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이야? 사기범이야? … 신고 임금체불액만 1223억

손고운 기자 2024. 5. 8.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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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한국 임금체불 피해 이주노동자는 일본의 12배… 국가인권위, 피해자 379명 설문·심층면접 실태 조사 결과
2024년 4월29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임금체불 피해 이주노동자 증언대회’에 이주노동자들이 들고나온 팻말. 류우종 기자

“이주노동자 임금체불액은 2022년 기준 신고된 것만 1223억원이다.”

2024년 4월29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서울 중구 인권위 배움터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임금체불 피해 이주노동자 증언대회 및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임선영 인권침해조사과 이주인권팀장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지적했다.

“2023년 예상치는 1300억원으로 지속적 증가 추세이며, 이 통계의 함정은 신고된 것만 포함한 수치”

“내국인 노동자의 2배, 이제 거의 3배로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발생률이 올라간 건 임금체불 이유가 이주노동자 차별임을 보여줘”

“이주노동자는 수천만원 임금을 받지 못하고도 왜 신고 않고 계속 일했을까 싶을 텐데, 이들은 ‘사업장 변경’이 제한돼 있어”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올 때 비행기 푯값 등 빚을 지는데 높은 이자율, 가족 기다림이 임금체불과 맞물려 자살까지 가는 경우도”

이날 발표된 조사 결과는 379명의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이주노동자·근로감독관·사업주를 심층 면접한 결과를 종합한 것이었다. 하지만 토론회 패널로 참석한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의 반응은 싸늘했다. “매년 1200억원이다, 또 1천억원을 넘겼다, 그래서 어쩌자는 겁니까? 국회에서도 (이런 토론회를) 몇 번 했어요? 그런데 상징적으로, 결국 오늘 이 자리에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나 법무부 비자 정책 담당은 오지도 않잖아요. 이게 현실입니다.”

모든 절차 다 써봤지만 한 푼도 못 받아

최정규 변호사의 싸늘한 반응에는 배경이 있다. 그가 캄보디아 출신 A씨를 만난 건 2020년 3월. A씨는 아픈 어머니 등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2015년 7월 한국에 처음 들어온 여성 이주노동자였다. A씨는 4년7개월 동안 경기도 이천의 한 농장에서 일했는데, 이 가운데 3년8개월분의 월급을 받지 못했다. 어림잡아도 5천∼6천만원이나 되는 임금이었다.

A씨의 사연은 당시 방송 뉴스로도 보도됐다. 고용노동부(2020년 4월10일)는 체불보증보험 등을 통해 일부 금액 청산이 가능하다는 입장문을 냈다. 그러나 지금까지 4년 넘는 기간 동안 그가 받아낸 체불임금은 단 한 푼도 없다. 사업주는 A씨의 임금 3400만원에 대해서만 체불 사실을 인정했지만, 그마저도 임금을 주는 대신 벌금을 택했다. 사업주 입장에선 3400만원을 지급하는 것보다 벌금 800만원(근무내역을 기재한 노트를 불태운 재물 손괴 벌금 200만원, 근로기준법 위반 벌금 600만원)을 내는 게 훨씬 유리했다.

“민사소송도 했고, 형사고소도 했고요. 간이대지급금(근로자 체불임금을 국가가 대신 지급하는 제도. 최대 1천만원) 신청도 했고, 보증보험도 신청했습니다. 한국에 있는 모든 절차를 다 소진했어요. 더 황당한 건 법무부는 이런 상황에 놓였는데 합법적으로 일할 비자를 더 안 줬습니다. 3년8개월치 월급을 못 받았는데 변호사한테 맡기고 그냥 돌아가란 건가요?” 최정규 변호사가 말했다.

사각지대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우선 법인이 아닌 5명 미만 농어업 개인사업장에서 일한 경우에는 임금채권보장법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간이대지급금을 받을 수 없다.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임금체불 진정사건 통계(2022년 기준)를 보면, 접수된 사업장 1만1071개 가운데 5명 미만 사업장이 57.7%(6384개)나 된다.

임금체불보증보험(최대 400만원)도 울타리가 되지 못했다. 고용주는 고용 허가를 받기 전 이 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고, 고용노동부는 사업장의 가입 여부를 확인해야 하지만, A씨가 일한 사업장 사업주는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어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2024년 4월29일 서울 중구에서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임금체불 피해 이주노동자 정책토론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임금체불 피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간이대지급금제도와 임금체불보증보험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최대치는 1400만원에 불과하다. 이 금액이 넘는 경우 민사소송을 통해 확정판결을 받은 뒤 사업주의 일반재산에서 체불임금을 강제집행해야 한다. 하지만 이주노동자가 강제집행할 사업주의 재산을 찾는 일은 어렵다. 민사소송을 통해 받는 확정판결도 사실상 무용지물인 이유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하는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올 때 공식적으로 습득하는 정보는 2장짜리 근로계약서가 전부다. 작업환경과 숙소도 알 수 없고 해당 사업장이 임금체불을 한 적이 있는지 노동법 보호는 받을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 상태로 3년 이상 일할 사업장을 선택한다. 인권위는 이처럼 △사업장 정보 불충분 △근로계약서 미준수 및 미작성 △노동자의 권리인식 부족 △기초적 노무관리 부재 등이 임금체불을 심화한다고 분석했다.

반의사불벌죄 악용하는 경우도

현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의 권리구제를 돕는 김주찬 김포이웃살이 신부가 말하는 ‘임금체불 심화 요인’은 더욱 분명했다. 그는 이주노동자 자신의 생계는 물론 고향에 있는 가족의 생계까지 달린 ‘생존권’ 문제가 이렇게 가볍게 치부되는 것은 근로기준법상 반의사불벌죄의 왜곡된 적용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2005년 개정된 근로기준법은 임금지급이나 휴업수당 등에 대해 반의사불벌죄를 적용해 노동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사용자를 처벌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원래 취지는 사용자에게 체불임금을 청산하면서 합의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취지대로 적용되지 않아서 노동계에서는 오랫동안 반의사불벌죄 폐지를 요구해왔다. “임금을 지급할 능력이 안 되거나 지급할 의지가 없으면서 근로자를 모집하고 노무를 제공받은 뒤엔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게 계속해서 발생한다? 그 사람은 ‘체불사업주’가 아니라 ‘상습 사기범’이죠. 이런 건 개인적 권리분쟁 문제가 아니라 중범죄예요. 게다가 이주노동자들은 (착한 마음에) ‘저는 끝까지 저 사람 벌주겠습니다’ 이런 사람은 없어요. 사업주는 그걸 악용한다는 말이에요. 답답해요, 답답해.” 김주찬 신부가 말했다. 그는 “2023년 9월부터 미국 뉴욕주에선 임금절도액이 1천달러(138만여원)를 넘어가면 형법에서 다스릴 수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일본처럼 애초에 임금체불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일본은 국가가 사전에 노사 규범을 조성하고 임금체불을 조기에 발견해 사법 처벌보다 행정·사법 조정으로 노사분쟁을 해결한다. 이에 한국의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신고 건수는 일본의 16.5배, 체불액은 27.7배, 피해 노동자 수는 12.4배(2021년 기준)에 이른다. 실태조사를 한 연구진 가운데 한 명인 박정우 서울노동권익센터 정책연구위원은 일본의 경우 “불시 점검 등 임금체불에 대한 사업장 감독이 굉장히 강력하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은 사전적 부분이 굉장히 약하고 오히려 사후적 부분이 강한 자유주의 시장경제 유형에 포함돼 있어요. 영국·미국과 같이 속칭 자유주의 국가들과 비슷합니다. 반면 일본과 독일 같은 경우는 사후적 조처보다는 사전 예방적 조처에 더 강점을 가진 국가예요. 근로감독관의 업무 비중 자체도 사전 사업체 감독에 초점을 맞추고요. 또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로 치면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같은 곳이 전국에 300개 넘게 지청마다 촘촘하게 있어서, 여기에 한 번 신청하면 조정과 판결까지 굉장히 신속하게 절차가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2024년 4월29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임금체불 피해 이주노동자 증언대회’에 이주노동자들이 들고나온 팻말.

합법으로 들어와도 불법 노동자 만드는 구조

인권위가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사업주들의 인식은 심각한 상황이다. 사업주·관자는 심층면접조사에서 한국인 노동자보다 이주노동자를, 특히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일부러 쓰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합법적으로 하기 되게 껄끄럽고 귀찮고 펜션에서 일하시는 분 대부분 불법이에요. 일단 월급이 적게 나갈 수 있어 좋고요. 한국 사람보다 불만이 많이 없죠.”

“퇴직금 같은 경우는 솔직히 업주 재량이고요. 법적으로 챙겨주는 거라기보다 그냥 제가 주고 싶은 만큼 적당히 주는 거고.”

“처음 오면 월급 첫 달은 줘요. 그다음 달은 반만 줘요, 솔직히. 나머지는 안 주는 건 아니고 저희 통장을 따로 만들어서 거기다 집어넣거든요. 돌려는 줘요. 근데 이제 나갈 때 좋게 나가야 되지.”

“이분들이 불법이 될 수밖에 없는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임금을 못 받아가지고 거기서 도저히 안 되겠다 하는데… 그 회사에서 허락을 해줘야지 사임하고 다른 회사에 취직할 수 있어요. 근데 임금 안 주면서 퇴사도 안 시켜주니까 불법이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돈을 벌어야 되니까.”

이들의 말에는 ‘미등록·불법이라는 취약성 때문에 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 ‘임금 지급 지연’을 이주노동자 관리 수단으로 악용하는 관행 등의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특히 애초에 합법으로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도, 사업장 변경 제한 때문에 불법 이주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 처해 있음을 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이날 토론회에선 임금체불 피해 이주노동자들이 증언자로 나서기도 했다. 활동가가 대신 읽은 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의 증언을 보면, 이 이주노동자는 하루 10시간 일하면서 한 달에 이틀 쉬었고, 가건물 기숙사비(35만∼45만원)를 월급에서 공제해야 했다. 자신을 포함해 같은 사업장에서 일한 이주노동자 5명 모두 700만~1450만원 상당의 임금체불을 겪었지만, 고용노동청 진정 뒤에도 임금을 받을 수 없었다. 사장이 불복해 형사소송과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다. 증언을 대독하던 활동가는 “천만원, 천오백만원 이것은 우리들에게 큰돈입니다” 대목을 읽을 땐 울먹이기도 했다.

“돌연사 등 노동자 사망 원인도 조사할 것”

2024년 인권위는 ‘이주노동자 사망 원인 분석’에 대한 연구용역을 추진할 계획이다. 임선영 이주인권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최근 이주노동자 사망이 많아지면서 ‘돌연사다’ ‘자살이다’ 하는데 이분들에 대해선 장례식도 없고 조사도 없어서, 이 죽음이 혹시 노동환경에서 기인한 것은 아닌지 구조적 측면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속헹씨(난방되지 않는 비닐하우스에서 자던 중 사망한 캄보디아 국적 여성 이주노동자)도 나중에 노동단체들이 노력해서 산재 판정을 받았지만, 처음엔 자연사로 돼 있었거든요.”

글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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