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공염불 된 교육부의 대학규제 철폐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2024. 5. 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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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행 기본계획 브리핑. 연합뉴스 제공

정부가 호기롭게 약속했던 '대학규제 철폐'가 공염불이 돼버렸다. 작년 2월 정부가 교육개혁을 선언하고 고작 1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교육부 직제에서 고등교육정책실을 폐지한 것이 유일한 성과다.

대학의 정원·학사·입시·재정에 대한 교육부의 규제는 오히려 폭력적인 수준으로 강화되고 있다. 법과 제도도 개의치 않는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독선·독단·불통이 모든 대학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 이제는 대학 사회의 목소리를 듣는 척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장관이 국립대 총장에게 직접 전화로 통보하면 만사형통인 세상이다.

교육부의 강력한 규제에 짓눌린 대학의 현실은 절망적이다. 사립대의 숨통을 조여왔던 불법적인 등록금 상한제는 요지부동이다. 대학이 '직전 3개 연도 평균 소비자 물가상승률의 1.5배' 범위에서 등록금을 인상할 수 있도록 명시한 고등교육법 제11조 ⑩은 지난 15년 동안 사문화된 상태다.

의과대학을 운영하는 대학의 사정은 더욱 불안하다. 자칫하면 의대 증원에 따른 엄청난 재정 부담까지 떠안게 될 형편이다. 이미 대학이 운영하는 수련병원은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 버렸다.

그뿐이 아니다. 9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2025학년도 입시요강도 확정하지 못했다. 수험생들의 원성(怨聲)이 고스란히 대학을 향하고 있다. 대학의 헌법이라고 할 '학칙'의 권위도 추락하고 있다.

학칙에 규정된 학사조직(단과대학·학과)과 학사제도(학기제)도 교육부의 일방적인 공문에 따라 졸속으로 개정해야 한다. 교육부의 알량한 지원금을 받으려면 대학의 정체성까지 포기하겠다는 각오가 필요한 형편이다.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행정관에 학사구조 개편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요구사항이 써진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제공

● 무차별적인 '무전공' 선발 압력

대학 안에 존재하는 지나치게 견고하고 높은 담을 허물어야 하는 것은 당위적인 일이다. 허울뿐인 '융합'이나 '통섭'을 위해서가 아니다. 실제로 대학에서의 '문과'와 '이과'의 구분에 의한 폐해는 고등학교나 대학입시에서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대학에서 문학·역사·철학과 과학·공학이 대립·갈등하고 있는 것도 고질적인 문·이과 구분 탓이다. 아직도 학생들에게 음양오행설이 동양의 전통적인 자연법칙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고 대학을 어떠한 담이나 구분도 존재하지 않는 '무전공'으로 운영해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고 했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좋은 이웃을 위한 좋은 담을 만들기 위해서는 담의 실질적인 기능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우선 내 사과밭과 이웃의 솔밭 사이에 필요한 담의 기능이 분명해야 한다. 담의 기능에 따라 재질과 구조가 결정된다는 뜻이다.

담의 높이도 중요하다. 너무 높은 담은 이웃과의 철저한 단절을 뜻한다. 그렇다고 담이 무작정 낮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담이 너무 낮으면 진정한 담으로서의 온전한 기능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좋은 담을 만드는 데는 사회적 환경도 고려해야 한다. 

교육부가 강요하고 있는 '무전공'에는 프로스트의 '좋은 담'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다. 나지막한 돌담은 바람이 많은 제주도에나 어울린다는 사실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만고불변의 사실이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다.

그렇다고 교육부가 모든 대학에 '무전공 선발'을 강요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무전공 선발은 1973년 일부 대학에서 도입했다가 실패한 '학부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학부제 선발이 실패한 원인은 분명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학생들의 '쏠림' 현상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의대가 상위권 학생의 불랙홀이 된 것이 극단적인 쏠림 현상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쏠림 현상의 부작용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담'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대학에서 기초학문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주는 대책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대학이 유연한 학사조직에 따라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해줘야만 한다. 교육부의 엉터리 규제가 대학과 사회의 미래를 망치고 있다.

한국교원대는 청주교육대와의 통합을 바탕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글로컬대학 30' 2차사업 공모에 나설 방침이지만 학생과 총동문회는 이를 졸속 통합이라며 반발하고 있다.연합뉴스 제공

● 정체불명의 '라이즈'와 '글로컬

서울·경기·인천을 제외한 지역의 대학에게 '라이즈'(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 체계)와 '글로컬대학30'은 저승사자와 같은 것이다. 입학정원도 채우지 못하고 있는 지역 대학에게 라이즈나 글로컬의 실패는 사형선고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라이즈와 글로컬에서도 역시 교육부의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벽 허물기가 핵심이다. 심지어 대학의 정체성까지 포기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지역 대학을 지자체에 맡기겠다는 '라이즈'는 교육부가 외치던 '대학규제 제로화'를 가장한 저질 꼼수다. 그동안 교육부가 고집스럽게 틀어쥐고 있던 대학의 관리 권한을 광역지자체에 대폭 이양하겠다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교육부의 '규제철폐'와 대학의 관리 권한을 지자체로 '떠넘기는 것'은 전혀 다른 사안이다. 

대학을 관리하는 최소한의 역량도 갖추지 못한 지자체의 입장이 난처하다. 교육부가 연구재단에 설치한 '중앙라이즈센터'와 지자체가 운영하는 '지역라이즈센터'에 대한 기대도 공허한 것일 수 있다. 지역대학에게 중앙라이즈센터는 교육부에서 자취를 감춘 고등교육정책실의 부활일 뿐이다.

라이즈의 부작용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다. 언론과 국민의 감시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지역 사회에서 대학이 자칫 지역 '유지'들의 영향력에 포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입시·학사관리·교수 임용에서 상상을 넘어서는 부작용이 예상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글로컬의 횡포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역시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서 30개의 '글로컬대학'을 선정해 매년 1000억원의 엄청난 예산을 지원해서 세계적 대학으로 육성한다는 것이 교육부의 화려한 구상이다. 그러나 글로컬은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활동했던 이명박 정부에서 요란하게 추진했던 '세계적 수준 대학'(월드클래스대학)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구상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전광석화처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글로컬대학 선정과 후속 과정에서 불거지고 있는 잡음도 도를 넘어섰다. 오로지 교육부의 지원금을 목표로 어렵사리 '통합'에는 동의했던 대학이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라이즈와 글로컬에서 소외된 지역 대학에 대한 정책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많은 지역 대학이 벚꽃 피는 순서로 문을 닫게 된다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최북단의 서울·인천·경기에 위치한 대학도 떨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라이즈와 글로컬에서도 원천적으로 소외되어 손가락을 빨고 있는 형편이다. 
 

의정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7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도서관에서 한 학생이 앉아 있다. 연합뉴스 제공

● 의정 갈등의 중심에 뛰어든 교육부

정부가 지난 2월부터 느닷없이 밀어붙이고 있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시도로 시작된 의정(醫政) 갈등에서 교육부의 역할도 '대학규제 철폐'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오히려 교육부가 섣부른 의료 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는 보건복지부의 들러리로 전락해 버렸다는 지적도 있다.

교육부가 보건복지부의 들러리로 전락해서 의약학 계열의 대학 교육을 엉망으로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5년에 도입된 의학전문대학원은 차의학전문대학원만 남기고 모두 폐지되고 말았다.

2011년에 도입되었다가 작년에 모두 폐지된 약대의 '2+4년제'도 보건복지부의 요청에 의한 실패작이었다. 의약학 교육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던 끔찍한 정책 실패였다. 그렇다고 후안무치한 교육부가 대학이나 국민에게 사과했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의대 증원에서 교육부의 역할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인천·경기를 제외한 지역의 32개 의과대학에 2000명의 정원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교육부가 의대의 교육 인력과 시설을 제대로 파악했는지는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 의대 증원 상황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린 6개 국립대 총장이 '자율 모집' 의견을 내는 과정에 교육부가 깊이 관여했던 것도 사실로 알려졌다.

교육부가 막무가내로 의대 증원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대학 안에서 의과대학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어 버린 후유증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교육부가 총장을 비롯한 대학 본부의 입장과 교육 현실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의과대학의 입장을 조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버렸다. 정부의 강력한 증원 요구를 거부해 버린 부산대의 상황은 절대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교육부가 '시행령'을 핑계로 고등교육법 제34조에 명시된 '대학입시 예고제'를 무력화시켜 버린 것은 심각한 문제다. 혹시라도 서울고등법원의 판결로 의대 증원이 무산되면 올가을의 대학입시는 감당할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게 된다. 

학교를 떠나버린 의대 학생들의 집단 유급을 막겠다는 시도도 도를 넘어선 것이다. 대학에게 학생들이 제출한 휴학원을 승인하지 말도록 하고 학칙을 개정해서 '학기제'를 듣도 보도 못한 '학년제'로 변경하도록 대학에 공문으로 '지시'한 것은 명백하게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모두가 듣도 보도 못한 교육부의 새로운 규제가 만들어내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9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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