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독자님, 정말 감사합니다 [프리스타일]

주하은 기자 2024. 5. 8.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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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고인이 되신 저의 할머니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분이셨습니다.

할머니는 1930년대생이었으니, 그 시절 태어난 여성 대부분이 비슷한 처지였을 것입니다.

그래도 한글을 배우는 것이 할머니에게는 큰 기쁨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시, 또다시 두세 글자를 읽으시는 소리를 할머니의 옆에 누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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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에서는 늘 진지하기만 한 〈시사IN〉 기자들, 기사 바깥에서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친한 친구의 수다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읽어주세요.
태청야학 소경수 선생님.ⓒ시사IN 이명익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저의 할머니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분이셨습니다. 할머니는 1930년대생이었으니, 그 시절 태어난 여성 대부분이 비슷한 처지였을 것입니다. 정규교육은 고사하고,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는 글을 가르쳐주는 멋진 어른도 없었나 봅니다. 할머니는 아주 오랜 시간을 ‘까막눈’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할머니에게도 늦게나마 글을 배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노인대학’에서 한글을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안타깝게도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한글을 유창하게 읽고 쓰진 못하셨습니다. 그래도 한글을 배우는 것이 할머니에게는 큰 기쁨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글을 배운 이후 할머니는 TV에 나오는 글자들을 더듬더듬 읽으셨습니다. TV 프로그램이 글을 막 배운 노인의 속도를 고려할 리 없으니, 한 장면이 넘어갈 때 겨우 두세 글자를 읽을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다시, 또다시 두세 글자를 읽으시는 소리를 할머니의 옆에 누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시사IN〉 제861호 ‘사람IN’ 지면에 쓴 서울시 중랑구 ‘태청야학’ 취재를 갔을 때 오래된 기억 속 그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태청야학에선 제 할머니처럼 글을 읽지 못하는 노인 학생들이 모여 글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야학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하는 소경수 선생님의 목소리에선 확신이 느껴졌습니다. 회비를 내면서까지 이 공간을 지키는 선생님들에게 존경심이 들었습니다. 미약한 기사나마, 이 공간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 태청야학을 함께 지켜달라는 소경수 선생님의 말을 말미에 실었습니다.

기사가 나가고 2주 뒤, 소경수 선생님으로부터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익명의 〈시사IN〉 독자분이 태청야학에 200만원을 기부하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번 학기 신입생들이 많이 등록해 교과서 살 돈, 봄소풍 도시락 살 돈이 부족했는데 덕분에 걱정을 덜었다고 합니다. 그 익명의 독자분께 이 기사가 다시 가닿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지면을 빌려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주하은 기자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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