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잃은 카네이션

김송이 기자 2024. 5. 8.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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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시대 지출 많은 5월
꽃 대신 ‘용돈이나 밥 한 끼’
꽃바구니 예약도 70% 줄어
재배 농가 10년 새 ‘반토막’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지난 7일 낮 12시30분 서울 남대문 꽃도매상가에서 만난 상인 최모씨는 손님들에게 연신 말을 붙이고 있었다. “동네 꽃집보다 배는 (절반은) 싸요! 1만5000원밖에 안 한다니까.”

최씨 가게 매대에는 큼직한 카네이션 5~6송이가 꽂힌 꽃바구니들이 가득했다. 손님 대여섯이 지나갔지만 다들 “둘러보고 올게요”라는 말만 남겼다. 점심시간이 지나며 카네이션을 구경하러 왔던 인근 직장인들이 사라지자 상가는 더 썰렁해졌다.

이곳에서 40년간 꽃 장사를 한 최씨는 “어버이날 대목이 예전 같지 않다”며 “전부 뜨내기 손님들뿐이라 지나다니는 이들 중에 꽃을 사 가는 사람은 10명 중 2~3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최씨 등 꽃 상인들은 코로나19 이전보다 매출이 20~30%는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A씨는 “예전 같으면 이렇게 말할 틈도 없이 바빠야 할 때”라며 “단체주문도 점점 줄어드는 추세”라고 말했다. 최씨는 “지난해까지 어버이날에 카네이션 꽃바구니 예약을 100개씩 받던 꽃집들이 올해는 주문을 30개 정도밖에 못 받았다”고 말했다.

어버이날과 스승의날이 일주일 간격으로 있는 5월은 화훼업계에서 대표적 대목으로 꼽힌다. 하지만 ‘5월 카네이션 특수’는 예년 같지 않다. 경기 침체와 고물가 등으로 인해 꽃 대신 용돈 같은 실용성이 높은 선물을 선호하는 이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달 초 연휴 기간에 외식이나 여행으로 지출이 컸던 영향도 있다.

직장인 김모씨(34)는 결국 빈손으로 돌아섰다. 김씨는 “이미 지난 주말에 부모님과 좋은 곳에서 식사를 해서 큰 꽃바구니를 따로 선물하기에는 부담이 있다”고 말했다. 꽃바구니를 구경하던 오모씨(63)도 “5만원 정도면 사볼까 했는데 8만원이라고 해서 안 샀다”며 “꽃은 구경만 하고 그 돈으로 밥 한 끼 사드리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카네이션을 재배하는 농가들도 대목 특수를 못 누리긴 마찬가지다. 한국농수산물유통공사 화훼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6일까지 거래된 국산 절화(자른 꽃) 카네이션은 4만4706속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거래된 7만2782속보다 39%나 감소한 수치다.

농가들은 난방비 상승과 불규칙한 날씨, 수입품 증가 등 복합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경남 김해에서 27년간 카네이션을 재배해 온 B씨는 “올해 일조가 안 좋아서 꽃들이 늦게 피었는데 대목이 지나면 카네이션을 찾는 이가 없을 터라 걱정”이라며 “지난해보다 난방비도 20% 정도 올라 인건비와 난방비를 빼면 남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10여년 전 B씨 주변의 카네이션 재배 농가는 50곳이었는데 올해는 20여곳에 불과하다고 했다. B씨는 “중국산 카네이션이 많이 들어온다”며 “농가들이 카네이션 대신 블루베리나 산딸기 같은 작물 재배로 대체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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