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로맨스가 ‘범죄도시’ 독식 뚫고 1위한 이유는?

신정선 기자 2024. 5. 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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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영화 ‘남은 인생 10년’ 깜짝 흥행
지난달 3일 재개봉한 영화 ‘남은 인생 10년’은 일본 스타 배우 고마쓰 나나(오른쪽)와 사카구치 겐타로가 주연했다. 화사한 벚꽃이 사방으로 흩날리는 거리 등 봄철 감성을 담은 장면이 많다. /바이포엠스튜디오

스무 살 불치병 여성의 순애보가 돌주먹 마동석을 울렸다. 일본 로맨스 영화 ‘남은 인생 10년’이 상영관을 독식한 ‘범죄도시4′를 누르고 5월 황금 연휴 사흘간 좌석판매율(확보 좌석 대비 실관객 비율) 1위를 차지했다. ‘남은 인생’의 지난 3~4일과 6일 좌판율은 최대 43.3%(6일)로 ‘범죄도시4′의 좌판율보다 14%포인트 이상 앞섰다. ‘남은 인생’은 7일에도 좌판율 11.1%를 기록해 고작 8%에 그친 ‘범죄도시4′를 앞질렀다.

영화 관계자들은 놀랍다는 반응이다. ‘남은 인생’은 재개봉작인 데다 상영 6주 차에 접어들었다. 흥행 동력이 떨어지는 게 일반적 수순이다. 그러나 작년 5월 첫 개봉 때의 관객(13만7632명)보다 재개봉 관객을 2배 이상 동원하며 누적 50만명을 내다보고 있다. 김형호 영화시장 분석가는 “재개봉 관객이 3배 가까운 것은 엄청난 성적”이라고 말했다.

CGV 관람 데이터에 따르면, ‘남은 인생’은 10대(21%)와 20대(35%) 관객이 절반 이상이다. 시한부 여주인공이 숨져가는 전형적인 스토리인데도 만족했다는 관객이 많다. ‘울지 말자 울지 말자 했는데 왈칵’ ‘눈물 없는 날 울리다니 제법이군’ ‘연애 1도 관심 없던 사람이 5번 보게 만든 영화’(CGV 실관람객 평가) 등의 의견이다. 토요일인 지난달 27일 CGV 용산의 ‘남은 인생’ 상영관에선 흐느낌이 끊이지 않았다. 병상의 여주인공이 가쁜 숨을 내쉴 때마다 20대 남녀 커플이 대부분인 객석에서 탄식이 이어졌다.

영화 관계자들은 ‘범죄도시4′의 상영관 독점이 오히려 ‘남은 인생’에 득이 됐다고 본다. 거의 모든 한국 영화는 ‘범죄도시4′를 피해 5월 말 이후 개봉한다. 그러다 보니 ‘범죄도시’와 같은 폭력물을 보기 싫은 1020 데이트 관객은 별다른 선택의 여지 없이 ‘남은 인생’으로 몰려갔다는 것이다.

‘남은 인생’ 배급사인 바이포엠스튜디오의 전략이 통한 측면도 있다. 소셜미디어 마케팅으로 시작해 영화 배급에 뛰어든 바이포엠은 1020세대가 선호하는 로맨스, 그중에서도 일본 로맨스 발굴에 적극적이다. 일본 실사 영화 역대 1위인 ‘오늘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118만3536명)도 바이포엠이 배급했다. 바이포엠 관계자는 7일 본지 통화에서 “재개봉작은 흥행이 어렵다는 통념에 도전한 것이 주효한 것 같다”며 “브랜드가 넘쳐나는 시대라 첫 개봉 때 묻혔다고 해서 관객이 싫어한다고 단정하기 이르다”고 말했다.

일본 로맨스가 한국 1020 관객을 잡고 있는 것은 한국 제작사가 이들을 위한 로맨스 영화를 거의 만들지 않기 때문. 국내 한 배급사 관계자는 “한국 로맨스를 만들려면 제작비가 70억~100억원은 든다”며 “손익분기점을 넘기 힘들어 고정 관객층이 있는 줄 알면서도 제작사들이 뛰어들기를 꺼린다”고 말했다. 반면 일본 수입 영화는 비싸다 해도 10억원 이하에 수입가가 형성돼 있다.

바이포엠은 수입 영화를 들여올 때 음원·출판 권리도 확보한다. 1020에게 다가가기 쉽게 음원 홍보를 활용한다. ‘남은 인생’은 개봉 한 달 전부터 가수 폴 킴 등이 재해석한 곡을 소셜미디어 광고에 실어 확산시켰다. 개봉 시기도 중요하다. 1020이 영화관을 외면하는 중간고사 기간을 최대한 피한다. 목표는 3~6위 수성(‘남은 인생’은 7일 현재 4위). 좌판율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하기 위해 상영관을 굳이 늘리지 않는다. 바이포엠 관계자는 “천만 영화는 한 달 후쯤 내려가겠지만 ‘남은 인생’은 1위가 어느 작품으로 바뀌든 3~4개월 장기 상영할 수 있다”며 “영화 산업이 어려울수록 전략적으로 다가가려 한다”고 말했다.

☞남은 인생 10년

일본 로맨스 영화 ‘남은 인생 10년’은 실제 난치병으로 세상을 떠난 작가 고사카 루카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남은 인생이 길어야 10년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 여주인공이 삶의 의지를 잃고 방황하던 남주인공을 만나 서로에게 삶의 의미를 찾아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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