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영]구리값 오르니, 다리 명판 도둑

김재영 논설위원 2024. 5. 8.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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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시의 농촌 지역 교량에서 다리 이름을 적어 놓은 교명판과 공사설명판 등이 잇따라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교량 12곳에서 4개씩 동판 48개를 누군가 몰래 떼 갔다.

충북 보은에서도 동판이 사라진 교량이 발견돼 군내 다리를 전수 조사하고 있다고 한다.

2019년에도 대구와 경북 청도 등에서 명판 절도 사건이 발생하는 등 수년에 한 번씩 비슷한 범죄가 되풀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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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시의 농촌 지역 교량에서 다리 이름을 적어 놓은 교명판과 공사설명판 등이 잇따라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교량 12곳에서 4개씩 동판 48개를 누군가 몰래 떼 갔다. 충북 보은에서도 동판이 사라진 교량이 발견돼 군내 다리를 전수 조사하고 있다고 한다. 2019년에도 대구와 경북 청도 등에서 명판 절도 사건이 발생하는 등 수년에 한 번씩 비슷한 범죄가 되풀이되고 있다.

▷동판이 절도범의 집중 표적이 된 것은 최근 구리 값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 열풍과 이상기후 우려로 전선의 주요 소재인 구리 수요가 크게 늘었다. 국제 원자재 시장에서 구리 가격은 지난달 말 t당 장중 1만 달러를 넘어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도난당한 명판은 구리가 70% 포함된 황동으로 만들었다. 30kg 명판 1개를 팔면 고물상에서 20만 원가량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최근 일본에서도 태양광 발전 시설에서 케이블 절도가 횡행하는 등 구리를 노린 절도가 세계적으로 빈번하다.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같은 경기 침체 시기나 원자재 가격이 크게 뛸 때마다 쇠붙이 절도 사건이 많이 발생했다. 배수관, 철제 대문, 공사장 철근, 고기불판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기승을 부렸다. 2007년 울산에선 10여 곳의 학교에서 밤새 스테인리스 재질의 교문이 사라지기도 했다. 전신주를 타고 올라가 구리 전선을 훔치는 경우가 많아 한국전력은 10여 년 전부터 전선 재질을 구리 대신 저가의 알루미늄으로 교체해 왔다. 맨홀 뚜껑도 단골 표적이었는데, 최근엔 잠금장치를 단 덕분인지 도난이 많이 줄었다.

▷국제유가가 오를 때는 송유관에 구멍을 뚫어 수십억 원어치의 기름을 빼돌리는 도유(盜油) 범죄도 많이 일어났다. 특히 2007, 2008년에는 한 해에 30여 건씩 발생하기도 했다. 그 자체로도 중대 범죄지만 자칫 송유관 폭발이나 환경오염 등 2차 사고를 부를 수 있는 위험천만한 범죄다. 지금은 첨단감지시스템 덕분에 많이 줄긴 했지만, 지난해에도 모텔을 통째로 빌려 지하실 벽을 뚫고 송유관 근처까지 땅굴을 파던 일당이 목표지점 30cm 앞에서 붙잡히는 영화 같은 일이 있었다.

▷CCTV 보급이 확대되고 현금 보유가 줄면서 절도 사건 자체는 점차 줄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고물가와 경기 침체로 생활이 팍팍해지면서 10만 원 이하 소액 절도는 최근 4년 새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코로나19 이후 점원이 없는 무인점포가 크게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 깊어지는 불황에 푼돈에 손을 댄 ‘생계형 범죄’에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시민 안전을 위협하면서 공공시설을 훔치는 조직적 절도까지 ‘불황형 범죄’라며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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