서 자신과 함께한 생명체들과 새로운 시대를 시작한 인물이다. '새로운 시대'로부터 시작될 새로운 이야기가 어떤 방향성을 갖고 나아갈지 주인공의 이름에서부터 암시한다.
인간을 '인간'이라 부르지 않고 '에코'라고 부르는 점도 재밌는 지점이다. 수 세대가 지난 후, 과거 인간이 유인원을 볼 때 그러했듯이 유인원에게 인간은 지성체가 아닌 짐승과 같은 존재다. 그리고 노아를 비롯한 현시대 유인원들은 그런 인간을 '인간'이 아닌 '에코'로 부른다. 그리스 신화 속 에코는 말하는 능력을 빼앗긴 요정이다. 에코, 즉 인간이 영화에서처럼 공존을 버리고 과거를 반복할 경우 결국 미래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영화 곳곳에는 다양한 상징은 물론 이전 작품들에 대한 오마주가 엿보인다. 허수아비의 존재, 해안선을 따라 움직이는 모습, 풀숲 장면, '엄마'라고 말하는 인형, 시저를 상징하는 문양, 여성 인간은 지칭하는 '노바'라는 이름, 유인원들의 노역 등에서 웨스 볼 감독이 시리즈에 대한 이해도가 높음을 엿볼 수 있다. 작품의 팬이라면 '새로운 시대'에 담긴 오마주들이 반갑게 느껴질 것이다.
144분 상영, 5월 8일 개봉,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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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zoo719@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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