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넷을 키우는 아빠가 첫 육아휴직 직접 써보니...

칼럼니스트 동욱 2024. 5. 8. 12:3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잘 자라는 사회] "눈치가 보여서 못쓰는 게 아닙니다. 돈이 없어서 못쓰는 겁니다"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2006년에 첫 아이를 낳았고 2018년에 넷째 아이를 낳았으니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네 번의 육아휴직의 기회가 있었으나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했다. 첫 아이를 키울 때 만해도 아빠의 육아휴직은 언감생심이었다. 휴직을 신청하는 것도 눈치보이는 일이지만, 복직할 때는 책상이 없어진다는 흉흉한 소문이 사실이 되던 시절이다. 그나마 공직에 입문한 뒤로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빠의 육아휴직은 알게 모르게 금기시되거나 혹은 아주 많은 눈치를 봐야했던 때가 있었다.  

이런 문화가 급속도로 바뀐건 4~5년 전부터로 기억된다. 공공부문에서 남성 육아휴직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육아수당이나 장려금 등을 확대하면서 아빠들도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 2020년대 초반 무렵이다. 육아휴직에 따른 인사상의 불이익이 상당 부분 개선됐고, 젋은 직원일수록 육아휴직을 당연한 권리로 인식하고 자유롭게 활용하고 있다. 

이 같은 문화의 변화는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2023년 비경제활동인구의 주된 활동이 육아라고 응답한 남성이 1만 6천명으로 전년에 비해 37.4%가 늘었다. 물론 아직은 육아를 전담하기 위한 여성의 휴직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서서히 개선되고 있는 상황은 바람직해보인다. 여기에 대기업의 호응도 적극적이다. 육아휴직 법정기간 1년에 추가로 1년을 얹어 최장 2년을 오롯하게 아이를 키우는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기업이 점차 늘고 있다. 공공 부문에서 선도하는 아빠 육아휴직이 점차 대기업을 비롯한 민간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분위기다. 

최근 양기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서도 국가적 저출산 문제에 해결을 위해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부영그룹의 출산 축하금 1억 원이 화제가 되기도 했고, 정부는 공기업과 공공기관에 이어 민간 기업도 육아휴직 현황을 경영공시 사항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저출생 문제가 계속될수록 기업에도 노동력 감소, 소비시장 감소, 기반산업 쇠퇴 생존의 위협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는 반증이다. 

육아휴직을 장려하는 고용노동부의 홍보물. ⓒ고용노동부

◇ 아빠의 육아는 또 다른 자아실현, 그러나 현실은...

18년 만에 육아휴직란 제도를 활용해보니 여러 가지 감회가 새롭다. 그 동안 무엇을 하느라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는지 후회되는 점도 있고, 보다 많은 스킨십으로 아이들과 유대감을 형성하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가정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무게만 생각했지, 이렇게 많은 가사노동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막내 아이의 등원을 준비하고, 이런저런 가사활동을 하다가 저녁 무렵 하원하는 아이를 마중나가는 생활은 직장 생활에서 느끼지 못하는 또다른 자아실현의 한 대목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보다 많은 아빠들의 가정보육 참여, 나아가 저출생 대책으로서의 육아휴직은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일부 대기업 외에는 아직도 육아휴직 문화에 인색한 기업이 적지 않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을 비롯해 일손이 부족한 중소기업에서는 상사의 눈치가 아니라 동료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휴직을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직을 위한 중간 단계로 오해받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경영 공시 사업보고서에 육아휴직 사용률 정보를 넣도록 의무화해 기업별 비교를 가능하게 한다지만 신입사원 채용에 약간의 영향을 미칠 뿐 실제 제도 확산에 미치는 영향은 미지수다. 

가장 큰 문제는 턱없이 낮은 육아휴직 급여다. 공무원의 경우 월 최대 150만 원 정도의 육아휴직급여를 지급하는데 2024년 기준 1인당 최저임금이 207만 원인 점을 감안하면 아이를 키우겠다고 휴직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실감하게 된다. 대출은 언제 갚고, 육아비용은 누가 준단 말인가. 직장 동료들도 대부분 '일을 안하는데 돈을 왜 주냐'는 반응이다. 휴직으로 인한 가처분 소득의 감소는 소비지출의 감소로 이어져 가정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휴직기간에 별도로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 이럴 바에야 그냥 회사를 다니는게 오히려 안정적이지 않을까? 육아휴직 제도 활성화를 위해서는 육아휴직 급여를 현실화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 될 것이다. 

나의 육아휴직 한달살이는 곧 끝이 날 예정이다. 가장의 온전한 월급이 아니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수도 있는 허약한 가정경제 탓이다. 20년차 직장인의 삶도 이럴진데 청년층, 신혼부부의 생활은 오죽할까. 0.7명대에 이른 합계출산율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를 낳으라고 독려할 것이 아니라, 낳아놓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저출산 대책이 더욱 세심하고 꼼꼼하게 설계돼야 하는 이유다. 정확하게 들여다보자. 출산이 적은 게 문제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환경이 문제다. 이걸 개선해내야 한다. 

*칼럼니스트 동욱은 교육학과 언론학을 전공했다. 네 명의 딸아이를 키우고 있어 '사딸라'로 불리지만,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있는 미완성 어른이다. 가족/사회 정책과 인구문제에 관심이 많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Copyright © 베이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