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변리사로 산다는 것

2024. 5. 8.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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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변리사가 무엇을 하는 직업인지 종종 질문을 받는다.

기술과 법 그리고 제도를 여러 각도로 다루다 보니 변리사들은 평소에도 따지고 분석하려 드는 성향이 있다.

지식재산권 분쟁에서 허술한 상대방 주장과 논리를 반박하고 공격해야 하는 변리사에게 요구되는 자질과 능력도 이와 비슷하다.

변리사는 이처럼 예리하게 질문하고 단어 하나 차이로 주장할 수 있는 권리 범위가 달라지는 특허 같은 산업재산권을 전문적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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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변리사가 무엇을 하는 직업인지 종종 질문을 받는다.

언론을 통해 더러 고액 연봉 전문직으로만 알려졌지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간략히 소개하자면 변리사는 특허, 상표, 디자인 등 지식재산권을 다루는 법률 전문가다.

기술과 법 그리고 제도를 여러 각도로 다루다 보니 변리사들은 평소에도 따지고 분석하려 드는 성향이 있다. 가령 "작년에 하와이 갔었냐?" "하와이? 재작년에 갔지~"라는 대화가 오간다.

평범한 대화지만 엄밀하게는 "재작년에 갔지"는 "작년에 갔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지 못한다. 재작년에 갔다는 사실이 작년에 가지 않았다는 것을 필연적으로 전제하지는 않는다.

쉽게 말해 재작년에 하와이를 갔더라도 작년에 하와이를 또 갔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재작년에 갔지"라는 대답에 "그건 내가 물은 게 아니고, 작년에 갔냐고?"라고 되물으면 어떻게 될까. 아마 일상생활에서는 말귀를 못 알아먹거나 사회성이 꽤 부족한 사람으로 핀잔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이처럼 파고들기 엄청나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이런 대화가 범죄 혐의자를 심문하는 취조실에서 이뤄지면 어떻게 될까. 만약 작년에 하와이에 간 것이 범죄 가능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증거라면 유능한 수사관은 놓치지 않고 반드시 되물어볼 것이고 그래야 한다.

지식재산권 분쟁에서 허술한 상대방 주장과 논리를 반박하고 공격해야 하는 변리사에게 요구되는 자질과 능력도 이와 비슷하다. 일상에서라면 당연히 여기고 넘길 부분도 업무와 관련됐다면 더 따져보고 집요해야 한다.

'빨간 연필'이라고 적혀 있다면 붉은색을 띠는 무한한 색의 스펙트럼 중 어디까지가 빨간색이고 어디서부터가 빨간색이 아닌 것일까. 연필통째로 빨개야 빨간 걸까, 아니면 90% 이상, 70% 이상 또는 50% 이상 빨갛다면 빨간 것일까.

빨간색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빨갛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몸통이 빨갛다면 '빨간 연필'일까, 몸통이 하얗더라도 빨갛게 써지면 '빨간 연필'일까, 몸통도 빨갛고 써지는 것도 빨개야 비로소 '빨간 연필'일까.

변리사는 이처럼 예리하게 질문하고 단어 하나 차이로 주장할 수 있는 권리 범위가 달라지는 특허 같은 산업재산권을 전문적으로 다룬다. 20년 전이라면 필자는 "재작년에 갔어"라는 지인 대답에 아마도 "그래서, 작년에 갔냐고?"라고 다시 물어봤을 수도 있다.

작년에 가지 않았다는 의미로 말한 걸 몰라서가 아니라 직업병(?)이 도져 그래도 다시 물어봤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다시 물어보고 싶기는 하겠지만 이젠 참을 것 같다.

요즘은 '빨간 연필'을 명확하게 정의하라고 지인에게 강요하지도 않는다. 논리는 논리이고 관계는 관계다. 논리라는 바탕 위에 관계를 두기보다 오히려 논리가 무너져야 관계가 굳건해지는 듯하다.

가까이 들여다보고 따지고 분석해야 해결되는 문제도 있지만, 먼발치에 물러서서 바라봐야 해결되기도 한다. 사회생활과 인간관계에는 너무 들여다보지 않아야 원만히 해결되는 문제가 훨씬 많은 것 같다. 논리와 인간관계, 말로는 쉽지만 참 실천하기 어려운 조합이다.

[김두규 대한변리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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