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전문직도 대체… 다차원으로 문제 해석하는 능력 키워야”

최예나 기자 2024. 5. 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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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전공 경험이 밑거름… 도시환경부터 의학까지 공부
공학 관점서 경제개념 융합 등 새로운 시각 가질 수 있게 돼
■ AI시대에 필요한 능력은… 융합-소통 가능한 인재 필요
학생들 디지털 기기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는 역량 키우길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재료과학공학부 석좌교수는 학사·석사·박사 과정에서 모두 다른 전공을 공부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는 7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AI 시대에는 문제를 다차원으로 해석하고 전략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잘 소통하는 인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동대 제공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석좌교수가 말하는 융합시대의 학습





의대 입학정원 확대와 함께 요즘 대학입시의 가장 큰 화두는 정부의 무전공(전공 자율선택제) 확대 정책이다. 의대 증원은 의대가 있는 대학 32곳에만 해당되지만 무전공 선발은 거의 모든 4년제 대학에 해당된다.

교육부가 무전공 선발을 확대하려는 건 입학 때 결정된 전공이 졸업까지 이어지는 상황에선 융합역량을 키우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일을 대체하는 시대에 한 가지보다는 여러 전공을 경험하고 융합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학사, 석사, 박사, 박사후 과정에서 모두 다른 전공을 공부한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재료과학공학부 석좌교수(52)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융합시대에 학생이 어떤 능력을 키워야 하는지 들어봤다. 그는 학부 시절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에서 도시환경을 전공하고 스탠퍼드대 재료공학 석사, 화학공학 박사, 의대 박사후 과정을 공부했다. 최근 한동대가 경북 울릉군과 진행하는 ‘울릉 글로벌 그린 아일랜드 프로젝트’를 준비하기 위해 한국을 찾기도 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AI 시대에 진로 지도를 어떻게 해야 하나.

“프로야구 심판이 AI로 대체되는 시대다.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도 얼마든지 AI로 대체될 수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의대에 가라거나 변호사시험을 보라고 말하는 것 역시 위험한 상황이다. 자녀가 직업을 갖게 될 10년 후를 부모의 30년 전 경험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 과거에는 시대 변화에 빠르게 편승하는 ‘패스트 팔로어’가 잘 살았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빠르게 움직이는 것만으론 안 된다. ‘퍼스트 무버’, 즉 그 분야를 개척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어떻게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갈 수 있게 하나.

“부모는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끌어내 아이가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문제는 부모와 아이가 대화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식당에 가면 부모와 아이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을 뿐 휴대전화를 보며 각자 밥을 먹는다. 아이들은 디지털 기기를 통해 정보를 쉽게 얻지만 스스로 고민하지 않는다.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도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제가 아는 이스라엘 히브리대의 한 학장은 딸이 고등학교 졸업 후 3년간 아프리카에서 지냈다고 한다. 대학은 25세에 갔다. 누구는 늦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 학생은 휴대전화 없이 대학에서 뭘 공부할지 생각했고 자신만의 미션과 비전을 갖게 됐다고 했다. 지금은 스타트업을 만들어 성공했다.”

―한국 학생에게 어떤 능력을 키우라고 조언하고 싶나.

“단순히 정답을 맞히는 건 AI가 더 잘할 거다. 인간은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할 수 없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인간을 이해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능력,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 등이다. AI는 명령어를 넣으면 그에 맞는 정보를 준다. 하지만 사람은 정보를 여러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AI 시대에는 문제를 다차원으로 해석하고 전략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잘 소통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

―최근 교육계에선 문해력이 떨어지는 게 화두다.

“요즘은 영상도 1분 이하 길이가 유행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양의 정보를 그저 소비할 뿐 충분한 시간을 들여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독서학원에 다니기도 한다는데 그런 곳에선 테크닉을 배울 뿐 생각하는 능력이 키워질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더 뺏길 수 있다. 학생들이 디지털 기기로부터 벗어나 텅 빈 상태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전공을 계속 바꿔 공부했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기초를 충분히 배우지 못하고 점프를 계속해 나가니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어려움을 겪으니 생각하게 됐고,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융합하면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다. 그래서 제 연구 분야에는 독특한 게 많다. 예를 들어 꽃가루를 활용해 해양 기름 등 수질 오염 물질을 흡수하는 친환경 스펀지를 개발했다. 처음 공대에선 식물학과도 아닌데 왜 꽃가루를 연구하느냐고 했다. ‘변환경제’라는 개념을 만든 것도 재료공학적 관점에서 경제를 봐 가능했다. 한 가지 전공의 시각만 고수했다면 이런 성과를 얻을 수 없었을 거다.”

―AI 공부도 다르게 할 수 있을까.

“AI가 뜬다고 학생들이 다 컴퓨터공학과만 가려고 하는 게 걱정스럽다. AI를 디자인하는 설계도 있어야 하고 기기도 만들어야 한다. 재료도 중요하다. 어떤 전공을 어떻게 접목시키느냐에 따라 자신의 가치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학생들이 그런 생각을 스스로 해야 한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배짱 있는 사람이 결국 승자가 된다.”

―앞으로 대학의 역할도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사람마다 배우는 속도와 방식이 다르다. 자기가 공부하고 싶은 걸 골라 커리큘럼과 방식을 달리해 배우면 된다. AI 시대에 대학은 지식을 단순히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말아야 한다. 학생에게 비전을 심어주고 전공 지식을 실제 현장 솔루션으로 적용하는 경험을 해보게 해야 한다. 제가 진행하고 있는 울릉도 프로젝트도 한동대 학생들에게 새로운 경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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