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과학상 수상 비결은 ‘협력’… 펜로즈도 결별한 호킹과 소통했다

채민기 기자 2024. 5. 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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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 펴낸
키팅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인터뷰
브라이언 키팅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2017년 노벨 물리학상 시상식장. 배리 배리시 캘리포니아공대 명예교수는 가죽으로 우아하게 꾸민 역대 수상자 명부에 막 서명하려던 참이었다. 무심코 앞을 펼치니 아인슈타인 이름이 보였다. 순간 의구심에 휩싸였다. “어떻게 내가 같은 반열에 들 수가 있지?” 합당하지 않은 자리를 자신이 사기꾼처럼 차지한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가면 증후군’이었다.

브라이언 키팅(53)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 물리학과 교수는, 세계 최고 과학자도 그렇게 느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전율이 일었다”고 했다. 그 역시 가면 증후군에 시달려왔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천재성에 가린 수상자들의 인간적 분투를 주목했다. 살아 있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9인을 직접 인터뷰하고 그들의 지혜를 엮은 책 ‘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를 펴냈다. 최근 한국어판(다산초당)을 낸 그는 화상 인터뷰에서 “어려운 이론이 아니라 가장 높은 성취를 이룬 과학자들의 삶과 고민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키팅 교수는 “연구 내용은 제각각이어도 수상자 모두 호기심과 장난기가 상당했다”고 말했다. “호기심을 따르라는 것이 아홉 명의 공통된 조언이었습니다. 야심을 따르면 끊임없이 누군가의 인정을 바라게 되죠. 반면 호기심은 자기만의 것이어서 덜 지치고 더 지속 가능합니다.” 그는 “수상자 모두 노벨상을 받은 뒤에도 평소와 똑같이 연구를 계속했다”면서 “자연을 탐구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중에게 물리학자의 이미지는 연구실에서 홀로 방정식과 씨름하는 괴짜에 가깝다. 그러나 키팅 교수는 “과학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서 “경쟁자와도 협력해야 하는 곳이 과학계”라고 말했다. 극도로 난해하고 전문적인 이론을 다루는 만큼, 다른 연구자들의 통찰에 발을 딛지 않고 혼자서 성과를 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의미다.

실제로 인터뷰에 응한 수상자 상당수가 경쟁자와 영감을 주고받으며 더 멀리 나아갔다. 예컨대 로저 펜로즈는 1964년 스티븐 호킹과 함께 발표한 논문에서 블랙홀의 발생 과정을 수학적으로 논증했다. 견해차로 결별한 뒤에도 둘은 “상대에게 배우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서로 지적으로 보완하고 자극”했다. 2020년에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펜로즈는 “더 치열하게 궁리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내 생각의 방향이 더 분명해졌기 때문에 (호킹과) 견해 차이는 내게 무척 가치 있었다”고 말한다. 라이너 바이스 MIT(매사추세츠공대) 명예교수 역시 전통의 라이벌 캘리포니아공대의 배리 배리시, 킵 손과 협력했다. MIT에서 그가 연구하는 중력파(重力波)에 관심을 보이지 않자 경쟁 학교의 같은 분야 연구자들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이들은 2017년 노벨상을 공동으로 받았다.

키팅 교수 자신도 노벨 물리학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된 경험이 있다. 지난 2014년 그가 소속된 연구진은 우주를 탄생시킨 대폭발(빅뱅)의 흔적을 관측했다고 발표했다. ‘세기의 대발견’으로 학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나 데이터 해석 과정의 오류가 밝혀져 수상이 불발됐다. 키팅 교수는 이때의 경험을 담은 전작 ‘노벨상을 잃어버리다’에서 현행 노벨상 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노벨상이 처음 제정되던 때에는 과학자가 혼자서도 돌파구를 만들 수 있었지만 지금은 협력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벨상은 최다 3명에게만 주기 때문에 협력 성과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수상에 따른 명예와 이익을 소수가 독점하게 됩니다.”

그는 “한때 내가 훌륭한 과학자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노벨상에 집착하던 때도 있었다”면서 “수상자들도 나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지금 노벨상은 더 이상 인생의 목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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