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바스 진단하는 아이스폴 닥터…이들 없인 에베레스트도 없다

김정배 블랙야크 이사 2024. 5. 8.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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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BC 아이스폴 닥터들과 일주일간 동거동락

아이스폴 닥터란? 사다리를 연결해 크레바스에 다리를 놓고 각국에서 온 원정대를 중재하고 사고 당한 등반자를 구조하고 쓰레기 수거까지 하는 에베레스트 BC의 도우미들이다.

등반가들의 크레바스 통과를 위한 준비를 하는 아이스폴 닥터 대원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를 현지에서는 '사가르마타Sagarmatha'라고 부른다. 네팔어로 '사가르'는 세계, '마타'는 정수리를 의미한다. 즉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는 뜻이다. 영국의 한 측량 담당 공무원 이름인 '에베레스트Everest'보다는 세계 최고봉의 의미를 잘 담고 있는 이름이다.

1953년 5월 27일, 영국령 뉴질랜드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와 네팔의 셰르파 '텐징 노르게이'가 세계 최초 등정이라는 영광을 가져간 이후에도 에베레스트는 여전히 산악인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소위 '증명'의 장소다.

세계 최초나 세계 최고의 타이틀은 더 이상 주어지지 않지만, 등반가라면 누구나 세계 최고봉인 이 산에 오르길 원한다. 그래서 매년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등반가들의 텐트로 장사진을 이룰 뿐 아니라, 정상으로 가는 길목은 기나긴 행렬이 만들어진다.

크레바스를 건너기 위해 사다리를 연결해 임시 교각을 만든다. 허공 위에 뜬 위험한 사다리이지만 전 세계에서 온 등반가들에게는 생명줄 같은 존재다.

에베레스트 초등이 이루어진 이래로 다양하고 많은 시도들이 있었다. 에베레스트 정상으로 가는 다양한 루트가 개척되었고, 극한의 새로운 등반들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가장 많은 등정이 이루어지는 루트는 네팔의 남동릉 루트이다. 그리고 여전히 극지법을 사용한 상업등반대에 의해 등반이 이루어진다.

등반 장비 경량화와 기술의 발달로 예전보다 등반이 쉬워지고 등반 확률도 대폭 상승했다지만 여전히 정상으로 오르는 과정은 험난하다. 8,000m급 봉우리 14개 중 가장 높은 5,400m의 베이스캠프조차 등반 초기에는 걷는 것이 힘들고 숨이 가쁘다. 며칠간 고소 적응 후 등반을 시작하면 본격적인 자신의 한계와의 싸움이 시작된다.

목숨을 노리는 함정 크레바스

보통 캠프4나 캠프5를 지나 정상으로 이어지는 이 여정은 짧게는 4주, 길게는 8주가 넘게 이어진다. 등반가들은 이 기간 동안 캠프들을 오르내리며 고도에 적응하며 기회를 기다리고 모든 것이 완벽한 어느 날 마침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오로지 자신의 체력, 그리고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결과다.

에베레스트의 아이스폴 지대. 아이스폴의 크레바스 위치와 크기가 매년 달라져, 매년 사다리를 재설치해야 한다.

그런데 전 세계의 산악인들이 베이스캠프에 도착하기 한 달 전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출발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아이스폴 닥터Ice fall Doctor'라고 불린다. 남동 루트를 따라 에베레스트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크고 작은 난관들이 있다. 흔히 마지막 난관을 '힐러리 스텝'이라 하고, 첫 번째 난관을 '아이스폴' 지대라고 한다. 초등자인 힐러리 경의 이름을 딴 힐러리 스텝은 에베레스트 남봉과 정상 중간지점에 위치한 10m 암벽 구간이다.

베이스캠프에서 캠프1까지 이어지는 얼음지대를 '아이스폴'이라고 한다. 크레바스와 눈사태의 위협이 상존하는 지역이다. 추락하면 실종이나 사망으로 이어지기 십상인 크레바스는 등반가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꺼리는 것이다.

계속 지형이 변하는 빙하지대인 아이스폴 지역의 크레바스는 매년 위치가 달라진다. 때로는 넓어지고 때로는 좁아진다. 크레바스의 수가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없던 크레바스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에베레스트 BC로 향하는 아이스폴 닥터 대원들. 일주일간 동거동락하며 그들의 일상을 엿보았다.

히말라야 원정에서 만나는 이 첫 번째 난관은 많은 원정대와 셰르파들의 희생을 불러왔다. 아이스폴 닥터들에 따르면 정확한 숫자는 파악할 수 없지만 현재까지 크레바스 사고로 사망한 등반가와 셰르파는 100명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크레바스를 넘는 가장 안전하고 유일한 방법은 사다리를 놓는 것이다.

폭이 좁은 크레바스는 사다리 한두 개로 가능하지만, 넓은 크레바스는 사다리를 열 개까지 이어 붙이기도 한다. 이 사다리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양쪽의 얼음이 녹아 공중에 떠 있는 위태로운 경우도 많다. 그래서 계속 아이스폴 닥터들의 보수가 필요하다.

11명의 대원은 모두 네팔 현지인들이며 일당백의 역할을 한다.

세계 각국 원정대 돕는 11명의 네팔 대원

아이스폴 지대에 사다리를 놓고 고정 로프를 설치하는 일은 위험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 그래서 원정대들은 서로 눈치 싸움을 하기도 하고, 협력해 함께 개척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비용을 쓰며 더 많은 체력을 소모하는 원정대나 등반가는 항상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이스폴 지대를 개척하는 데 체력을 소모하면 남은 기간 원정에서 불리하다. 그래서 종종 원정대 간의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 바로 '아이스폴 닥터'다.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모든 원정대나 등반가들은 SPCCSagarmatha Pollution Control Committee의 규제를 받는다. SPCC는 1991년 설립된 비영리 단체로 쿰부 지역의 셰르파 중심의 단체이다. SPCC는 상시로 쿰부 히말라야 전 지역의 환경을 보호하는 일을 한다.

에베레스트 등반 시즌에 베이스캠프와 등반 캠프 전 구간에서의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되어 활동 중이다. SPCC에서 등산 시즌 중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상주하며 이 일을 담당하는 조직이 바로 '아이스폴 닥터'들이다.

아이스폴 닥터는 외국 등반가들을 구조하고, 원정대간 중재와 쓰레기 수거 역할도 맡고 있다.

아이스폴 닥터들은 모두 쿰부 히말라야 지역 출신들로 이루어져 있다. 많은 등반 경력과 책임감 강한 셰르파들만 아이스폴 닥터가 될 수 있다. 현재 '아이스폴 닥터'는 등반을 전담하는 대원이 7명, 베이스캠프 매니저 1명과 행정을 담당하는 1명의 SPCC의 CEO, 베이스캠프에서 이들의 식사를 담당하는 2명의 요리사(쿡)로 구성된 총 11명이다.

지난 3월 4일 남체에서 SPCC와 블랙야크 간의 후원 협약식이 있었다. 이를 위해 에베레스트의 관문인 남체바자르의 SPCC를 방문했다. 더불어 이들과 함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일주일간 체류하며 이들의 일상과 일하는 모습을 담았다.

협약식을 마친 다음날인 3월 5일, 아침 아이스폴 닥터들과 함께 남체를 떠나 에베레스트로 향했다. 포르체에 이틀간 머물며 빙벽등반 훈련을 마친 그들은 보통의 트레커들이 머무는 마을들을 통과해 이틀 만에 베이스캠프로 진입했다. 보통 트레커들은 중간에 고소 적응하는 날을 하루 두기 때문에 베이스캠프까지 5일이 소요된다. 고소 적응이 필요 없는 그들은 빠른 걸음으로 마실 가듯 베이스캠프로 들어섰다.

베이스캠프에 들어선 그들의 첫 번째 일은 본인들이 머물 캠프를 구축하는 것이다. 야크에 실어 보낸 장비들을 분류하고 익숙하고 빠른 동작으로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몇 시간이 걸리지 않아 식당 텐트와 취사 텐트를 설치하고 개인용 텐트 자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블랙야크는 아이스폴 닥터를 후원하는 행사를 열었다.

원정대 중재하고 구조 역할도 해

추위만 막을 정도로 임시로 설치한 텐트는 다음날부터 고도로 정비한다. 돌 쌓기의 달인들인 이들은 빙하지대의 거친 바닥을 골라 방바닥처럼 편안하게 만드는 재주를 부린다. 첫날 등이 배겨 잠을 이루지 못했던 텐트 바닥을 다듬어 편안한 잠자리로 만들었다. 이렇게 며칠간 캠프를 정비해 편안하게 만드는 일을 하며, 야크와 포터를 통해 옮겨지는 장비를 분류하고 확인했다.

5일째 팡보체마을의 사원에서 라마(티베트 불교 승려)가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이제 본격적인 아이스폴 닥터의 일을 시작할 때가 되면,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라마제'를 올린다. 라마제를 지낸 후부터 바빠졌다. 보통의 원정대도 라마제가 끝나면 등반을 시작하는데 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한가해 보였던 대원들은 각자의 장비를 챙기고 배낭에 로프를 나눠 담고 사다리를 나눠 메고는 아이스폴로 향한다.

3일간 가볍게 몸 풀듯 짐을 옮긴 이들의 다음 작업은 위험 구간에 표식기를 설치하고 고정 로프를 설치하는 것이다. 중간중간 크레바스나 위험 구간에는 사다리를 함께 설치한다. 아이스폴 지대는 폭이 넓다. 그래서 주로 해가 뜨기 전에 등반을 시작하는 등반가들은 방향을 잃기 쉽다. 아이스폴 지대에서 방향을 잃으면 위험하다. 미처 파악하지 못한 크레바스에 빠질 위험이 높고 낙석지대로 접근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간중간 깃발을 설치해 등반가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한다. 고정 로프는 등반가들을 인도하는 표식기와 더불어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뿐만 아니라 추락 시 부상을 방지하는 역할과 등강기를 이용해 쉽게 등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때문에 등반가와 셰르파들의 체력 소비를 줄인다.

그들의 이런 작업은 캠프3까지 계속된다. 일정한 지점까지 로프와 사다리를 비롯한 필요한 장비를 옮기고 다시 그곳에서 더 높은 위치로 옮긴다. 등반 루트를 따라 설치되는 고정 로프는 시즌마다 600m가량이 소모된다. 바람이나 낙석, 눈사태로 유실된 로프는 계속 보수한다. 캠프3 이상의 구간에서는 이런 일을 각 원정대의 등반가나 고용된 셰르파가 대신한다. 일단 캠프3까지는 아이스폴 닥터들에 의해 고속도로가 깔린 셈이다.

아이스폴 닥터는 BC에 도착해 라마제를 올린 후 활동을 시작한다.

아이스폴 닥터들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수시로 발생하는 사고를 관리하고 구조까지 담당한다. 산소가 떨어져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등반가를 업어 내리기도 하고 헬기를 이용해 구조에 나서기도 한다. 원정대 간 갈등을 중재하고 베이스캠프의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좁은 공간에 많은 원정대가 함께 생활하므로 크고 작은 문제는 매일 일어난다. 그리고 원정대들이 모두 떠난 후 각 캠프의 쓰레기를 수거하는 업무도 이들의 몫이다. 등반가들이 등정의 영광에 집중할 때 이들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 나간다.

베이스캠프에서 일주일 동안 아이스폴 닥터들과 함께 자고 먹고 그들의 길을 따라 올랐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해내면서도 단 한 번의 의견 충돌이 없었다.

하다못해 사소한 말다툼조차 없었다. 모든 대원들이 자신의 차례를 알고 있었고 자신이 날라야 할 짐을 알고 있었다. 위험 구간에서는 누가 먼저 가고 나중에 가는지도 대화 없이 정해졌다.

그들이 신경 써야 할 대상은 오직 나 하나였다. 모든 아이스폴 닥터 대원들은 쉴 때마다 나에게 물을 권했고 차를 마시라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 처음 얼굴을 볼 때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얼굴만 마주치면 "Are you okay?"라며 내 안부를 물었다.

험난한 히말라야의 척박함을 온몸으로 이겨내며 살아야 하는 쿰부 히말라야 셰르파들. 자신보다는 다른 이들의 목적을 위해 일하는 것이 숙명인 듯 묵묵히 무거운 짐을 지고 아이스폴로 조용히 빠르게 걸어 나가는 그들을 뒤로하고 하산하며 그들의 안전과 행복을 기원했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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