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간신열전] [233] 군진(君陳)의 충(忠)
태종16년 11월 6일 ‘태종실록’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재상 하륜(河崙)을 이렇게 평했다. “정승이 되어서는 되도록 대체(大體)를 살리고 아름다운 모책과 비밀스러운 의견을 낸 것이 대단히 많았으나 물러나와서는 일찍이 남에게 누설하지 않았다.”
실제로 훗날 다른 신하들이 태종에게 하륜을 그토록 아낀 이유를 묻자 태종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하 정승 귀로 들어간 일이 그의 입으로 나오는 것을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충(忠)을 행하는 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처럼 윗사람과 비밀리에 행한 일을 스스로의 공으로 내세우지 않는 것을 옛날에는 ‘군진(君陳)의 충(忠)’이라고 불렀다. 삼경 중 하나인 ‘서경’ 군진(君陳) 편에는 주나라 성왕이 신하 군진에게 당부하는 말이 실려 있다.
“아름다운 꾀와 아름다운 계책이 있거든 즉시 들어와 안에서 임금에게 고하고 밖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일러 말할 때는 ‘이 꾀와 계책은 우리 임금께서 내신 것이다’라고 말하라.”
예나 지금이나 윗사람 일을 대신 맡아서 하게 되면 우쭐거리고 싶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을 제어할 능력이나 자신이 없으면 기밀 업무는 맡아서는 안 된다. 신평 변호사에 이어 함성득 경기대 교수도 영수 회담 밀사를 맡았다고 스스로 공개하고 나섰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를 언론에 공개하는 것도 구차스러운 일이지만 그런 사람들을 가까이 했다는 것 또한 참으로 구차스러운 일이다. 구차함은 예(禮)가 아니다. 공자가 말하지 않았던가?
“임금이 주도면밀하지 못하면 좋은 신하를 잃게 되고, 신하가 주도면밀하지 못하면 목숨을 잃게 된다.”
임금의 주도면밀함은 사람을 잘 가려서 쓰는 것이고 신하들의 주도면밀함이란 말조심이다. 지난 2년 동안 수도 없이 반복되어 온 윤석열 정부의 폐단이다. 총선으로 그 준열한 심판을 받고 한 달이 지나도 달라질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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