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전용’ 전시는 남성 차별?…소송 휘말린 호주 예술가

최혜린 기자 2024. 5. 8.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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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현지시간) ‘레이디스 라운지’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커샤 케이첼이 대법원에 항소하겠다고 밝히며 올린 게시물. 사진 속 케이첼은 전시에 사용된 것과 유사한 초록색 커튼을 태즈메이니아주 대법원 정문 앞에 설치하고 법원 판결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커샤 케이첼 인스타그램 갈무리

남성 출입을 금지하는 ‘여성 전용’ 전시를 기획한 호주의 한 큐레이터가 남성 관람객도 받아들이라고 명령한 법원 판결에 항소하겠다고 7일(현지시간) 밝혔다. 법원은 남성의 출입을 막는 것이 차별금지법 위반이라고 판단했지만, 전시 기획자는 문화와 공간을 향유할 기회가 여성들에게 더 부족했다는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BBC와 호주 현지 매체에 따르면 태즈메이니아주 호바트 모나 미술관은 지난 3월 차별금지법 위반 소송에 휘말렸다.

모나 박물관에서 열린 ‘레이디스 라운지’ 전시가 여성들의 입장만 허용한 점이 논란이 됐다. 이 공간은 호주의 오래된 선술집과 유사하게 꾸며져 있다. 녹색 벨벳 커튼과 파블로 피카소 등 유명 화가들의 실제 그림들로 꾸며진 라운지는 여성 손님을 모시는 집사 한 명을 제외한 모든 남성의 출입이 금지된다.

예술가 겸 큐레이터인 커샤 케이첼은 여성을 특정 공간에서 배제하는 차별적인 문화를 풍자하기 위해 이같은 전시를 기획했다. 1965년까지 고급 술집은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당시 여성들은 출입이 사실상 금지돼 더 허름하고 비싼 ‘여성용 라운지’로 밀려나는 일이 잦았다.

그러나 박물관을 방문한 남성 관람객 제이슨 라우는 단지 성별을 이유로 남성들의 라운지 출입을 제한하는 것은 차별금지법 위반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케이첼은 “남성 출입을 금지한 것은 차별이 맞다”면서 “그들이 이곳에서 경험하는 거절이 바로 예술 작품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나는 최근에 한 선술집에 갔을 때도 여성 라운지에 앉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다”며 “역사적으로 여성들은 좋은 인테리어를 더 적게 경험했다”고 말했다.

법원은 지난달 11일 남성 관람객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여성이 아닌 사람에게도 입장을 허용하라”고 명령했다.

케이첼은 이같은 판결에 항소해 대법원의 판단을 구하기로 했다. 그는 “재판부가 여성들이 경험해 온 사회적, 역사적 차별을 너무 좁게 해석하고 있다”며 “지난 수천 년 동안 여성들이 겪은 일을 고려하면 적어도 300년 동안은 더 배상을 요구할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케이첼은 또 차별금지법 제27조의 예외조항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주에서는 인종, 성별 등에 따른 부당한 차별을 금지하지만 ‘소외되거나 불리한 위치에 있는 집단이 평등한 기회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별은 허용한다’는 예외를 두고 있다.

해당 전시는 앞서 나온 법원 명령에 따라 일시 중단된 상태다. 케이첼은 대법원 심리가 진행되는 동안 라운지 내에 있던 전시품들을 박물관 내 여성 화장실로 모두 옮겨 ‘여성 전용 전시’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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